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첫눈은 기다리지만 첫비는 기다리지 않는걸까?
우리는 어떤 걸 마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지하고 마음이라 결정하면 충분할까?
‘그래 이게 내 마음이야‘
사실 그렇게 내 마음이라 속이고 넘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면?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감지하고 잡아야 마음이다’라고 요즘의 나는 결론내렸다.
어떤 형태로든 내 안에 일정 기간 머물러 있는 것을 마음이라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분명 작년까지의 나는 그냥 비도 아니고 소나기처럼 내리는 그런 흠뻑 젖을 수 있는 것만이 마음이라 여긴 것 같다.
나를 다급하게 질주하게 하는 것, 근데 그런 나보다도 빨라 붙잡히지 않고 형체도 잘 모르겠는 그런 것들을 마음이 크다’라고 받아들였다.
일차원적으로 말하면 정제되고 그런 건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 아닌가. 그런 걸 마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
그렇기에 주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얼마나 큰 마음이기에 이렇게 짧은 시간 흠뻑 젖어서 나를 축축하게 적시는가… ’
‘얼마나 크기에 한 손에 접히지 않는가- ’
하는 그런 도취에 빠져있었다.
물론 그 때는 그게 맞았고, 맞다.
그러고 흘려보내면 괜찮은데 이걸 마음이라 말하니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잡아보려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빗물이 잡힐리가 있나?
그럼 나는 또 양동이라도 놔서 잡아보려고 하기보다는 “ㅇㅋ 난 손으로 잡아보려 했는데 흘러가니까 어떡해?”하고 손 털고 집에 들어가는 쪽에 가까웠다.
그럼 나는 흠뻑 젖은 것도 마음, 잡아보고 싶었던 것도 마음,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것도 마음 이렇게 모두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떠올랐던 것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제대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 보려고도 잡으려고도 하지 않고 잡아보려는 생각만 있는 것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모자라다.
아니 사실 정확히 표현하면 ‘비에 대한 마음’은 아니다
그건 그저 ‘비에게 분출하는 내 에너지 혹은 한 순간의 감정‘이었다
그런 것도 에너지가 남아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 위안하고 싶지만 그런 식으로 섣불리 마음이라 담은 것들에게서 손은 쉽게 털 수 있어도 알고보면 마음까지 쉽게 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잡지도 못하는 마음을 꼭 끌어안은 채 가슴이 뜨거웠던 날들을 지나서야 ‘나는 이런 것들을 쉽게 털 수 없는 사람이구나. 쉽게 들이지 말자’라는 생각을 거쳐 마음을 쉽게 열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마음은 천년 가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주는 게 인간이라고 어쩌면 결국 몸이라는 것에 갇혀 체력이 딸리는 인간의 변일 수도 있고, 현실적인 관점에서의 결정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런거다.
이제는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을 ‘내 마음’으로 여기는 것
어느 날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나를 답답하고 초조해하지 않는 것
묵묵히 해야할 것을 하는 것
마음 때문에 현실에 눈 감지 않고 손 잡고 같이 가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 가는대로 한다‘는 말은 그럴 때에서야 호소력이 생긴다.
첫눈을 기다리며 우리는 약속을 한다.
첫비 오는 날 만나!-라는 말은 잘 하지 않지만,
첫눈 오는 날 만나!-라는 말은 많이 한다.
비와 다르게 눈은 약속을 동반한다.
나는 눈을 ‘마음’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눈에 보이고, 내가 조금이라도 잡아보면서 상태가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비도, 눈도 모두 결국 내 손을 떠나지만 눈은 감지되고 머물러 있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눈은 손 위에 머무른다.
차가웠던 것이 비록 손의 온도에 따뜻해지며 녹아버리고, 흘러내리지만 그렇게 내 손을 떠나는 순간조차 내가 흘려보내준다는 느낌이 든다.
눈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잡고, 내가 지켜보고, 내가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피할 수 없는 소나기같은 게 아니라 차곡 차곡 조용히 쌓여 일정시간 살아서 조금씩 흘려보내는 눈,
눈사람이든 뭐든 그렇게 쌓인 걸로 형태를 만들어 보여주고 줄 수 있는. 그런 걸 내 마음이라 할 수 있겠지
‘내 마음대로 할거야’라면서 내가 질질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거
결국 마음의 크기는 얼마나 세게 내려서 나를 때리고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손 위에 얼마나 차곡차곡 쌓이느냐에 있었다.
