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흔적
하반기에는 다큐멘터리를 자주 봤다. 넷플릭스에 볼만한 다큐멘터리가 많았다는 걸 작년에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나는 다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식 영상미에 대해서 조금씩 의문이 드는 시점이 있었는데, 아마도 대학에 들어가서 한국 문학과 담을 쌓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 특유의 한숨짓는 듯한 어조가 담긴 창작물들을 보기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지나치게 종교적 신념이 강조된다든지, 자연의 장엄함을 다룬 그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 취향은 아닌가 보다 하고 지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다큐도 나라마다 어조가 다르다. 문학이 작가의 시대와 국적 환경에 따라 어조가 다르고 문체가 다르듯이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로 만드는 이에 따라 연출과 문법이 다르다. 이전에는 그런 걸 몰랐다. 그런 걸 알 기회가 없었으니까. 넷플릭스라는 전 세계 통용 플랫폼이 생겨서 좋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다른 나라의 창작물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
작년에 흘러지나 간 영상물들이 아쉬워서 하나씩 뒤늦게라도 기록해보려고 한다. 기록만이 내게 남는 일이니까. 꽤 오래된 노트북과 13%의 배터리를 들고 자리에 앉은 이유다.
1. 터닝포인트 9/11
뭔가를 좋아한다고 알리면, 보통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왜 그거 제일 좋아해?"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꼽아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9/11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01년에 나는 너무 어렸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테러가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그 이후로 미국과 서방 세계의 이슬람 문화 혐오가 심해졌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셈이다.
2021년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그를 기록하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나선 다큐멘터리가 이 시리즈다. 다큐는 웬만하면 한 편으로 끝나는데, 이 시리즈는 무려 한 사건에 대해 5편이나 제작되어 있다. 생각보다 꽤 많은 분량이지만 보다 보면 많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영상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하고 싶은 메시지 한 줄로 요약하여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전에 학부 시절 한 학기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그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괜히 생각이 났다. 다큐멘터리는 실제 인물을 다루는 만큼 인물을 어떻게 영상에 담아낼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연출자는 출연자 보호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출연자를 미화할 가능성이 높지만, 대개의 그의 편에서 이야기를 말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이 다큐가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다섯 개의 영상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로 이 다큐가 하고 싶은 말은, '테러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테러를 다시 폭력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테러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빌딩에서 탈출하려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중에, 소방관들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박수를 쳤던 생존자가, 후에 무너져 내린 빌딩을 보면서 그때 박수쳤던 일을 후회하는 이야기. 탈출할 방법이 없어 강제로 빌딩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목격한 이야기. 인명을 구조하려고 들어갔다가 극적인 행운으로 인해 본인만 살게 된 소방관의 이야기. 희생된 소방관의 자녀들. 탈출하다가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직접적으로 겪었던 사람들의 시간은 아마 그때에 멈춰 있겠지.
정치적인 일로 일반 시민들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 지금 우크라이나랑 러시아의 전쟁 상황도 그렇고.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유치원을 다니던 무슬림 친구가 테러 다음 날부터 유치원을 나오지 못하게 된 이야기. 미국이 알카에다 일원을 살해하겠다고 보낸 무인 공격에 가족과 지인을 잃고 당신이 우리를 테러리스트로 만든 거라고 말하던 소년.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억울하게 수용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때 911 테러가 일어난 일은 참사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또 맘대로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차별해서는 다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짧게 머물렀던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히잡을 쓴 친구가 늘 혼자 다니던 게 괜히 생각났다. 미국은 아직도 테러에 예민하다. 어느 곳을 들어가든 테러용 몸수색이 당연하고, 미국에 들어가는 입국심사는 까다롭기 그지없다. 큰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방어하기 위함임은 당연히 이해한다. 파리도 참사가 일어난 후에 샹젤리제 거리에 무장 경찰이 깔린 것만 봐도 다들 이 사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무력이 과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가? 무력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외교적 해결 방법이 정녕 없을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던 다큐다. 생각을 남기는 영상물들이 좋다.
