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와서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예전에 쓴 글을 발견했다.
‘재밌는 주제로 글을 썼네ㅋ’
하며 그 때의 글을 옮기면서 지금의 내가 괜히 첨언해보고 간다.
아마 이 글을 쓰게 된 시작은 이제 막 입사한 내가 신입교육 같은 조에 배정받게 된 분의 말을 들으면서ㅡ였던 것 같다
그 분은 나랑 동기지만, 1달 이내로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순간에 했던 말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결혼하는데 어때요?같은 결의 질문에 대답해주셨던 말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난다.
저는 기독교라 어릴 때부터 결혼 상대를 그리는 기도를 했거든요.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결혼 상대를 그리는 기도’라는 포인트에 꽂혔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문화라 기도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이런 느낌인가?하며 “왜죠”라고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러했다.
계속 기도하면서 그것을 구체화시키고 생생하게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요
언젠가 만날 사람을 기다리며, 이상형에 대해 기록을 하는 건가ㅡ 사실 당시엔 ‘오 끄덕’ 했지만 왜 끄덕했는지 말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날 저녁 하이라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순간 어떤 생각들이 탁 트였다. 나도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각이 실체가 되는 것은 결국 하이라이트에 있다
혹시 책을 읽다가 추상적으로 끌리는 문장, 어떤 깨달음을 주는 문장에 밑줄이나 하이라이트를 줘본 적이 있는가?
나는 무조건 YES다.
대학교 1학년 때 전공책을 오랜만에 펴봤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강력한 존재로 남은 이유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서다’라는 문장에 하이라이트가 되어있었다.
그 때는 정확히 그 깊이를 알지는 못했지만 추상적으로 마음이 동해 쳐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마케팅 에이전시에 들어가고 그 문장을 들여다보니 다른 감상과 깊이가 덧대여진다.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란 것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것들에 미리 당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이전에 뿌려놓은 나의 어떤 감각을 서툴게나마 다듬어가면 뿌리가 생기고 살이 붙고 실체가 되어 걸어온다.
그저 나는 때가 되면 그것을 알아볼 뿐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이상형에 대해 적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기도는 주기적으로 못하는 무교신자(?)지만 이런 건 내가 또 잘하지
이상형에 대해 생각해봤다.txt
1.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고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
1순위?
무조건 이거다.
이런 사람과는 끊임 없이 함께 성장하고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
편안한 사이는 좋지만 트레이닝 복에 슬리퍼 끌고나오는데도 어느날 이게 추한건지 사랑스러운지의 차이는 위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그지같이 행동하고, 그지같은 질문만 하다가 그지같이 입고 나오니까 화나는거다
2. 질문을 잘하는 사람
사람에게 관심을 깊게 가지먄 자연스레 좋은 질문이 나온다.
좋은 질문을 하면 관계에서 또 다른 확장된 지평이 열린다. 말을 잘하는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다른 문제다.
3. 자기 중심이 확실해서 자기를 드러내는데 조급하지 않은 사람
: 말과 행동은 반비례해서 말이 장황하고 포장할수록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대로 된 행동과 인격을 갖춘 이의 말은 아무리 많아도 향기가 난다.
근데 내가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4.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필요한 말만 하고 옳고 그른 걸 알고 그걸 실행하지만 나에게는 예외인(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
: 가끔 보면 진짜 자기 사람, 혹은 가정은 홀대하면서 잠깐의 인연, 뭐 나름대로 설정한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착하게 낮아질 수 있나 싶은 사람이 있다.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멋없다.
내 모든 기준과 생활루틴, 인간관계는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들이 내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들을 침해하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연은 나랑 가치관이 맞았으면 한다.
5. 밤새 얘기해도 즐거운 사람
뭔지 알지 다들 이 감각!!!!!
비포 선라이즈에사 기차에서 처음 만난 둘이 너무 즐겁게 대화하다, 대화를 멈추기 싫어 목적지 중간에 내려 밤새 노는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꼭 통하지 않아도,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서라도 이해가 안되면 이해할 때까지 통하는 것도 스무번은 더 넘게 이야기해서 다 구체화되기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다. 그러다 해가 뜨면 ‘나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게 되겠구나’ 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에서 조금 더 구체화하게 된 이상형이다.
6. 순수하게 서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주는 사이
유전이다.
울 엄마는 45살인데 아직도 순수하게 사랑 중이다. 흥.
나는 밀당 이런 것이 관계를 더 애닳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오히려 닳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를 미뤄두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기가 힘들다.
뭐해?라고만 물어봐도 좋아하면 그냥 너네 집 앞 달려가는 중이야! 라고 할 수 있을 때가 좋다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확신과 신뢰를 주려고 노력하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7. 책이 한 손에 잡힌다.
쭉 나열해보니 나는 결국 나도 어느 순간만 극대화되는 파편화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의 총합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어쩌면 내겐 없지만 동경하는 어떤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파편화된 것들을 잊지 않고 지켜내고 붙여가야되겠다는 각오(?)가 든다.
그럼 2022년의 내 이상형은 뭐지?
사실 위의 것들은 여전히 다 받고 간다.
이상형이라는 게 취향의 궁극인만큼 사실 크게 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제는 ‘이상형이 아니어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추가된 것 같다.
ㅋㅋ 이것조차도 이상형일까
뭐 그래도 이상형에 매몰되어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을 적절한 관용을 허락해줄 수 있게 된 것이 2022년의 나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어쩌다 느낀 사랑을 사랑이 아닐거라 의심하고 싶지 않다.
또 사실 누구와 연애를 시작해도 특별한 것은 잠깐이고 고된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보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나를 극복하는 것이더라.
‘어떤 사람’과 연애하기를 꿈꾸기보다는 이제는 ‘어떤 마음으로 연애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랬을 때 현재까지의 내 답은 서로의 이야기를 끊임 없이 할 수 있는 것, 계속해서 사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
이제는 잘난 사람보다는 나한테 맞는 사람
사실 위의 저런 건 너무 추상적이라 내 것이라 말하기엔 모두의 이상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같이 먹는 저녁의 맛을 아는 사람, 아침에 함께 가지는 커피타임의 가치를 아는 사람, 생선 가시 잘 발라주는 사람, 똑똑한데 내가 하는 걸 지지해주는 사람 이런 게 더 나답지. 사실 얘기가 잘 통한다는 말은 하나의 완성된 그림일 뿐이고, 그런 그림을 만들기까지의 한 획 한 획과 색들은 이런 일상성에서 오니까.
내가 바라는 이상형은 어쩌면 내가 되고 싶고, 만들어갈 미래의 이상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실 나는 이상형이 아닌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상형이 아니더라도 꾸역꾸역 만나서 영혼이 가난해지는 것보다는 많이 기다리더라도 내 감각이 바라는 사람을 만나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내 꿈이다.
허상같지만 실체가 되는 어떤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은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는 방법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 이렇게 하이라이트를 친다.
결국 이런 생각들이 내가 사랑하게 될 것들로 데려다주기를. 그 앞에 읽어내야 했던 무수한 문장들은 하이라이트 친 문장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살아온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생생하게 생각하면 어느 순간 그 행복이 알아봐질 것이다. 그러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