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이 좋아
사랑안해라는 말은 사실 사랑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거야
이 글은 생일 기념으로 이전에 쓰다만 글을 이어 쓰고 싶은 게 있어서 작가의 서랍에 들어왔더니
'2021년, 사랑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무려 8단락이나 쓴 글을 발견해서 그것을 이어서 붙여서 쓰는 글이다.
2021년 연말 즈음인 것으로 보아서 직장인이 되어서의 첫 연애를 시작한 그맘 때 즈음인 것 같다.
나는 제목에 큰 힘을 들이는 편이다.
딱 보고 후킹이 될만한 제목이거나 글을 다 읽었을 때 이 글의 주제를 나타낼만한 제목이 아니면 글을 다 쓰고도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제목을 고민하느라 몇 시간이 걸리곤 했다.
모든 책, 하다 못해 짧게 쓰여진 레포트의 정성도 제목과 목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제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때 쓰려던 글의 제목은 투박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목에서 바로 아래의 첫 단락으로 눈돌리자마자 거기에 쓰여진 말들이 바로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이 글의 제목은 힘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의 컨셉은 솔직이기 때문이다.
저 담백하게 쓴 제목에 꽤 큰 효능감을 느낀다.
그리고 너무나도 솔직한 것들은 대개 혼란하고 복잡하고 다양해서, 재구성해서 한 문장으로 쓰면 오히려 이상해지는 이상한 속성이 있다
아무튼 이 담백한 제목을 보고 클릭할 사람은 나의 사랑에 관심 있는 사람 밖에 없을 것 같다.
이야기나 자극의 힘이라곤 전혀 없는 저 담백하고 맥빠지는 제목에 이 글을 클릭해준 사람들은 나한테 진심이거나 사랑에 진심이거나
_ 2021년 이 글의 원글이 되는 글의 첫 단락
솔직하면 담백해지는 법인가보다.
솔직담백이 붙어있는 이유가 있지
#사랑에_대해
내 인생에서 2021년만큼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이라는 개념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휘둘린 해가 있을까?
사실 성인이 되고 한 번도 사랑이나 연애에 큰 비중을 둬본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을 100000%로 좋아할지라도 내 인생의 전체 파이에서 사랑과 연애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 되어서 100000%를 초과해도 결국은 20%가 최대치로 치환되어서 들어가는 형태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늘 어떤 사람이 좋냐는 질문에 마음에 품고 사는 형태가 하나 있다.
다른 형태의 좋음은 다 이것의 베리에이션인 것 같다.
순수한 사람
또 순수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ㅡ라고 묻는다면 매우 곤란할만큼 나만의 미묘한 캐칭포인트가 있는 정의다.
뭐 나는 어휘력이 딸려서 남의 표현을 빌려보려고 한다.
태림이의 표현을 듣고 무릎을 탁 쳤는데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그 순간 나도 그에게 그 모습들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느라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 사실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어느 순간엔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보상심리인지는 몰라도 나도 그를 평가하게 된다.
그러니까 사랑에 있어서 나를 조건적인 상황에 놓는 사람과 함께하게 되면 확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나는 이런 상황을 어디서나 구하기 쉬운 싸구려 초콜릿의 성분을 알아버린 순간에 비유하고는 한다.
분명 카카오 함량이 높은 것보다 달달하고 먹기도, 구하기도 편해서 이제까지의 인생에서는 잘 먹었는데, 어른이 된 언젠가에 이 초콜릿은 초콜릿의 원재료인 '진짜 카카오'가 얼마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리고는 초콜릿 취급도 안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런 걸로 따지면 내가 생각하는 초콜릿의 본질과 효용은 알고보니 달달함이 아니라 카카오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먹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도 알고, 내가 필요로 하는 달달한 맛과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것도 아는데 어쩐지 '초콜릿'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짜가 들어있지 않다는 걸 알고난 후부터는 그 달달한 느낌이 썩 좋지는 않은 것이다.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사랑에 있어 재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 같다.
진짜인 사람, 진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진심 그런 거보다, 이 사람이 진짜를 말하느냐, 진짜로 행동하느냐,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느냐 그런 것이 중요하다. 싸구려 초콜릿이 자기 자신을 '초콜릿'이라 말하는 건 진심이 아니었을까?
진짜인 걸 의심하지 않아도 되어서, 아니 의심할 틈이 없어서 좋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걸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좋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나이가 들어서 관찰하게 되는 사랑들은 조금 서글프다.
