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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되짚어보는 일 정체성

일이 주는 의미

by 사공리셋

20대 때 설정한 목표는 항상 ‘더’가 우선이었다.

‘지금보다 더 많이 버는 일’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일’

‘지금보다 더 처우가 좋은 직장’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을 불안으로만 보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퇴사와 동시에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동네에 있는 센터에 ‘언어치료사’로 일을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마치 내가 없어진 것 마냥 쉬는 시간이 불안했던 터였다.

고작 한달 만에 관두었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쉬운법...남편의 어이없어 했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새로운 영역의 일을 도전하기에 나의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아서였다. 공부를 시작할 때 그러했듯 일을 시작함에도 큰 뜻이 없었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책임감이 너무 큰 직업영역이었기에 오히려 자괴감 마저 들었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15년째 진로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숙 작가님이 쓰신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에서 자기 정체감이 높아질수록 불안은 감소한다고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수록 불안이 줄어든다는 얘기인데 결국 자기 탐색의 시간을 계속 가져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보았다.

불안감이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 반복해서 해온 일은 곧 나와 연결되어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없어져버린 현시점에서의 공허함은 결국 나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일과 나의 정체성을 동일시하게 되었던 것이 힘든 이유이기도 했다.


<정체성의 심리학>의 저자 박선웅 님의 글에서 보면 “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 의미가 있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등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렇게 선택했을 때에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되고, 다음번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런 선택들이 모여서 결국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라고 나와 있다.

직업이 정체성이 되어버리면 외부의 압력에 의해, 또는 타인에 의해 직업을 잃게 되었을 경우 그것이 곧 본인을 잃어버린 느낌이라 무기력함이 찾아오고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게 되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본인이 선택해서 즐겁게 해 오던 일이 사라진 거라면 또 다르게 연결되어 다른 형태로 자신을 아는 만큼 다시 일어서게 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지금처럼 그렇지 못한 경우 좌절과 우울로 치닫게 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는 거였다.

다시 20대의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다면 직접적인 경험을 쌓는데 보다 적극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 같았다. 성취와 목표를 쫓는 삶이 아닌 지금 내가 이곳에서 만족스러운 삶, 즐거움이 아닌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삶이면 충분할 것 같다.

마흔에 다시 나를 찾겠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누구 엄마, 누구 딸, 누구 집 며느리 등 사십이라는 숫자에 붙여진 책임감들로 에너지를 나눠 써야 하기에 절대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본다는 건 절대 쉽지 않다.

‘N잡러’라는 유행어가 그래서 나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돈도 벌어야 하고, 여러 가지 형태로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어 쓰면서 메인잡으로 생활안정 보장 이외에 나의 노력을 조금 더 보태어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볼 수도 있고, 무모한 도전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용어인 것이다.


<돈을 만드는 N잡러의 사람을 모으는 기술> 최광미 저자가 말했다.

“메인 잡과 사이드 잡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다. 육아에 내가 온전히 필요하다면 회사이든 N잡이든 그만둘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그만둘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이거다. 맡음의 역할과 책임 중에 누구 엄마라는 직함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질 높은 시간을 놓쳐버리면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가족과의 조화 안에서 지금 내가 해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며 나를 알아가 볼 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인 지금의 시간을 놓치기 싫었던 이유도 컸기에, 그렇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며 나를 다독였다.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

불안이 얼굴을 내밀면 매일 되뇌었다.

‘뭐 해 먹고살지?’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의 책 읽는 속도가 이렇게 빠른지 몰랐다. 짧은 시간에 그 책을 다 읽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바로 책 안에 안내되어 있는 카페에 가입하고 수강하기 위해 연락까지 했다. 그 책은 바로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면서 관리를 하고 돈을 버는데 그 수익이 몇 천만 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와 신세계인데?’

수강료가 천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손이 떨려 전화를 끊어버렸다.

물론 잠시 고민도 했다. 1000만 원 투자해서 내가 평생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겠는데 통장 잔고가 얼마지 생각하면서 조회했던걸 보면 꽤나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컸었던 것 같다.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었는데 몇 시간 뒤 다시 연락이 왔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멈칫한 걸 알아채고 수강료를 깎아 주려고 전화한 건가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받았다.

“지금 두 자리밖에 남지 않았는데 먼저 입금한 사람 순서대로 가능합니다”

이 나이쯤 되면 이 정도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눈치로 안다.

굳이 먼저 연락해서 재촉하는 강의라면 스스로 인기가 없는 강의임을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생각 들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반값에 듣게 해 준다 해도 고민했을 나에게 수강 자리 얼마 안 남았다는 전화는 설득력 제로였다.

궁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아 여기 말고 좀 싼 다른 곳은 없나 찾아보는 찰나 무서운 마케팅의 효과!

네** 카페로 개인 쪽지가 날아왔다. 같은 내용을 강의하는 곳이었는데 여전히 비쌌지만 수강료 천만 원이 귀에 꽂혀 있던 터라 상대적으로 싸다는 느낌을 받는 건 누구나 한두 번쯤 경험해 보아서 잘 알 것이다.

당장 도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사업하는 날이 오면 꼭 써먹으리라’ 내 생에 최고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들었던 강의치 고는 너무도 볼품없이 잠자고 있는 마케팅 재능을 가진 소유자로 남았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나니 ‘회사 말고도 돈 버는 방법이 이렇게도 많구나,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도 발로 뛰었는데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하게 있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돈을 버는 방법 밖에 몰랐을 때는 일자리를 잃으니 세상을 다 잃은 것 마냥 힘들더니 나만의 지식창고에 마치 보험이라도 들어놓은 듯한 프로수강러의 이력은 든든하게 쌓여갔다.

아는 만큼 불안이 줄어든다는 것은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프로수강러로 배움을 선택할 때의 기준도 생겼다.

결과로 도출하기 위함이냐,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냐를 먼저 생각하고, 단지 알아보기 위한 거라면 조금 싼 수강료를 지불해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편하게 배우고, 행동하고 직접 실행 보고 싶은 분야일수록 비싼 수강료를 지불해야겠다는 기준이 생겼다.

배움은 그 자체로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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