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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Oct 07. 2023

마음 독소 필터링

신장과 대장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배뇨와 배변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 제때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몸은 망가지게 된다. 때맞춰 치료가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신장 투석을 하거나 배변 주머니를 달아 몸에 쌓인 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몸은 본래 많은 것은 내보내고 적은 것은 넣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 것이 식습관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그 자연스러운 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고 그리하여 제때 밖으로 나와야 하는 배설물이 몸속에 쌓이게 되는 일이 이어지게 되었다.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이 병을 가만히 생각해 보자니 마음에도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을 걸러내는 장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은 그 장치가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에 병이 깃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속이 갑갑하고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은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신호일 진데 우리는 의외로 내 속에서 나오는 그 신호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하여 갑갑함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깃든 그게 뭔지도 모른 채 갑갑한 속을 서둘러 눌러버리게 된다. 

  추석 연휴 내내 무의식 중에 할 일을 끝없이 떠올리며 시간의 압박을 느끼는 나를 보며 명치에 뭔가가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연휴가 길어졌으니 늘어져 자거나 멍하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어도 되는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졌는데도 왜인지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뜻 모를 초조함과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강박감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으로 이어졌고 그리하여 끝내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의 심한 몸살이 되어 나타났다. 

  마음 내려놔야 사라지게 할 수 있을 이 고질병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짧은 연휴 앞에 나는 또 초조해하고 있다. 해야 할 일 열 개가 아니라 하나만 붙들고 있어도 연휴에 대한 부채감은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시간이 주어진다 싶으면 왜인지 모르게 전투사가 된 것처럼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빼곡하게 적어두게 된다. 지난 이 년 동안 어쩐지 모르게 의지대로 꾸리지 못하고 허투루 보낸 것 같은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감에 대한 초조함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하나라도 해 내면 아등바등했던 마음이 억울하지라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면 하나조차 못해 내게 된다. 그렇게 연휴 끝에 이르면 어차피 이렇게 될 것 편히 쉬지 못한 게 억울해지고는 한다. 

  이 유령 같은 강박증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는 오래다. 헌데 그게 어쩐지 정말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간 운용에 대한 불가사의한 강박감이 마음에 독소를 쌓아 두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과를 내고 있지 않은 게 아닌데,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예전 같지 않은 나를 느끼면서 거기에서부터 비롯되는 압박감을 걸러내지 못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내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내년 일을 당겨 걱정하고 있는 버릇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불현듯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병으로 이어져 버렸다. 

  신장과 대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으면 된다. 마음의 독소는 어떻게 빼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풍경을 보아도 여행을 가 보아도 뭔가를 읽거나 감상해 보아도 왜인지 모르게 필터링이 잘되지 않는다. 이상은 높은데 한 해 한 해 갈수록 현실이 그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조바심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버렸음에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한 게 길게 지속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 병은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나을 수 없을 것이다. 일체유심조. 그래,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하였으니 마음먹어보는 그 연습을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망가져 손조차 쓸 수 없어지기 전에 말이다. 혹여 나와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홀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주면 좋겠다.  

René Magritte_Pascal's Coat_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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