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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Aug 16. 2023

도시락 그 따뜻함에 관하여

어떤 날들의 기억은 세포에 새겨진다. 새겨짐과 동시에 각인되기에 언제 어떻게 새겨졌는지도 모른 채 속에 내 속에 깃들어 있다가 그때와 비슷한 공기가 감돌면 어느 순간 마법처럼 떠오른다. 그리고는 가슴을 뭉근하게 울려버린다. 그러면 나는 멍해져서 타임머신을 탄 듯 기억 속 언젠가로 되돌아가 있게 된다. 

기억 저편 도시락이 기억난 것은 오징어볶음 냄새 때문이었다. 냄새는 포착해 둘 수 없어 비슷한 냄새를 맡고서야 기억이 상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갈색 양념을 바른 오징어볶음 냄새가 불현듯 내 속에서 되살아났다. 뒤이어 책상 위를 채우고 있던 갖은 도시락의 모양이 눈을 채워오더니 왁자지껄 모여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식판을 들고 배식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맛있는 반찬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퉈 젓가락질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새삼스레 느껴졌다. 찬찬히 그 시절을 떠올려 보니 지금은 특별한 반찬이라고 할 것도 없는 돈가스, 햄, 달걀, 고기를 싸 온 친구들의 도시락이 상대적으로 빨리 비었던 기억이 남겨져 있었다. 그에 반해 채소 반찬은 인기가 없었다. 맛있는 반찬을 싸 온 친구는 제 몫의 반찬이 금세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한편 어쩐지 모르게 그것을 우쭐해하기도 하였다.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집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난 다음 날이면 반찬을 남겨 들고 돌아간 친구의 도시락이 화려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반찬을 사수하고자 하는 미묘한 신경전 속에 식구라도 된 것처럼 점심을 매일 함께 먹었다. 

왜 문득 당시의 오징어볶음이 먹고 싶어 졌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도시락에 담긴 온기가 그리웠던 것도 같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는 도시락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집집이 간이 달라 어떤 것은 짜고 어떤 것은 달고 어떤 것은 싱거웠다. 싱거운 것은 짠 것과 섞어 먹고 짜고 매운 것은 물에 씻어 먹기도 하며 간을 맞춰 먹기가 일쑤였음에도 그때 먹었던 밥은 따뜻했다. 출근 전 서둘러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의 모습과 친구들과 같이 나눠 먹으라며 뭐라도 하나 더 넣어 주려던 어미의 마음이 도시락에 들어 있어서였다.      

도시락이 식판으로 바뀌면서 영양도 맛도 균형을 갖추어 갔다. 맛있는 반찬을 앞두고 친구와 젓가락 싸움할 일도 없고 짠 반찬에 물을 들이켤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도시락을 펼쳐두고 함께 밥을 먹던 시절 느낀 온기는 그 속에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게 어쩐지 아쉽다. 시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점심밥은 진화하였는데 나는 어째 투박했던 그 시절 도시락이 그립다. 더는 친구들과 모여 앉아 반찬 투쟁을 하며 밥을 먹을 일이 없음에도 그 시절의 향수가 내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꼭꼭 눌러 담은 따뜻한 밥이 영혼을 매만져 주는 약이 되어주기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R Magritte_Fish out of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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