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송회를 가장한 흑역사 제조
술, 모임, 흑역사 = 성공적
그렇게 S와 이별이 사실화되고 S는 부지런히 시드니를 뜰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단 가장 급한 일이라면 급한 일인 일자리부터 물색을 하더니 시드니에 약 3시간 정도 떨어진 콥스 하버에 하우스 키핑 일을 구했다. 여기서 하우스 키핑은 쉽게 말하면 숙박 업소에서 객실 청소를 하는 일인데, 내가 워홀러였을 때만 해도 들으면 아는 유명 호텔 체인에서 호텔 인턴쉽으로 유학원에서 일자리 알선을 하곤 했다. 물론 그 인턴쉽이 사실 객실 청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은 크게 광고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S도 이런 비슷한 경로로 일을 구했던 것 같다. 콥스 하버는 NSW에서도 인기가 좋은 관광지인데 시원한 바다 뷰 호텔에서 캥거루가 노니는 자연과 벗 삼아 객실 청소를 할 생각에 S는 은근히 들뜬 듯 보였다. 다만 나는 인생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회의적인 경우가 많아 근무 조건 상 몇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S가 시드니에 계속 머물길 '간청' 했지만 이미 S는 마음을 굳힌 상태라 그렇게 시간은 점차 흘러 어느새 환송회까지 열게 되었다.
환송회는 시드니 시티에서 나름 큰 한국식 고깃집에서 했다. 그날은 다들 오늘만큼은 마시고 죽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했다. 거기다 이상하게도 당시 내 주변에는 S를 비롯해 양푼으로 들이부어도 안 취하는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에 다들 처음부터 2차 느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S에게 나타났다. 아무래도 분위기에 먼저 가버리고 양 조절에 실패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몸을 못 가누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그 누구보다 믿었던 S가 술에 취해버린 것이었다. 약간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 된 자로 수습에 나섰는데 나도 그때쯤엔 취기가 어느 정도 올라 있었기 때문에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아무래도 장소를 옮기면서 바람도 쐬고 약간 쉬는 시간을 가져야 될 것 같아 S를 부축하며 (동시에 가게 기물을 거의 부술뻔하면서) 가게에서 나왔는데,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정말 천천히, 슬로모션으로 무릎, 골반, 가슴 순으로 S가 바닥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그때 정말 신기했던 건, 분명히 넘어지는 속도 자체는 굉장히 느렸지만 불가항력에 의해 중력에 아예 몸을 맡긴 듯 엄청난 무게감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S의 모습이었다.
그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상당히 기이한 장면이었지만, 다들 그래도 어느 정도 정신을 붙잡고 있었는지 이 모습을 보자마자 엄청 놀라면서 S를 일으켰는데 S의 만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취기가 조금 가시면서 흥이 차올랐는지 S는 갑자기 노래방을 가야 한다며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치 사냥감을 쫓는 맹수의 속도로 휘청이며 뛰는 S를 잡으면서 나는 실감했다. 이건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소중한 추억이구나.
질주하고 넘어지고 일으켜 세우고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이건 2 차고 나발이고 다들 너무 지쳐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거기다 주인공이 인사불성이 돼서 몸도 못 가누는데 흥은 머리 끝까지 올라서 온 시드니 시티를 휘저으려고 난리를 부리는 통에 일단 이 성난 맹수를 잠재우기로 하고 일단 환송회는 일단락 지었다.
다음 날 아침, 목이 너무 말라서 눈을 떴는데 이마와 턱이 너무 아팠다. 멍이 들었거나 한 것도 아닌데 욱신욱신거려서 혹시 S한테 맞았나 의아해하며 거실로 나왔더니 L언니가 있었다. 그래서 언니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집 문 앞까지만 해도 완전히 멀쩡했던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불성이 되었단다. 그러더니 밤에 자다 화장실에 가서 몇 시간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봐도 그런 기억이 없어서 괴로워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 나는 화장실에 가서 내 얼굴을 변기통에 대봤다. 그랬더니 그 욱신거리던 부분에 변기 좌석이 딱 걸리는 것이었다. 변기통에 얼굴을 대고 몇 시간씩이나 혼절해있었으니 닿는 부분이 엄청 배겼던 것이었다. 이걸 깨닫고 아르키메데스가 왜 벌거벗은 채 유레카를 소리쳤는 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그렇게 S는 뻑적지근한 환송회를 뒤로 하고 시드니를 떠났다. 물론 그 일 이후 S는 자기가 미쳤었다면 몇 번이나 사죄했지만, 나는 그 날 한 고생으로 인한 원망보다는 재밌는 추억을 선물해준 S에게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짓궂게 몇 번 골려주고 말았다. 그리고 S는 콥스 하버로 떠나고 우리는 그 이후로 완전히 개별 노선을 탔다. 연락은 이어 갔지만 S는 콥스 하버에서 크게 덕을 못 보고 워홀 기간이 채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어떻게 하다 보니 호주에서 계속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나중에는 S와는 연락이 끊어져 사실 지금은 슬프게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S가 이 글을 본다면 허락도 없이 치부를 이야기 소재로 써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그리고 짧지만 나와 함께 워홀 생활을 해줘서 고맙고 또 굉장히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 호주에서 항상 응원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