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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18. 2024

산티아고 드 깜포스텔라

 깨달음은 그 길에 없었다. 

산티아고 드 깜포스텔라. 그 길을 꼬박 한 달을 하루종일 걸었다. 

모르겠다. 요즘은 한국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지금 그 길을 걷게 되면 어떤 느낌 인지 잘 모르겠지만, 13년 전의 그 길은 참 외롭고도 다정했다. 


사람들이 그 길이 꼭 '인생 같다'라고 했는데, 그 당시 떠나 꼬박 한 달을 터벅터벅 걷고 나니 그 말 뜻을 이해했었다. 그 길을 걷고 나서 나는 무엇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현실로 돌아가야 했고, 그 현실은 '산티아고 길'이 아닌 것만이 분명하다는 것이 나의 깨달음이었다면 깨달음이었을까? 


그 길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아니, 그러면서도 무척 특이했다. 

나는 사실, 그 당시에 이 길을 걸으면 마치 부처처럼 한 달 내에 깨달음을 얻을 줄 알았다. 

그 당시 책을 냈던 사람들처럼, 이 길을 걸으면 무언가 내 삶에 확실한 '답' 같은 것을 얻을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티아고 중간 어딘가 즈음에서 꿈을 꿨다. 어떤 목소리가 무척 선명하게 내게 말했었다. 


너의 답은 이 길 끝에 없다. 
길 위에 있을 것이니,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를. 


일어나서 이 꿈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길이 내 삶의 어떤 '깨달음'이자 '완전한 치유'를 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한 달 내내  이런 아름다운 길들만한 달 내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리고 기대했다. 

이런 길이 아닌 척박한 길이 나오면 그래서 이내 실망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 달 내내 펼쳐지고 , 나는 계속해서 감탄만 하면서 치유되고 힐링되며 그렇게 삶이 순조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여행이 될 줄 알았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그랬겠지만, 그것은 내 내면의 변화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외부의 환경'이 아름답고 평온해서였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안내해 주는 것처럼, 안전하고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경험하는 것. 나는 그저, 저 노란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는 가장 쉬운 여행이었다. 그것조차 중간에 노란색 화살표가 보이지 않으면 안절부절 난리가 났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이 있음에도 걷지 못하고, 사람들이 있음에도 물어볼 엄두조차 잘 내지 못하며 길이 내 앞에서 끊긴 것처럼 난리를 피우며 혼돈에 잠시 휩싸였다. 


너무 온화한 순례길 위의 사람들. 

나를 보면 말을 걸어주고, 걱정해 주고 내 생명과 건강을 걱정해 주는 그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다정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점에 대해 이상하게 개탄했다. 왜 현실의 사람들은 그리 악독한 사람들도 있고 평화롭지 않은가에 대해 스스로 의아해했다. 나 자신조차도 그랬음에도 말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씨와, 풍경들, 

그리고 신비로운 자연들. 

이런 환경을 누리고 있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가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보고 친근하게 달려드는 동물들과 대화하고, 온기를 나누고 

이곳에 정말 천국이자, 힐링이 길이며 진짜 삶이라고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내가 여행을 미화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종종 '노란색 화살표'를 잃어버렸다. 중간에 끊기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패닉에 휩싸여 어디로 갈지 아무도 없는 거리에 서서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아 이런 기분을 느끼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 지구에 혼자 떨어진 그런 외톨이가 된 느낌으로 서서 운 적도 있다. 


난 어디로 가야 해?
난 여기서 완전한 이방인인데, 어디로 가야 사람들과 마을이 나오는 거지? 



\

그런가 하면, 한 번은 죽을뻔한 적도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30킬로미터 간격에 상점이 한 군데도 없었다. 8월 스페인 북부의 날씨로 나는 타 죽을 뻔했을 거다. 그때, 누군가가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너는 물이 꼭 필요하다면서 내 배낭 옆에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넣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중간에 돌 산을 오르면서 나는 느꼈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여기 탈진해서 죽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만큼,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하루 종일을 나 혼자 걸었던 날도 있다. 저 돌산과 태양과 싸우면서 말이다. 

한 명도 만나지 못해서 내 생각에 침잠하여 내 과거와 홀로 싸웠다. 

온갖 기억들이 다 기어 나와서 나를 괴롭히고 , 내 생각들과 싸웠다. 

그래서 나는 걷는 내내 겉으로는 터벅터벅 걷는 여행자였으나, 내면은 누구보다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어느 길은, 하루 종일 이런 비석만 나오는 길도 있었다. 1미터 간격으로 비석이 꽂혀 있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할 일이 없으니, 또 나의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걸어갈 만하면 나타나고, 뒤쳐질만하면 나를 앞서가는 비석에 드디어 내가 미쳐가는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마지막에 다가온 날, 배가 너무 고파 죽을 것 같던 길에서 마지막에 내 앞에 성벽처럼 들이닥친 계단. 

난 이 계단 앞에서 헛웃음을 지으면서 혼자 널브러졌던 것 같다. 

죽을까 봐 옆의 배낭에 꽂아놓았던 딱딱한 바게트 빵을 뜯어먹으면서 결국은 기운을 내서 저 계단을 오르기는 했지만, 정말 눈물의 빵인 것처럼 너무너무 힘들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랐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던 그 계단이었다. 


인생을 닮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 길의 끝 무렵에서야 이해했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만은 않고 

다정하지만, 다정하지만은 않고 

다채롭지만, 다채롭지만은 않고 

예측할 수 있되, 예측을 매번 벗어나는 

그 길은 산티아고였다. 


그 길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깨달음은 그 길 위에 있지 않다. 
너의 매일매일의 현실 위에 있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힐링이나 깨달음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달콤한 도피일 뿐이다. 
너의 삶의 진실과 깨달음은, 
너의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 위에 있다. 


4개월을 집에서 가장 먼 곳을 돌고 돌아 내가 먼 이국 땅에서 깨달은 현실이자 가장 깊은 깨달음이었다. 


#퇴사여행기

#유럽여행기

#산티아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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