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질문.

by 실루엣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


나도 타인의 삶에 지옥이었던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상처였고 스트레스였던 순간들이. 매순간 미숙한 존재이며, 그 사실을 그 순간이 지나서야 항상 깨닫는 나는 지금 그 순간들을 가끔 돌이켜보면서, 그래도 그런 경험 덕택에 내게 상처가 된 사람들을 용서하는데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상한 상태를 내게 보이는 사람들을 영원히 '이상한 사람' 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한다.


그런 많은 실수의 순간들 중에서도 , 아직까지 가슴 깊이 남아있는 한 일화가 있다. 아이 셋을 데리고 근처 마트 놀이방에 간 날이었다. 나는 한 군데 자리를 잡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있을게. 놀다가 엄마 찾으러 여기로 와.


그 때였다. 조용히 반대편에서 놀고 있던 7-8세 정도 되는 아이가 우리 첫째를 따라 밀쳤다. 뭐가 맘에 안들었나 싶어 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우리 둘째를 세게 밀어 넘어뜨리고, 뒤에 기어오는 셋째의 머리를 손에 들고 있던 블럭으로 내리쳤다. 돌도 되지 않았던 셋째는 발라당 넘어져 날카롭게 울음을 터뜨렸다.


놀라기도 하고 화가 잔뜩 난 나는, 셋째에게 블럭으로 머리를 다시 한 번 내리치려는 그 아이의 손을 급하게 막아 높게 잡아들고 날카롭게 물었다.


너! 니네 엄마 어디 계시니?? 어?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저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엄청난 힘으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고, 우리 아이들을 향해 분노의 주먹을 날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어른인 나도 제지하기 힘든 엄청난 힘과 분노의 눈빛이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7-8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이런 힘과 분노가 응축되어 있던 걸까. 난 그 에너지의 크기에 놀랐다.


놀이방 직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 직원은 그 아이를 잘 아는 모양인 듯, 이름을 안타깝고도 다정하게 부르며 '누구야.. 그러면 안되지' 라며 달랬다. '아빠 불러줄까? 아빠 불러줄께' 라고 아이에게 이야기 후, 여전히 발버둥치는 아이를 제지하며 '이 아이 잘 아세요? 엄마는 없어요?' 라고 묻는 내게 말했다.


아, 얘는 엄마가 안 계세요. 여기 가끔 오는 아이인데, 발달 장애가 있어요. 아빠가 계시긴 한데 잠깐 장보러 가셔서..


아차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그 아이의 인생에 상처로 남을 정말 잘못된 질문을 했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빠르게 그 아이가 우리 아이를 공격하기 시작한 그 시점을 되돌아봤다. 조용히 잘 놀고 있던 그 아이는, 나의 그 말에 반응했었다.


엄마는 여기 있을께. 놀다가 엄마 찾으러 여기로 와.


정말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혼자 블럭 가지고 앉아 잘 놀고 있던 아이가 일어나 우리쪽으로 다가와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 차례로 공격한 것이.


그렇게 나는 얼어붙어 아직도 분노에 차서 악다구니를 쓰며 나를 보고 발버둥치는 아이를 그저 바라봤고, 연락을 받고 황급히 아버지가 달려와서 아이를 나무라며 내게 사과하는 걸 멍하게 받았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좀 느린 발달 장애가 있어서, 제가 잘 봤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렇게 그 아버지는 아이가 버젓이 듣는데서 그렇게 자신의 아이가 '발달장애' 라고 거듭 내게 예의바르게(?) 사과하고, 아이를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는 분노덩어리 자체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번쩍 들처 업고 멀리 마트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아이는 나가는 순간까지 멍한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눈빛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발달 장애는 무슨... 누구보다 멀쩡한 거 같은데..


그 때 깨달았다. 잘못된 질문, 말 한마디는 다른 사람의 삶에 큰 상처와 지옥을 한순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차라리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뭐에 그렇게 화가 난거니?
왜 그러는 거니?


자기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왜 그렇게 날뛰는지 모르고 분노에 휩싸인 그 아이는 그냥 무의식적으로 다른 아이의 삶에 돌을 던진 것 뿐이다.


블럭으로 세게 얻어맞고 밀쳐 넘어져 무릎이 까진 우리 아이들은 내게 달려와 아프다 울면서 잠깐 안겨있다가, 곧내 진정되어 다시 뛰어나가 남은 시간 내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잘 놀았다. 하지만 정작 때린 그 아이는 누구에게서 그 분노를 달랠 수 있을까. 그 지옥같은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누구에게서 배워야 할까.


왜 화가 났었는지 물어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자신이 그저 '발달장애' 라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 분노는 더 타올랐을 것이다. '발달장애' 라서 대화하려는 시도도 없이 그냥 힘으로 제압해 들처업고 가는 그 아버지로 인해 그 분노는 후에 정말 심각한 화염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처에 상처를 켜켜이 쌓은 아이들은 , 힘이 커지고 머리가 커지면서 더 큰 돌을 들고 돌아와 내가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내 아이들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려 할지도 모른다. 결국, 내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는 그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에게 올바른 질문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신문 한 켠에 나오는 어이없는 범죄들에 대한 언론과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씩 불편해졌다.


그들이 잘못한 건 당연하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저 범죄와 악인을 곱씹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미 '악의 화신'으로 완성되어버린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상태까지 악화되도록 방치되어왔는가를 더 들여다보는 방향이 되어야 하지는 않을까. 개개인에게 비난과 분노를 퍼붓고 엽기적인 헤드라인의 뉴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집합체인 사회에서는 이제껏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하지는 않을까.


사회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하지 않을까


아주 조금씩 어떤 책임감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친사람'들이기 이전에 사실은 굉장히 '아픈사람들' 이었을지 모른다. 타인에게 돌을 던져 정작 그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듦으로서, 이미 망쳐져버린 그들의 삶을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때를 놓쳐, 그들이 '완성된 괴물' 이 되어 우리의 삶에 돌아오기 이전에, 우리는 그들을 돌봐야할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을 무한히 품고 있는 '완성되지 않은 괴물'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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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아가

#난무엇을할수있을까

#이제내게도사회의식이란게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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