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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Aug 12. 2020

갈 길 가기

워홀은 이별의 연속

2월 1일에 호주에 도착한 이후로 4월 말 부활절을 지나 벌써 체류한 지 3개월이 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슬픈 소식이 으레 그렇듯이 조금 뜬금없이 S가 내게 시드니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에서 코가 삐뚤어질 만큼 거하게 한 도원결의가 생각이 나면서 내가 S에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너무 섭섭한 마음에 S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아무래도 S의 경우 시드니 생활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었다. 나의 경우, 이제 막 적응을 해 예전에는 미처 즐기지 못했던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면 S는 이미 호주에 도착한 지 6개월이 거의 다 되는 시점이었다. 그렇다 보니 시드니에서 워홀러로서 할만한 경험은 이미 다 한 상태였다. 또, 워홀이 기본적으로 짧다면 짧은 1년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폭넓은 호주 경험을 염두에 둔다면 사실 지역 이동 같은 큰 변화를 주기 알맞은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S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당시 S가 일하던 있던 스시 샵의 처우였다. 이 스시 샵은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피트 스트릿에 있던 상당히 규모가 큰 스시 트레인, 즉 회전 초밥집이었다. 주인과 직원 모두 다 한국인이었고 애석하지만 당연하게도 노동자의 권리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 가게였다. 심지어 한차례 노동법 위반 관련으로 소동을 겪은 후에도 가게 이름만 바꿔서 버젓이 운영을 이어간,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S의 업무는 롤 메이킹으로 스시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여기서 스시는 우리가 흔히 한국에서 먹는 초밥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스시 롤이라고 부르는 김밥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김밥천국에서 김밥 싸는 알바랑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게 사실 보기완 다르게 만만치 않는 작업이다.


일단 그냥 집에서 먹는 김밥과 다르게 판매용 김밥은 밥과 재료의 양이 일정해야 한다. 이건 단순히 예쁘게 싸기 위해서 혹은 재료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는 와중에 속이 모자라 김밥이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감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실패해 버리는 김밥이 생기고 그러면 자연히 처음에는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선 상태에서 몇 시간이고 김밥을 싸기 때문에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목 결림, 어깨 결림, 허리 통증, 다리 부종이 따라오고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롤 메이커를 오래 하면 대부분 손목 관절 통증으로 굉장히 고생한다.


나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비용을 벌기 위해 본죽에서 알바를 하면서 김밥 싸기가 고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롤 메이킹은 구직할 때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물론 본죽에서 김밥을 싼 것은 아니고 바로 옆 가게였던 김밥천국에서 급하게 일손이 필요할 때 가끔 구원투수로 가서 김밥을 쌌었는데, 정말 이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S처럼 하루 종일도 아니고 단 한두 시간이었지만 계산이나 포장 따위나 하던 카운터 알바인 본죽 알바는 꿀잡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S의 경우 특히 손목 통증으로 고생한 기억이 나는데, 계속 파스를 붙이다 보니 나중에는 집에 파스가 냄새가 나면 S가 퇴근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였고 저녁 늦게 S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시큼털털한 초대리 냄새와 파스 냄새가 엉겨 온 집에 진동했다. 완전히 녹초가 된 S는 눈이 반쯤 감긴 상태에서 그대로 씻고 잠들기 일쑤였고 일도 거의 쉬는 날 없이 계속했기 때문에 피곤에 피곤이 쌓여 그나마 쉬는 날에도 파충류처럼 가만히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거기다 정신적으로 그다지 편한 직장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텃새 때문에 고생을 하더니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은 순간부터는 거의 부려먹는 수준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시키는 통해 힘들어했다. 쉬는 날임에도 갑자기 연락을 해서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물론이고 휴식 시간도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직원 식사 형편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음식을 파는 가게에서 형편없는 직원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은 급여의 경우 말해봤자 입만 아픈 그런 수준이었다는 걸 짐작케 하지 않는가.


시드니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S를 괴롭혔던 스시 트레인 가게. 그 뒤로 가끔 지나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스시를 냠냠거리며 먹는 현지인들을 볼 때면 불현듯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S의 노고와 열정이 불쾌한 초대리 향으로 코 주변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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