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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23. 2024

에필로그 - 신이 깃든 사람들.

 여행 후 남은 것들 

-독일에서 막 스위스로 넘어왔을 때인가. 배는 너무 고프고, 환전한 돈은 없고, 소시지 앞에 서성이며 스위스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독일 동전을 모르는 척 받아달라며 세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다 대신 소시지 값을 대신 내주었던 그 스위스 여자. 소시지를 받아 들고 "내가 이 빚을 어떻게 갚지요?"라고 했더니 "후에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되지요~ "라고 환하게 웃으며 사라졌던 그녀. 


-프랑스행 기차 옆자리, 내가 아기처럼 프랑스어를 1부터 11까지 겨우 기억해 내서 쓰고 발음했을 때 "오오~~~!! 여보 이리 와봐! 이 여자아이가 프랑스 말을 해" 라며 진심으로 감탄의 눈빛으로 기뻐하며 나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 프랑스 할아버지. 


-소르본 대학 앞 카페에서, 내 더듬더듬 몇 개 늘어놓은 불어만으로도 내가 하려는 말을 다 알아듣고, 즐겁게 대화해 주다가 "너 불어 못한다며 어떻게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지??" 잠깐 의아해하더니 이제 자긴 가야 한다며 맛난 크로와상을 내 테이블에 갖다 주고 간 그 사람. 나도 참 의아했어. 


-터키 시골 마을에 새벽에 혼자 버스에서 내려 막막했을 때, 내게 내가 찾고 있는 도시에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 지도를 바닥에 그려가며 , 못 알아듣는 나를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며 근 몇십 분을 내게 설명하고 설명하려 애썼던 그 순박한 눈빛의 아저씨. 



-터키 고속버스에서 밤을 지낼 때, 옆자리에 머리 대고 엎드려 누워서 자고 있던 나. 누군가 내 머리를 살짝 들어 자기가 갖고 있던 수건을 머리에 아프지 않게 받쳐줬던 그 손길. 그리고 모두가 내리는 종점에서 미소 지으며 내 감사인사를 받을 새도 없이 수건을 받아 들고 자기 갈 길 찾아 사라졌던 그 청년. 



-뜬금없이 호텔 주소를 내미는 이방인에게 그 위치를 한참 설명하다가 못 알아듣자, 자기 가게를 비워놓고 그 먼 호텔까지 직접 안내해 데려다줬던 그 슈퍼마켓 주인. 


-술을 밤새 먹고 토를 해서 화장실을 엉망 만들었던 그날. 스페인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화장실 저게 뭐냐며 나한테 뭐라 핀잔줬을 때, 아직 울렁울렁 토하려 하는 내게 혹시 힘들어? 속이 안 좋아? 토하고 싶어? 라며 큰 바스켓을 어디선가 구해와 다정하게 내 앞에 놓아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피던 그 퀘벡청년.


-방문객이 혼자밖에 없었던 외딴 어느 기념관에서, 영어는 잘 못하지만 설명 듣고 싶으면 들어보겠냐면서, 영어로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해 보겠다고 긴장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정성껏 내게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던 그 기념관 안내인. 



-외딴 시골 인적 없는 산을 산책 중인 나를 보고, 차를 멈추고 내려 자신들의 아침식사로 보이는 막 사 온 빵을 내게 나누어주고서는 , 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 터키 가족. 



-용감하게도 일행도 없이 혼자 래프팅 갔을 때, 나를 터키팀에 같이 넣어주고, 11미터 높이에서 계곡에서 뛰어내려 한참 깊은 물속에 잠겨 당황해서 물 먹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한껏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내 등을 쓸어내리며 엄마처럼 "괜찮아 괜찮아 넌 괜찮을 거야. 숨 쉬어봐"라고 진심으로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진정시켜 주던 그 터키 안탈리아 여인. 



-"너 배터리 다 떨어졌지? 이리 와봐. 내가 어떻게 하면 배터리 채울 수 있는지 알려줄게" 라며 정말 내게 그 방법을 알려준 그 터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내가 물건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어가자 혹시 터키 원주민이 외국인인 나한테 사기 칠까 뒤에 조용히 따라 들어와 감시하던 그 터키 청년. 

-영어를 못하는 피시방 주인장에게 영어로 내가 가야 할 호텔 위치를 물으며 말이 안 통해 절망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내게 다가와 내 목적지까지 택시를 잡아 기사에게 이야기해 태워주며 택시비를 이미 모두 지불했으니 또 달라하면 주지 말고 넌 우체국 앞에서 그냥 내리면 된다 했던 그 국적 모를 청년. 

-대화는 하고 싶은데 서로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 내 가슴팍에 꽃을 달아주며 "촉 규젤" (참 이쁘다)라고 만족해하며 내 얼굴을 맞은편에 앉아 쳐다보며 싱글거리던 그 젊은 부부. 

-안탈리아로 가는 버스를 예약해 주고, 주의사항을 알려주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있거든 주저 말고 연락하라던 그 사람. 아들과 부인과의 일상에 나를 초대해 다정한 아빠의 일상을 보여줬던 그 평범한 부르사 아저씨. 



-너한테만 보여줄게. 이리 와봐. 라며 통제된 유적 안을 구경시켜 주며 감탄하는 나를 보고 행복해하던 그 유적 관리인. 

-같이 래프팅 했던 추억을 찍은 동영상 파일들을 컴퓨터에 직접 구워서는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까지 와서 연락 없이 맡겨놓고 갔던 그 이름도 모르는 사람.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말을 하라며 소리치던 버스기사의 버스를 타고 내리지도 못해 그냥 에라 모르겠다.. 가고 있는데, 기적처럼 다가와 "저기, 넌 나 내린 다음, 다다음 역에서 내리면 돼. 길 건너면 네가 찾는 호텔이 있어"라고 말해주고 버스에서 내린 청년. 

-동양인 없는 한적한 시골, 오픈 전 호텔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같이 놀아준, 그리고 무사히 나를 다음 행선지까지 데려다줬던, 나를 '길 잃은 고양이' 같다며 세심히 보살피다 다음 행선지로 안내한 그들. 내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며, 내가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에게 자기들 얘기를 분명할 거라며 그 사실에 행복해했던 그들. 




가끔 생각한다. 겁 없이 떠났던 젊은 날, 그들이 나를 보살폈구나..라고. 세상엔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았고, 운 좋게 그들을 만나 내가 무사히 자랐구나..라고. 앞으로의 내 삶에서도 세상이 따뜻하다는 점에 더 기울 수 있도록 큰 자원이 될 그들. 가끔 그들을 이렇게 추억한다. 

#신이깃들었던그들

#모두잘지내고 있겠지

#나도그들처럼다정하게살고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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