너가 나한테 조금만 확신을 주면 나도 너를 사랑해볼게ㅡ 나도 너를 조금 더 관찰해볼게ㅡ 나도 너를 어쩌구 저쩌구~ 그런 조건적인 시작은 어떤 좋은 사랑도 내게 가져다주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사랑은, 사랑의 필수요소인 열정도 책임감도 헌신도 아닌 뭔가 그런 척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사랑을 하게될 것 같은 예감.
오 지금 왠지 순수한 사람이 좋은 이유보다는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 싫은 이유를 서술하고 있는 기분이다.
음.. 순수한 사람이 좋은 이유는 그러니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땡기는 어떤 느낌이 있다.
#연애를_시작하는_순간
나는 연애가 끝나고 나면 “저는 이전 연애에서 연애에 대한 기준이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런 기준들은 대개 여/남사친이 많은 사람은 안 만나, 술 좋아하는 사람은 안 만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사람은 안 만나 이런 거였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맥락이 너무 이해가 되고 공감되기는 하지만 뭉뚱그려 안 만나기엔 다 디테일이 있지 않을까? 뭐 예를 들면 그런 사람도 어느 시점에는 그렇지 않다던가, 마음이 크면 또 어떻다던가,
아 물론 이건 그렇게 말한 사람들에게 선을 긋는 행위는 아니다. 혼자만의 생각 플로우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하는 것이다.
굳이 ‘- 한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지'라는 기준이 없는 건 이제까지 연애를 해왔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마음이 생기면 숨기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불나방같이 휘리릭 시작한 사랑이 상대방과 맞아서, 늘 남들이 말하는 썸이라는 것도 딱히 타본 적 없이 사랑을 시작했는데 뭐 하나 걸리거나 크게 싸우는 거 없이 최소 2년씩 무던하게 만나다가 이별마저도 상황 때문에 결심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스스로 '나 첫눈에 사람 보는 눈 있는 것 같아'라며 오만을 떨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감사하게도 사랑의 마무리가 기준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사랑의 마지막은 늘 잘 생각이 안 나고,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생각난다.
연애의 기준이 사랑의 마지막- ~한 사람 안 만나야지, 보다는 사랑의 처음 -~한 사람 내가 참 좋아한다로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나한테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만남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끝보다는 시작이 더 중요하다.
사실 사랑에 1-2년에 한 번씩 빠지는 사람이라 사랑에 빠진 적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마다 내 사랑에 대한 해상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도와 사랑을 알아차리는 포착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는 뜻이다.
#여름에서 겨울까지
* 소제목 명은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보다는 그냥 내가 지어봤다. 어쩐지 넘버링으로 소비하기 싫달까
스무살 첫 연애는 그런 거 같다.
주량이 소주 2잔이던 술찌 시절, 3월 개강 시즌 한참 추울 때 술에 취한 적이 있다.
일어나보니까 기숙사 방에 못 보던 잠바가 하나 있어서 룸메이트에게 물어보니,
어제 내가 취해서 집에 오다가 너무 추웠는지 옆의 동기에게 '나 잠바좀..'이라고 했고 그 동기는 옷을 벗어줬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패딩 2개를 입고 행복해하며 기숙사까지 걸어왔고, 그 동기는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걸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잠바를 돌려주면서 미안하다고 밥 사준다고 사과하니 '?괜찮은데'라며 돌아서는 쿨한 인성의 소유자였다.
그때는 그냥ㅋㅋ 싸가지 없는 착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강의를 들어가는데 나는 시간 맞춰 가다보니 첫 줄은 꼭 누군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두번째 줄 정도에 앉곤 했는데 늘 부지런히 와서 첫 줄을 차지하던 학우가 그 동기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늘 술은 적당히 마시고 남자애들을 챙겨서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도 그 동기였고, 뭐 그런 거?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지난 봄과 여름 사이 어느 날에 함께 술자리를 가지다 다음 날 강의 때문에 먼저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 동기가 비가 온다고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던 날 연애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떄 생긴 내 기준은 그거였다.
겨울엔 옷을 벗어주고 여름에는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라면 여름을 지나 겨울까지 함께 해도 되겠다.