2.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이 다큐의 영문 제목은 'Athelete A'다. 첫 폭로를 했던 체조 선수를 언론에서 부르던 이름 'Athelete A'가 그대로 다큐멘터리 제목이 됐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열렸을 당시 온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열심히 올림픽을 봤다. 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니 저걸 어떻게 해?'였다. 엘리트 스포츠의 세계는 대개 다 그렇겠지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들 같아서 저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거지? 아마 죽도록 노력하겠지? 엘리트 스포츠.. 역시 험난하다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간이 하기 어려운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게 체조다. 체조는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부리는 마술 같아 보였다. 또 도쿄 올림픽에서는 미국에서 촉망받던 체조 선수가 정신 건강을 이유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일이 있었고, 여서정 선수가 포디움에 올라서며 여자 체조 역사에 또 한 획을 긋는 일이 있었다.
이 다큐는 체조 강국인 미국의 스포츠 역사가 얼마나 고이고 썩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다. 전미 체조 협회가 어떻게 성추행, 성폭행 사건을 덮어버리려고 했는지, 대부분의 피해자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10년이 넘도록 자행되어 온 범죄를 십수 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멈출 수 있었는지. 보다 보면 어이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인맥 관리나 감독에게 잘 보이는 일이 중요하고 부조리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바로 고발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더군다나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신임을 얻고 있는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모든 2차 가해는 피해자가 입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모두 다 목격하지 않았나.
마음 한 구석에는 차라리 한국만 이러고 서방세계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세상 어딜 가나 가해자가 한 잘못을 증명하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다큐기도 했지만, 소녀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기에 그들이 자라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잘못을 바로 잡는 데 사용하였다는 점이 이 다큐의 맹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가해자 앞에서 피해자들이 낭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래리 내서의 모든 피해자들이 법정 앞에 서서 당신의 잘못과 당신이 내게 입힌 피해에 대해 낭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이 다큐의 제목이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인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피해자들은 자라서, 당신을 무너뜨릴 힘을 갖고 돌아올 테니, 함부로 하지 말아라.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마라. 힘이 없다고 하여 영원히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다큐라고 생각한다.
3.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나
사람들이 꼬꼬무를 보는 것처럼 넷플 다큐를 봤다. 범죄 사건이 어떻게 풀리는지 누가 왜 얼마나 잘못했는지에 대해 보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이 다큐는 흥미롭다기보다는.. 마음이 어그러지는 다큐였다.
은행을 턴 피자 배달부 목에는 폭탄이 묶여 있었고, 시간이 지나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배달부가 정말 폭탄 테러범이었는지 아니면 피해자인지 누가 정말로 잘못했는지에 대해 파헤치는 이야기다.
보다 보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질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차마 내용을 다 밝힐 수 없지만 좋은 머리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모든 계획의 배후일 것으로 추정되는 마스터마인드와 취재원이 몇 년 동안이나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취재원이 단서를 수집했다는 것인데, 암수 살인에서도 이런 식으로 범죄자에게서 실마리를 빼내려는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계속해서 대화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게 꺼림칙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괜히 저 사람한테 해코지하는 거 아냐?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봤다. 결국엔 다 밝혀지긴 하지만, 가해자에게 특별한 처벌의 조치를 하기 전에 다 죽어버려서 뭔가 허무했다. 이 다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예전에 박지선 교수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한 말과 비슷한 말이지 않나 싶다. '모두 너보다 똑똑하다' 아무리 난다 긴다고 해도 결국에는 모두 너보다 똑똑하니까. 기억하라고.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과거의 범죄 사실을 후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말하고 듣고 쓰고 언어로 소통하는 인간으로서 역사를 가진 생물이 해야 하는 의무라고도 생각하고. 과거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2022년에는 다큐보다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보다 가상의 이야기에 매혹되는 게 뭐 이런 시즌도 있구나 싶다. 올해는 재밌는 영화도 많이 개봉했으면 좋겠다. 작년에 봤던 영화라고 해봤자 다 마블 영화뿐이어서, 올해는 더 다양하고 많은 영화를 볼 수 있길 소망한다. 다양한 창작물을 즐기는 것이 내 취미이자 행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