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검사 중 SCT 문장완성검사는 앞에 시작하는 문구를 주고, 뒷 문장을 채우게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중 '어머니'에 관한 항목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는....
대게 어머니들이란....
나는 어머니를 좋아했지만....
심리검사를 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마라는 존재를 '자식을 위해 희생하시는 분' 으로 묘사하고 있는 걸 보면서 왠지 씁쓸했다. 왜 우리네 엄마들은 희생하는 존재로 아이에게 각인되어 있어야 할까.
물론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뒤따른다. 자신의 욕망과 생활의 기본권 등을 거의 박탈당하다시피 하는 엄마가 대부분 그 역할을 떠맡고 아이를 길러내는 1차적 책임을 떠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의 전적인 희생은 대부분 아이가 그 내용을 기억할수도 없는 시절, 아이의 어린시절에 이루어진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엄마로부터 독립해 나갈 수록 아이는 엄마의 생활을 볼 수 있게 되며, 이때부터 엄마의 희생이란 선택적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조차 자신들이 기억할 수 없는 어린시절의 어머니의 노고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을 어머니 인생의 방해물로서 기억하는 애잔한 죄책감이 묻어나는 건 왜일까.
엄마가 여자로서, 한 인격체로서의 독립된 삶을 이어가기 힘든 사회인 탓에, 아이가 성장한 후 새로이 자신의 꿈을 찾아 사회적 역할을 찾지 못한 채 가정에만 머물러야 하는 사회구조탓도 있을 것이고,
엄마라는 존재를 과대해서 부풀려 엄마가 아이의 평생 성격과 인생을 좌우하는 마냥 엄마의 육아의 중요성을 과대포장하여 여성들을 짓누르는 잘못된 모성신화에 대한 믿음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또한 여자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놓아버리거나, 아이들과 가족 등 뒤에서 자신의 삶을 잃은 채 "희생하는 엄마" 로 자신의 정체성을 한계지어버리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희생하는 엄마' 의 위험성은 아이가 사랑 너머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데 있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희생했다는 사실은 나를 가벼이 내 욕망을 좇아 날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 사람을 쉽게 떠날 수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훨훨 날아가는 것이 왠지 죄스럽다.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이 자신에게 몽땅 걸려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감행한 희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잘 모를 경우에는 더하다. 그래서 '희생'이란 단어의 앞 표면의 뜻은 사랑과 감사일지언정, 뒷면엔 부채감과 죄책감이 같이 묘하게 맞닿아 있는 듯 하다.
아이가 엄마의 희생을 이해하고, 자신이 누군가가 그렇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희생하여 지켜낼 가치가 있는 아이였으며, 그토록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성인이 된 자식의 마음속에 '희생한 존재'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좀 안타깝다.
차라리 '무언가를 하고 싶은 엄마 또는 원하는 뭔가를 하는 엄마' 로 기억되는 것이 자식에겐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도전하고 경험하는 엄마로 자식에게 기억된 경우, 최소한 자식에게 죄책감 대신에 '나도 엄마처럼 하고 싶은 걸 맘껏 해도 괜찮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도 괜찮다' 라는 큰 가르침을 엄마의 삶을 통해 알려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나도 엄마처럼 원하는 건 마음껏 해도 괜찮다.
실제로 심리검사에서 자아강도가 높은 사람들의 경우 엄마를 희생한 존재라기보다는 우리 엄마는 "꽃무늬를 좋아한다" 거나, 우리 엄마는 "화가 나면 무섭다" 또는 "발랄하시다" 등등 성격적 측면으로 묘사한 경우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좀 더 많은 심리검사를 진행해봐야 알겠지만.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 "젖을 주는 어머니는 많지만,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많지 않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어머니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 가 아이들에게 되물림되면서 그들의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인데, 왜 우리는 최근까지도 거꾸로 엄마들의 희생만을 과하게 요구하는 발달 육아 이론들을 들이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들이 왜 자신들의 꿈을 포기하였고, 왜 여자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다시 통합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멈추게 되었는지, 또는 최소한 멈춘 것처럼 비춰지는지를 돌아보는 것. 이 문제는 우리가 함께 진지하게 풀어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정책생성자들과 정치가, 사회구조의 요직에 있는 자들은 별로 관심없어 보여서 슬프다. 그들은 아마 엄마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며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부여하려는 듯 보여 좀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