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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23. 2024

스페인 바르셀로나

 - 현실로 떠날 준비 

그렇게 산티아고를 한 달 내내 걷고서, 나는 비로소 '나의 현실'로 돌아갈 채비를 끝마쳤다. 그 길의 여정에서 나를 안전하게 안내하던 '노란 화살표는' 결국, 나를 '나의 삶' 속으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하는 이정표였다. 



순례자란, 어떤 특별한 길을 걷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순례자였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가장 숭고한 순례자들이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로, 나의 나라와 나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즈음, 나의 여행을 돌아보니 이상하게도 풍경이나 느낌, 그리고 지역이나 장소들이 아닌 사람들만이 내 마음속에 가득하게 남았다. 



바로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시니컬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이유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모습'을 누구보다 좋아해서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길 곳곳마다 만난 사람들과 나는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그들과 기꺼이 삶을 나누었다. 나를 침범해 들어오지 않고 존중하는 이들과 얼마든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여행 내내 깨달았다. 그리고, 마지막 깨달음이 찾아왔다. 


신은, 그리고 삶은 ,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그 사이에 있다. 


그 따뜻함, 관심 어림, 그리고 그 눈빛 들과 다정한 말들로부터 내가 진정으로 치유되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들과 아름다운 자연은 내겐  휴식이었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치유한 것들은 그들의 눈빛, 말투 다정한 관심들이었다. 


나는 순례자의 길, 을 드디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길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 곳곳에 있을 것이고 나는 나의 현실에서 '까미노 드 산티아고'를 재현시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간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또 마음에 꼭 맞는 친구들을 만났다. 



퀘벡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내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며 일주일간 베스트 프렌드처럼 게스트 하우스 안팎을 붙어 다녔다. 


낯선 환경, 낯선 문화에서 온 그들이지만 이상하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그들은 불어를 쓰느라 영어도 약간 서툴렀음에도 우리는 이상하게 서로의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들었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떠나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상하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무슨 뜻의 눈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눈물이었는지, 

나의 이 긴 여정, 4개월간의 유럽 여행이 이제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나의 현실'이라는 깨달음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여행은 잠시 동안 나의 현실의 삶을 도피해 주는 휴식처이자, 

앞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교과서였다는 점이다. 


돌아가서는 보다 밝게 웃고, 경험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매일매일을 새롭게 여행처럼 지내보리라 작은 다짐을 했다. 또 다른 여행을 힘들여 거창하게 떠날 필요 없이 , 매일매일을 여행같이 살아보리라. 결심했다. 아니,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삶, 현실이
그 자체로 짧은 여행이니까. 

+ 그리고, '나'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때그때 '나'는 각기 다른 상황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그때그때 순간마다 다른 존재로 다채롭게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였으므로. 더 이상 찾아야 하는 '나'라는 사람 또한 여행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저, 변화하는 존재. 새로움에 열려있고 눈을 반짝이며 삶을 살아나가는 존재로서 '여행'이라는 삶의 현실로 반갑게 돌아왔다. 



#퇴사여행기

#유럽여행기

#자아 찾기 여행

#까미노드산티아고

#스페인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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