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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15. 2024

산티아고 드 깜포스텔라 -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 그 당시엔 한국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30킬로,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걷는 나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힘들게 터벅터벅 길을 가는데, 앞에서 자전거가 나를 비웃듯이 쌩~ 하고 지나갔다. 


아 좋겠다 빨리 가서;;;라고 무심히 보는데, 그 청년이 갑자기 멈춰 서서는 허리를 숙이고 뭘 하고 있는 거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코피를 심하게 쏟고 있었다. 


어머!!! 어떻게 해!!! 
피난다 피나. 어머 아유 오케이?? 
어머 피가 너무 많이 나 ~~ 


코피를 뚝뚝 너무 많이 흘리는 그 청년을 보고 내가 당황해서 한국말로 난리 법석을 치고 내가 갖고 있던 손수건으로 일단 그 청년의 코를 틀어막았다. 


그가 살짝 당황했던 거 같지만 일단 나는 코피가 심상치 않다 느꼈기에 정신없었고 평소에는 시니컬하지만 그때만큼은 단호하게 그 청년의 콧구멍에 내 손수건을 펼쳐서 능숙하게(?) 돌돌 말아 야무지게 쑤셔 넣었다. 


그렇게, 길 한가운데서 너무도 당황했던 그는 내게 엄마의 따스함 같은 걸 느껴 정말 큰 고마움을 느낀 듯했고, 나 또한 인간의 본능적인 선의(?)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던 강렬한 해프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코피가 멎은 뒤, 그는 그날의 남은 거리를 내 옆에서 저렇게 자전거를 타며 내 느린 걸음에 속도를 맞추어 따라왔다. 나는 그때 서른 살이었고, 그는 독일의 고등학생 17세였다. 독일의 자신의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넘고 넘어 스페인 북부의 산티아고 길까지 가고 있다는 그는 굉장히 자랑스럽게 그리고 경쾌하게 말했다. 


학교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뽑았는데, 나와 이 자전거가 전교 2등을 했어요 ㅋ 다른 친구들은 다 남녀인데, 저는 이 자전거랑 베프거든요. 

나는 그때도 17세라는 저 청년이 그리 귀여웠다. 자전거가 그렇게 좋아??라는 말에 


아 진짜 우린 베프예요. 


라고 말하던 독일 청년. 느리게 그렇게 자전거를 타기도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그 후로도 한 삼일동안 저렇게 같이 갔다. 그리곤 헤어졌다. 그가 연락처를 줬던 거 같은데 몽땅 잃어버려갖고는... 


오늘 그 자전거 소년이 떠오른다. 지금 28살쯤 됐겠네? 귀여웠던 청년. 





또 다른 추억도 있다. 


유럽에 홀로 여행하는 4개월 동안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혼자인 여자를 유혹(?) 하려 접근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그 천진난만했던(?) 태도가 그들로 하여금 나쁜 맘을 먹지 못하게 했던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들을 마구잡이로 거부하지 않고 같이 얘기했고, 같이 놀았고, 어떤 성적인 싸인을 보내오면 그때는 "네가 매력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난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다"라고 미안하다 부드럽게 거절했었다. (그땐 남자 친구가 없었지만 지금의 신랑이 맘속에 있었으므로) 그래도 네 남자친구가 여기 없지 않냐고 하면, 내 마음속에 있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안될 것 같다 미안하다 거절했었다. (그러면 신기하게 포기하더라). 




유럽에 머문 지 4개월쯤 되던 어느 날, 산티아고 순례 중의 일이었다. 산티아고에서는 대부분이 순례자들이라 그런지 다른 곳과 달리 그렇게 찝쩍(?) 대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루 30킬로씩 걸어서 다리를 절뚝절뚝 절며 만나면 서로를 보고 "너도 순례자야?" 라며 얼굴에 웃음을 띠던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날도 30 킬로를 배낭을 지고 걸어와한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그곳은 주인이 상주하지 않아 11시에 문을 닫는다고 쓰여 있었다.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과 와인을 먹고 웃으며 사람들과 떠들다 보니 11시 반쯤. 급하게 왔지만 알베르게 문은 닫혔고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주인장은 퇴근한 상태. 

문 두드리다 난 포기하고 근처 펍(?)이었나? 한 가게에 그냥 들어가 앉았다. 맥주 한 캔을 시켜놓고 오늘밤 어쩌지. 여기도 문 닫으면 그냥 길에서 자야겠네 라며 포기한 채 앉아있었다. 


한 멋진 스페인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올라, 세뇨리따 뭐 이런 내가 아는 유일한 스페인어가 들리는 걸로 봐서 그는 내가 모르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다. 젊고 잘생긴 건장한 청년이 달콤한 표정으로 뭐라 얘기하는데, 난 스페인어를 모르겠지만, 자꾸 우리 가서 같이 자자는 것이었다. 몸짓 발짓으로 같이 가서 자자고 하길래, 난 미안하지만 싫다고 계속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 남자는 너무너무 아쉬워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나한테 계속 얘기했다. 


그 펍 주인도,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간간히 그 남자는 구경하는 사람들과 무슨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와 그 남자를 둘러싸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참다못한 그 펍 주인은 내게 


"이 남자가 같이 가서 자자는데~ "



라며 천천히 바디랭귀지로 내게 또 설명했지만 난 싫었다. 그래서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한 30분쯤 그 남자가 찝쩍댔을까. 참 포기도 안 한다.. 끈질기네... 나 갈데없는 거 아는 거 아니야 라며 불안하면서도 짜증이 슬슬 날 즈음이었다. 무시하고 바를 향해 앉은 채 , 계속 맥주를 홀짝 거리는데 영어가 들려왔다. 조금 전 새로 들어온 듯한 그 남자는 내게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아 오늘 단체로들 왜 이래... 라며 짜증 나서 "네, 무슨 일이죠?"라고 물으니, 


아, 이 청년이 아가씨 데려가고 싶다는데요, 알베르게 문 닫혀서 아가씨가 아까 문 두드리는 걸 듣고 어디 갔나 찾으러 나왔대요. 호텔 문 열어두고 왔다는군요. 같은 방 묵는 사람이라고 같이 가자는데요. 


하아................. 


.......................




그렇게 난 조용히 그 잘생기고 멋진 청년을 따라 알베르게로 무사히 들어가 내 침대에서 멋쩍지만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아마 코도 곤 것 같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 청년 일행은 아침 새벽부터 길을 떠나고 없었다. 




그 외에도 , 너무 많은 따뜻한 사람들, 사람들... 그 사람들의 온기는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내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다. 나의 따뜻한 미소들을 포착해 준 사람들, 따뜻한 미소를 남긴 사람들. 


멋진 풍경들보다 더 아름다웠던 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그 길은 나에게 '사람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있었다. 

마음이 길 곳곳에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길가에 해바라기는 웃고 있었고, 사랑을 내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시절만큼 내 인생이 확실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여기는 화살표가 확실하게 있었으니까. 
그 길만 따라가면 안전했기에. 


그래서 순례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치유의 길이기도 했다. 

사람 한 명 주변에 보이지 않았어도, 그 화살표가 나와 계속 함께 했으므로. 


#산티아고여행기

#산티아고순례길

#유럽여행기

#스페인여행기

#퇴사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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