#밤에서 해가 뜰때까지
그 다음 사람은 나서지 않는데 나설 때마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 아무 말 안 하고 앉아있다가 한마디씩 차분한 어조로 하는데 웃긴? 잘났는데 잘난 구석을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데 무게 잡지 않고 사람을 오히려 가벼운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종잡을 수 없어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종잡을 수 있는 나와는 다르게, 종잡을 수 있을만큼 차분하고 점잖지만 제일 종잡을 수 없는 인간형이었다.
동아리를 들어가서 동기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한강 캠핑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사실 아직 모두 친하지 않을 때라 오는 것만으로도 부담일텐데 손 벌리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내가 주최한 것이니만큼 혼자 텐트를 빌리고 미리 설치를 해두려고 했는데 이 사람이 먼저 와서 함께 해주더라
그때 서로 텐트 양쪽 끝을 잡고 딱 치고 일어나서 눈을 마주치는 순간 오래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레서 그 다음 날 밤에 바로 전화를 걸어서 뭐하냐고 대화를 시작했다가 해가 뜨는 걸 보고 '와 시간 언제 이렇게 됐어?'라고 말하는 그 순간 그때 연애를 결심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사람에게 예의나 배려가 아니라는 걸
지금이야 너무나 프리하지만 그 때는 누구보다 유교걸일 때라 7시 이후에는 카톡도 잘 안하던 때였는데,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밤 늦은 시간 갑자기 전화해서 새벽까지 전화를 끌었던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때 생긴 내 기준은
나는 궁금해서 그 사람에게 예의나 배려를 적당히 차릴 때가 사랑에 빠진거구나-였다. 아니 사실 대화가 통한다는 감각보다 중요한 건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는 가끔 이상형을 물어보면 '대화하다가 해 뜨는 사람이요'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대화를 하다가 해가 뜨는 순간이 참 좋다.. 얼마나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었길래 이게 된거람? 이상하게 오래 좋아질 것 같다.
이런 처음은 지치는 순간에도 늘 빛나니까
#진지함부터 웃음까지
저 두개의 사랑을 지나서 세 번째 연애가 시작되기 전이 이 원글을 쓴 시점이더라.
사실 위의 글들도 모두 그때의 글을 옮긴 것이고 이것도 그때의 글에서 조금씩 더해서 쓰는 것이다.
세 번째 연애했던 사람은 소개로 만났다.
일단 소개를 잘 안 받는 자만추형 인간이고, 사실 그 소개도 이루어진 과정이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취소를 해야할까 말까 고민하던 만남이었는데 어쩐지 이런 방식으로 소개가 성사된 것도 자만추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나가기로 했다. 사실 잠시 한 카톡이 꽤 말쑥하고 다정하고 센스 있어서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 즈음의 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보기도 했고, 실제로 단순한 이성적 사랑이 아닌 여러 사랑의 형태를 접하면서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마음 속에 생겼던 시기였다.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만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건 힘이 있다-라는 그런 거?
일단 그 사람과 일 얘기를 하다 그런 점이 좋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오 그럼 이건 ~에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전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심플하고 간결하게 자기의 생각을 주는 스타일이었다면 이 사람은 “생각 안해본 문제는 아닌데 그렇게 질문하니 지금부터 더 깊게 생각해볼게요- “ 하더니 잠시 후 눈을 반짝이면서 설명충처럼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면 더 재밌어져서 질문하고, 그 사람은 또 생각해서 답변하고, 그런 종류의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정성은 아닐지라도 그런 진지함이 좋았다.
MBTI ESFJ인 사람은 처음 봤는데 ESFJ 인간들과 대화하는 게 예상 외로 가치관이 맞구나 싶을 만큼 좋았다. (물론 MBTI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이 사람 이후에 이상하게 ESFJ를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나랑 대화가 제일 잘 통하는 MBTI 중 하나더라고. 그 물꼬를 터줌)
모든 소개로 인한 대화의 시작이 그러하듯 "어떤 사람 좋아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속으로는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이요-라고 하려다가 어쩐지 느끼해질 것 같아서 그냥 "최선을 다해 웃는 사람이 좋던데요"라고 했는데 그 사람의 입에서 "저는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말로 꺼낼 걸-하다가 최선을 다해 웃는 사람들은 대개 순수하고 솔직하니까 수정하거나 말을 얹지는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 후에, 그 사람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 웃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과는 연애를 시작해야 겠다고 느꼈다 ㅋㅋ
내가 선언하는 것에 상대방이 참여해주는 것이 연애라는 생각을 했다. 선언하는 것이 주는 몰입감이 있거든. 그렇게 둘만의 밈이 생겨서 꺄르륵대면서 웃을 때가 연애의 시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선을 다해 웃을 줄 아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이 최선을 다해 웃는 게 좋다니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거 그런 점이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나서 또 한양대 노천극장에 앉아서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게 기억난다.
