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Z Aug 27. 2023

항아리 채우기 VS 바다 만들기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은 내게 조건을 내건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보통 A라는 노력을 하면 B라는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 노력은 한 곳에 에너지를 쓴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그동안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노력 이후의 보상이 있어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를 하면 B라는 성과가 나온다는 공식은 내 인생에는 적용된 적이 없다. B라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데도 이렇게 살아남아 있음이 나로서도 신기하기는 하다. 성과가 없다고 해도 다른 뭔가를 하며 버티고 있다 보면 때로는 그게 구명줄이 되어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손에 쥐어지는 것 하나 없이 뭔가를 기다리는 것이 애간장을 태우고 심장을 녹아내리게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기에 양손을 떡을 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패가 실패를 낳는 실패의 도미노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기까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수많은 실패의 상흔으로 실패가 안겨주는 절망감을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확답을 할 수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패턴이 내 속에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를 마주할 때 상처받지 않느냐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아파하면서 실패나 이별에서는 상처의 더해짐만 있지 익숙해짐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늘 최악의 상황까지 시뮬레이션한 후 도전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나의 경우 좋아한다는 확신이 서면 모든 것을 걸고 그 일을 해왔다. 적당히 했으면 내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하다고 핑계라도 될 텐데 그러하지 못했다. 그러했기에 속상하기는 했으나 영락없이 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A를 좋아해서 모든 것을 걸고 A를 한 후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B를 주세요,라고 하면 운명은 나에게 말했다. 나는 B를 준다고 한 적이 없어,라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줬잖아요,라고 되물었다. 야멸찬 운명은 그건 다른 사람들이라며 딱 잘라 내게 말했다. 나는 왜 안 돼요,라고 다시 물으면 운명은 입을 꾹 닫고 말을 하지 않았다. 

  부당하다 싶었고 억울해서 눈물도 났다, 운명이 독에 구멍을 내놓고 내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이런 인생이 있냐며 독의 구멍을 막아줄 개구리가 나타나 주기를 기도한 날도 많았다. 그 구멍만 막으면 적어도 노력한 만큼은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아니 10의 노력으로 1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무작정 달리는 게 아무래도 너무 힘들어 마음 착한 개구리는 대체 어디에 있냐며 애타게 개구리를 불러도 보았으나 개구리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바뀌는 것이 없으니 손에 쥔 것이 없이 무작정 달렸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B를 달라는 말조차 해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전과 실패의 공식에 최대한 익숙해지려고 했는데 어느 날엔가는 보상이 없다는 게 견딜 수 없이 나를 지치게 했다. 좋아하는 마음만 보자고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는 세월 동안 빈손으로 있다 보니 자꾸만 나의 쓸모에 대해 자성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없다면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면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렇게 끝없이 나를 갉아먹는 질문을 되풀이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항아리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항아리가 아닌 다른 무엇을 타고났는데 나는 미처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공식은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A라는 노력이 곧바로 B라는 결과로 도출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A, B, C 등의 노력이 끝없이 들어가 하나의 세상을 구축해 내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나와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이 없었기에 내 인생은 어찌할 수 없이 실패일 것으로만 생각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어떤 큰 항아리라 해도 다 채워진 항아리는 비워져야 한다. 비우고 나면 거기에서부터 다시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 항아리 하나를 채워내고 비워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애초부터 노력을 끝없이 쏟아내 바다를 만들어가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 사람도 있는 것이다. 바다를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장의 성과가 보이는 사람이 부러워 보이는 것이고 항아리를 채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장의 성과를 위해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내가 여유로워 보일 것이다. 두 인생 모두 편하다고만 할 수 없다. 노력을 한다는 것은 가슴을 떨리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치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의 세상을 구축해 간다는 점에서는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지는 않을까.

Rene Magritte_The Masterpiece or the Mysteries of the Horizon_1955


이전 10화 관계의 항아리와 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