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와 공연 티켓을 모아 두고는 했다. 티켓을 노트에 붙이고는 공연이나 전시회의 감상을 적어두는 게 그때는 꽤 소중히 했던 취미 중 하나였다. 공연장과 전시회장을 찾아가며 남긴 티켓에 새겨진 그림만으로도 설레던 시절도 있었는데 볼거리가 폭발적으로 많아지면서부터 그 감흥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전시회장이나 공연장의 공기나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파장이 만들어내는 공명만큼은 바래지 않고 남아 있어 전시회장과 공연장을 주기적으로 찾는 것만은 내내 이어오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전시회장도 공연장도 다 닫혀버린 기간 동안 뭔가를 잃어버린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그 공명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내 유일한 위안처가 사라져 가는 것을 확인받게 될까 봐 공연장과 전시회장을 찾는 게 겁이 났다. 그렇게 조금씩 공연장과 전시회장에서 멀어져서인지 여행을 가도 책을 읽어도 전시회나 공연장을 찾아도 감흥이 일지 않는 때를 만나게 되었다. 마음속 어딘가 단단히 탈이 난 것 같은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시회도 공연도 약효가 없는 것을 보니 속이 곪아 터져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어찌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오랜 친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연말에나 겨우 볼까 할 정도로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이 소원해졌는데 여름에 문득 그녀를 만났다. 대학생 때는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것이 직장을 가지면서 우리의 만남은 소원해졌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부터는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나는 나대로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육아에 치여 있다 보면 생일 때나 겨우 연락하거나 연말이 되어서야 올해는 보지도 못했구나 하며 짧은 통화를 하는 게 전부가 되어 갔다. 매일 붙어 다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지난 시간을 기억해 주며 나를 나보다 더 잘 알아주는 누군가가 먼 곳에서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게 더디 가는 듯한 시간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주고는 했다.
생각해 보면 시간을 낼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을 내는 게 어쩐지 잘 되지 않았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돌아보니 어딘지 모르게 쫓기듯 돌아가는 일상에 쫓기다 보니 오랜 친구와의 시간만큼은 여유롭게 마주하고 싶어 아끼고 아껴 두느라 그랬던 것도 같다.
힘든 일 때문에 미주알고주알 전화기를 붙들고 이야기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참고 참다가 그녀를 만났을 때면 가슴속 응어리를 분출하듯 토해내고는 했었다. 드문드문 문자로 주고받던 게 그녀를 걱정시킨 모양인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두고 그 틈에 나를 만나러 나온 그녀는 애정 어린 말과 세월이라는 약으로 굳어가고 있던 내 심장을 부드럽게 매만져주었다. 그게 내 숨통을 틔워주었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그간 쌓였던 이야기를 토해냈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며 내 마음의 지킴이를 자청하고 있던 그녀였던지라 내가 알아채지 못한 내 속병을 단번에 알아채고는 고장 난 내 마음을 다정히 어루만져 주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말로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숨이 넘어갈 듯하고 있던 나에게 천천히 호흡을 고르는 법을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내게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내가 그녀에게 그 모든 것을 일러주었었다고. 그 말이 가슴을 울렸다. 내가 까마득히 잊어가고 있던 것을 나보다 더 잘 기억하며 간직해 두고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뭉클해졌기 때문이었다.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멍하니 찻잔을 앞에 두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던 길에 생각했다. 옛 친구와의 만남은 과거로 가는 티켓을 사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티켓이기에 닫혀 있던 과거가 우리에게 시간여행의 문을 열어 준 것이라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티켓을 손에 쥐고 있어 준 그녀가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