그때 새로 생긴 내 기준은 서로 밈이 통하는 거, 진지한 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최선을 다하는 게 최선을 다하는 걸로 봐지고, 웃긴 게 서로 웃긴 걸로 봐지는 그런 거, 그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사랑에 빠진다"
이 것은 누가 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다는 걸 깨닫는 과정인 것 같다.
누가 날 좋아해줘서 좋아할 수도 있지만 사랑을 주는 만큼 받을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가 좋아해서 만나자고 했어'라고 말하는 순간이 좋다.
나 이상의 노력을 할 수 있을 소중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 함께 하고 샆은 그림이 같을 때, 줄 수 있는 것만 주는 내가 그 사람에게 주기 위한 환경을 만들려고 나를 더 계발하고 개발할 때 뭐 그런 것이 연애의 기준이 아닐까?
나이가 든다고 현실적으로 무엇이 안되어서, 무엇이 이전 사람을 떠올리게 해서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는 싫다.
그냥 너 덕분에 내가 나답게, 나도 모르게 노력할 때 그럴 때 연애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할 것 같다.
오케이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오니까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에 대한 정의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1. 열정적인 설명충(충실할 충임) : 자신의 일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2. 챙김받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은 사람 : 원체 누가 날 챙겨주는 걸 '니가 왜 나를..? 너나 잘 챙겨'라거나 부담스럽다는 감정 때문에 아예 그런 환경에도 안가려고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챙겨줄 수 있는 틈을 찾아서 잘 챙겨주는 사람이나 내가 먼저 챙겨달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
3. 이야기가 튕겨지지 않는 사람 : 밈이 통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받아주는 사람.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_글을 쓰는 이유
나는 누군가가 프라임세포가 무엇이느냐-하면 사랑세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가끔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고, 사랑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해 안되는 행동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런 것이 프라임 세포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연애하고 싶다-보다는 연애할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사랑 얘기가 좋다.
사랑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고보면 네이버 사전에 '연애'는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라는데,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첫 시작에 성적인 매력만 끌리면 연애에서는 더 멀어지는 아이러니
사랑을 하려고 사람을 만나려 이곳 저곳에 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사랑의 기본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혼자 알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랑의 기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보면 유미가 결국엔 운명의 사람인 것 같아 결혼까지 결심했던 구웅과도 헤어졌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 바비랑도 헤어진다.
그런 걸 보면 유미의 세포들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거든'이라는 말마따나 사랑은 결국 내 성장 서사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이 기대된다.
유미가 나중에 순록이를 만나거든ㅋ 따위의 말로 이 다음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나는 유미가 끝끝내 자신의 프라임 세포인 사랑세포와 같은 것을 프라임세포로 갖고 있는 순록이를 만난 것이 참 좋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프라임 세포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아마 덕후세포나 이성세포가 아닐까 싶은 구웅과 헤어진 것도, 사랑꾼인 것 같아 사랑세포가 프라임 세포같았지만 사실 프라임세포는 명탐정 세포였던 바비와 헤어진 것도 이해가 된다.
어쩌면 연애를 하고 싶다-라고 할 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 섹시한 사람, 재밌는 사람, 이런 저런 상황에 어쩌구 저쩌구 이런 건 후순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더 중요한 것은 '솔직하고 순수한 마음이 있느냐' 그것인 것 같다.
그것만 있다면 이야기가 통할 수도 어느 날은 섹시해보일 수도 어느 날은 재밌고, 어떤 상황도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아무거나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보다는 진짜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싸구려 초콜릿의 달달함에 속지 않는 지금은, 초콜릿에게 달달함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쉽게 찾아서 사먹을 수 있음에 감동하지 않는다.
조금 어렵더라도 진짜를 위해 찾아나서는 것, 낭만이라는 게 나를 잃지 않는 것이라면 이런 종류의 소극적인 낭만을 꿈꾼다.
이 모든 것은 남을 찾는 거지만 나를 위한 일이다.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은 나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