이걸 지금에서야 깨달아서 분명 후회되는 순간도 있지만 그렇게 잡지 못하는 비에 달려나가던 내가 난 좋다 ㅋㅋ
내가 내 마음에 끌려가서 쫄딱 젖어 수확도 없이 돌아오던 그런 순간이 있기에 지금의 마음들이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사랑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인가요?
제주도 서점숙소에서 질문카드를 뽑고 질문을 하는데 옆의 분이 뽑아주신 내 질문이었다.
요즘의 나는 사랑이 뭔지 정말 모르겠다.
잘 아는 것 같은데,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답을 내자면 사랑이 하얀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사랑이란 빨간색에다가 하트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내 불안함 때문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사랑에 기댔다.
내가 아는 사랑 중 가장 전형적이고 멋진 사랑을 사랑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어-가 있어야 사랑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사실 사랑은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데 느끼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라, 아니 사실 사랑에 진심이라
사랑은 믿는데 사람을 믿지 못해서 가장 편리한 사랑의 형태에 기대 내 마음에 그런 게 떠올랐을 때 ‘아 이건 사랑이다’라고 하고, 상대의 사랑의 모양이나 색깔을 관찰했다. 그러다보니 테두리에 대한 기준도 확실해서 거기서 벗어나면 ‘너 아웃‘하고 말았는데 그것도 일종의 불안함 아니었을까?
그렇게 사랑을 잘 아는 사람은 되어도,
사랑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여러 사랑을 하며 내가 그렇게 사랑의 형태를 생각하면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랑이 세상에 정말 많아지겠구나-라고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색이 정말 진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게 매력이라는 것도 알지만 내 사랑이 빨간색이 아닌 하얀색이었으면 좋겠다는 건, 나를 잃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일단은 전형적인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 하얀색도 색은 색이다.
하지만 지금은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냥 하얀색인 채로 조금만 남겨두고 싶다.
차를 마시는 마음
차의 시간,
우려지기 위해 오래 기르고 말린 무언가가 있고, 물을 붓고 놔두면 갈수록 깊어지고, 다 마시더라도 따뜻한 물만 부으면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는 것
나는 시간을 내주는 것 만큼 마음에 대한 확실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학생 때 학문에 대한 고민을 갖고 교수연구동에 가면 차를 내려주시는 교수님이 계셨다.
그 마음과 교양을 그땐 헤아리지 못했는데 누군가의 마음과 내게 내줬던 시간들에 대해서 이해해가는 게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커피를 급하게 마시며 일을 하기 위해 각성에 나서거나 커피챗을 하며 필요한, 필요할 것 같은 정보를 빠르게 빼내가는 시대에서 차를 마신다는 게 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가끔은 그냥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커피챗보다 티타임을 제안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눈
한 선배와 마음에 대해 얘기하다가 “은아 그렇게 말 안하면 마음이 풀리지 않아”리는 말을 들었다.
“저는 말해도 안 풀려서 그냥 제가 소화하려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때 안 말하고 시간이 지나서 정리해서 말한다“라고 하니
“말해도 안 풀리지만 그런 마음이 너한테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언젠가는 둘 사이 애틋함이 생긴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덧붙여서 애틋함이 있다면 지금은 서로를 이해 못해도 언젠가는 이해하고 마음이 풀리는 날이 생긴다고. 마음은 말하는 순간이 아니라 전달 받은 이후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같이 첫눈을 보는 마음은 무엇일까?
곧 땅에 떨어져 녹을텐데, 물이 얼어 떨어질 정도로 추운 날 굳이 첫눈 보자며 만나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어차피 녹을 물인데 뭐하러 꼭 그때 봐야해- 하고 그냥 나가는 날 눈이 오면 보고 아니면 그냥 질퍽거리는 물을 보고 눈이 왔었군-이라 하기엔 그 첫눈이 이 물이라 생각하기에 어렵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서로 안다는 것만으로 생기는 애틋함이 첫눈을 함께 보는 마음과 같은 거 아닐까?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같은 게 아닌거다
눈은 눈이고, 녹은 것은 녹은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며 새롭게 닿는 곳이, 태어나는 생명들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눈이 살아있는 동안에 있는 그대로 봐주기
녹을 줄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그 마음을 이제는 알겠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 돼요
찾아오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_아이유 - 마음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