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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Aug 15. 2023

열쇠_열다 VS 닫다

도어록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열쇠를 가지고 다녔다. 숫자를 눌러 문을 열 수 있다는 개념이 없던 그때는 열쇠가 문 너머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집 열쇠의 경우 가족 수대로 복사해 나눠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같은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 공간을 함께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만큼 그들은 친밀한 사이라는 또는 친밀해야 하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집안에는 각자의 방이 있었고 방마다 잠금장치와 열쇠가 있었다. 우리 가족의 경우 방문을 잠그는 일은 거의 없어 방문 열쇠는 보통 서랍장에 들어 있었다. 문을 잠그는 것은 감추거나 보호해야 할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진대, 방문을 잠그고 방에 틀어박혀 있던 기억이 남아있지 않으니 내 생각보다 꽤 해맑게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것도 같다. 

기억을 더듬어가다 보니 일기장에도 자물쇠가 달린 것이 있었다. 비밀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을 적어 놓을 게 그다지 없지 싶은데 비밀스러움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이 유행했었다. 유행처럼 번지던 판매 전략은 나를 비켜 가지 않았다. 자물쇠가 남기는 비밀스러움이 어쩐지 탐이 나 금색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을 사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비밀스러움에 대한 호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를 쓰는 고약한 습관이 있는 나에게는 일기를 쓸 때마다 자물쇠를 여는 게여간 성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끝내 그 성가심을 이기지 못해 자물쇠도 열쇠도 무용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오롯이 문자에 나를 담아내는 쓰는 행위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치워버리면서 어차피 일기장에 담긴 것은 나밖에 해독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상황과 감정이 나만의 문자로 코드화되어 있으니 누군가 내 일기를 본다고 하더라도 문자 사이사이에 놓인 맥락을 전부 읽어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허니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나에게도 내 일기를 훔쳐보는 이에게도 큰 의미를 남기는 일이 되지는 못할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일기장에 남겨진 글자를 넘어다보는 게 아니라 문자라는 자물쇠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의 마음을 말로 전할 수 있을 만큼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Rene Magritte_Untitled


열쇠는 잠긴 것을 여는 데 사용된다. 그게 상식이다. 보통 사람들은 열쇠를 잠근 것을 열기 위함이고 비밀을 풀기 위해 찾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열쇠에는 잠그는 기능도 있었다. 그 안에는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문을 닫아 두는 기능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왜 열쇠를 떠올릴 때면 여는 것만 연상하게 되었을까? 여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을까? 닫힌 것은 일단은 열고 봐야 한다는 관념에 길들어 있었던 것일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열쇠는 여는 것’이라는 도식이 생겨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경계 없이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열쇠에서 여는 기능만 떠올리게 된 것도 같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닫혀 버렸고 마음의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채 꽤 긴 시간 지나와 버린 것 같다. 

모두가 자물쇠 하나쯤 가슴에 달아두고 사니 굳이 마음의 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움직일 때마다 자물쇠가 가슴을 친다. 그게 자꾸 신경이 쓰인다. 자물쇠가 가슴에 닿는 소리가 잠긴 마음의 문이 나에게 이젠 문을 좀 열어 달라는 신호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터치 한 번으로 낯선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모든 게 열려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전부 닫혀 있다. 잠가 두어야 할 것은 열어두고 열어두어야 할 것은 잠가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내가 나를 회복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내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지 못해 동동거리고 있는 것 같다. 

나조차 내 마음의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그 열쇠를 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맞지 않는 열쇠라도 자물쇠에 넣어 두고 닫힌 문을 열어보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쓸쓸한 일이다. 

마음에 빗장을 걸어둔 이들의 그리고 내 마음의 자물쇠에 열쇠를 넣어보려고 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라도 울려 마음에 자물쇠를 달고 있는 것이 나만이 그리고 당신만이 아님을 알려줘 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리하여 나를 끌어안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면 그 열쇠로 마음을 걸어 잠그고 나만을 위한 휴식처를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당신에게 물어 당신 가슴의 자물쇠에 열쇠를 넣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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