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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Aug 19. 2023

둔한 마음에서 사과 하나의 무게가 덜어진다

사과를 앞에 두고 있다빨간 열매가 올여름 무더위에도 기어코 살아남았노라 하는 승전보를 울려온다. 파랗던 사과에 붉은 기운이 감돌더니 8월 초를 넘기면서는 탐스럽게 익어 제법 사과 태를 냈다. 그 모습이 사과나무를 지날 때마다 입에 군침이 돌게 했다시큼한 맛이 연상되어서이기도 한 한편 고사한 식물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남은 그 생명력이 찬란해 보이기도 해서였다

 열매는 나무의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 사과에 자꾸 눈이 가는지 몰랐다살아있음에는 그 자체로 탐이 나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인지 내가 아직 덜 영글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올여름 한때를 나는 사과 하나를 가지고자 하는 욕구와 씨름했다빨간 그것을 따고 싶다는 마음이 부끄러워 번번이 얼굴을 붉히면서도 익어가는 사과가 눈에 들어오면 사과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땅에 떨어진 사과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내가 딴 것이 아니라 바닥에 절로 떨어진 것이니 집어가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상처 하나 남지 않은 듯한 사과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 만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사과를 가지고자 했던 간절한 내 마음을 사과나무가 앞서 알아채고 열매 하나를 슬며시 내려두었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사과나무에 고맙다는 말까지 전하며 열매를 들어 올렸다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다시 사과를 내려두었다

  개미가 사과 아랫부분을 까맣게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제집이라도 되는 듯 사과에 길을 내 둔 개미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개미들을 보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졌으니 땅으로 수렴하여 다시 사과나무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 것을 나는 왜 그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먹이를 찾으러 나왔다가 단내를 맡고 소임을 다하려 먹이를 구해 가는 일개미를 왜 탐욕스럽다 생각한 것일까세상에 내 몫으로 주어진 것이 적지 않은데 왜 나는 개미들의 몫으로 주어진 사과까지 탐내려 한 것일까.

  볼에 사과의 붉은빛이 인다여름 더위를 온몸으로 이겨내며 해를 제 몸에 담아낸 빨간 사과의 영롱한 빛과 형체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 해와 씨름하며 생명력을 피워내고 있는 사과에서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인 것을먹이를 구해 가는 개미와 여름의 열기를 제 몸에 담아 식혀낸 사과를 보며 반성이라는 두 자를 가슴에 새겼다

  과유불급이라 하였다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이걸 참 자주 까먹는다. 그리하여 탐이 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앞질러 내 것이라 여겨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해 버린다. 내 손에 들어오면 내 것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깨우쳤음에도 그게 가슴에는 잘 새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여름 내내 가슴에 담아두었던 사과를 바닥에 내려둔다둔한 마음에서 사과 하나의 무게가 덜어진다가을 기운이 감도는 여름 바람이 어리석음의 먼지를 쓸어간다.

 

R Magritte_The Listening Room_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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