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옆자리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또박또박 한 단어씩 말했다.
“이제 그만 사라져주지 않을래?”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다. 그저 허공일 뿐이다. 뻥 뚫린 허공 속으로 태양은 무시무시한 열을 퍼붓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삐죽삐죽 흘러내릴 정도의 더위였다.
8월 초 한여름 한낮 더위에 제주도의 오름에 오른다는 것은 정상적인 판단으로는 미친 짓이었다. 오늘 같은 날, 따라비오름을 오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제주의 오름이 그러하듯이 따라비오름도 정상에 그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보았다.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이라면 무조건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길을 나섰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절박감에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에 자리한 따라비오름은 가을 억새로 유명하다. 가을도 아닌데 한여름에 따라비오름에 오르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의자, 빈 의자 때문이다. 정상에 놓여 있는 의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린 거렸다. 오름 입구부터 더위로 숨이 턱턱 막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허나 땀범벅이 된 얼굴을 훔칠 생각도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가끔 융단 폭격하듯이 햇볕이 내리쬐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빼고는 사위가 고요하다. 그 정적을 간혹 깨는 것은 나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정상에 가까스로 올랐다. 정상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의자에 다가갔다. 나는 너무도 그리웠다는 듯이 정성스레 손으로 쓰다듬는다. 빈 의자에 앉는다. 얼마 만에 홀로 앉아본 의자인가. 항상 관광객인 사람들로 채워진 의자였기에 생각이 저절로 많아진다. 그리고는 눈을 감는다. 결코, 피곤해서가 아니다.
방랑이란 외적인 공간의 이동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로의 시간 이동도 방랑의 한 구역이다. 그것은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때론 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오늘 따라비오름 정상의 빈 의자를 찾은 것은 이 같은 방랑의 여정에 결단을 내리는데 최적의 장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를 죽여야 하는데 이보다 최적의 장소를 찾기는 어렵다.
대학 시절 신문사 보급소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낡은 건물 이 층에 자리한 신문보급소 사무실에 8명의 배달원이 함께 잔다. 조그만 공간에 성인 8명이라니. 공간이 너무 비좁다. 먹는 것은 고사하고, 잠이라도 제대로 자 봤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학교에 가려면 언덕을 넘어야만 했다. 매일 넘어가는 언덕배기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다. 밤사이에 내린 눈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눈길을 걷느라 힘이 소진한 데다 감기 기운마저 있다. 덕분에 오전 수업시간이 무척 힘들었다. 기운을 내야만 했다.
학생 식당을 찾았다. 소위 ‘벤또’라는 이름의 도시락통을 끄집어냈다. 뭉툭하고 큼직한 양은으로 만든 도시락 통이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젓가락 두 개를 쥐었다. 단단히 잡았다. 손에 꽉 쥔 젓가락으로 도시락통의 밥을 쑤셔댔다. 송곳으로 쑤시듯 도시락 통의 밥을 쑤셔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밥이 얼어있었기 때문이다. 언 밥은 돌멩이처럼 단단하다. 숟가락질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 감기 기운으로 입맛이 썼다. 억지로 집어넣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기 위해서이다. 토악질하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얼음 덩어리 같은 밥을 씹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씩 꽁꽁 언 밥을 떼어내 입에 쑤셔놓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도시락통에 김이 서렸다. 뜨거운 국물이 도시락에 가득 담긴 것이다. 배춧국이었다. 배춧국이 그렇게 맛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해 겨울 국물 있는 뜨거운 밥을 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빗자루 대신 국자 통을 들고 서 있었다.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줌마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나는 굳게 얼어붙은 얼굴로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학생 식당에는 ‘집시의 바이올린’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당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떠돌이 집시였음을 잘 안다.
나는 굳어진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니 평생 굳은 얼굴을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고 살아왔다. 가끔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슬며시 드러나는 굳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남들 앞에 서면 웃는 얼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굳은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늘 나를 따라다닌 것은 굳은 얼굴이었다. 그 존재가 버거워서 도망치려 하면 어느새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것은 굳은 얼굴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러하다. 따라비오름에 오는 동안 줄곧 떠오른 것은 나의 굳은 얼굴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평생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굳은 얼굴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굳은 얼굴, 이제는 그만 죽어줄 수 없는가?”
굳은 얼굴로는 나는 삶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내가 꿈꿔왔던 삶이 아니다. 내가 꿈꿔왔던 삶은 적어도 굳은 얼굴의 삶은 아니다. 굳은 얼굴로 세상에 다가서면 세상 역시 내게 문을 닫고 벽이 되어버렸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줄곧 벽이 되어버린 문을 두드리고 두드렸다. 하나의 강력한 의문이 남는다.
“나는 왜 그토록 문을 열려 했던가?”
나는 삶이 축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는 축제를 고대했다. 전율이 일어나는 축제의 현장이 진정한 삶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축제는커녕, 축제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축제가 주는 삶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이는 대신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이면 달라질 거야 하는 거짓된 신기루로 피곤한 오늘의 삶을 속여왔다. 그렇다, 나는 자신을 속인 사기꾼이었다.
내가 사기꾼이라는 것은 작은 문제다. 원인을 알고 있었고,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우유부단하게 차일피일 미룬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한마디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결단과 용기가 없다는 것은 미성숙의 특징이다. 칸트는 ‘미성숙이란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을 활용하겠다는 결단과 용기가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결코 성숙하지 못한 ‘어른 아이’로 살아온 것이다. 미성숙한 어른아이에게 문을 열어줄 축제의 현장은 없다.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나는 문이 오래전에 단단한 벽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어른이나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 그 첫째 이유이고, 미성숙을 던져버릴 용기가 없었던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다.
성숙은 타인에게 속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속을 수도 있다. 이용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용당할 수도 있다. 즉 나를 보호하는 굳은 얼굴, 즉 단단한 돌멩이 같은 것이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속살이다. 부드럽고 민감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잘 알면서도 미성숙에서 성숙의 단계로 뛰어넘지 못했던 것은 상처, 그놈의 상처 때문이다. 상처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결단을 내리는 것에 주저주저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버려야 한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권리는 진정한 인간 존재의 자세가 아니다. 이제는 나는 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성숙한 자세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안다.
반대로 상처받을 능력이 바로 성숙 자체라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안다. 상처를 받을 줄 알면서도 굳은 얼굴을 펴고 가슴을 활짝 여는 용기와 결단을 내리는 것이 성숙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퍼 리의 저서 ‘앵무새 죽이기’에는 용기와 성숙한 삶에 대한 주인공의 대화가 나온다. 성숙한 척하는 굳은 얼굴들에 던지는 외침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외침의 울림에 시선을 돌려서는 안 된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할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땠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왜 그토록 축제의 문을 열려 했던가?”
굳은 얼굴로는 축제의 문을 열 수 없다. 성숙한 자만이 삶의 축제 문을 여는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상처받으면서도 용기를 내서 가슴을 여는 사람만이 삶의 축제현장에 도달할 수 있다. 축제의 현장에는 진정한 인간 존재의 삶의 흔적이 곳곳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자를 든 청소부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환한 얼굴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집시의 바이올린’의 구슬픈 선율도 아름다운 무곡(舞曲)으로 흐른다. 그 이상으로 삶의 전율과 경이로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