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신혼여행을 떠나며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나는 이제 시댁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추석이나 명절에 가지 않은 지도 몇 년이 되었다.
여전히 신랑은 아이들과 함께 고향을 찾는다.
대신 나는 집에서, 혹은 친정에서 나의 깊은 휴식을 누린다.
이런 우리의 변화는 남편과 갈등을 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관계를 더 단단히 회복시켰다.
남편도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잘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다시 만나고 이해하는 작업중이다.
그렇게 자신의 옛 가족과 물리적으로는 경계가 생겼지만,
마음은 보다 튼튼한 연결다리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쉬웠던 건 절대 아니다.
우리가 서로 이제껏 서로의 마음과 입장을
온 힘을 다해 무시하던 몰이해의 시절을 힘겹게 건너왔다.
남편은 나의 노고와 난처한 입장들을 모른 척,
결혼은 ‘원래 그래’로 남들과 같이 대충 무마하려 했고,
‘나쁜 며느리’ ‘못된 사람’ 등으로 비난하던 시절.
나도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대신,
남편에 대한 비난, 시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마마보이’는 그냥 엄마랑 그냥 둘이 잘 살지 왜 나랑 결혼해서 애꿎은 사람 힘들게 하느냐며 독을 내뿜던 시절.
우리는 서로를 향해 날 선 반응과 비난으로
근 10년간 냉전 아닌 냉전을 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나누며 서로를 토닥이는 일에 너무 서툴렀었다.
서로의 귀를 막고, 잘못된 말들을 하며
서로에게 더 깊은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는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다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겠다고 성급히 결론 내렸다.
진짜 관계, 사랑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말이다.
우리의 진짜 변화는 예상치 못하게도,
관계의 끝자락에서 일어났다.
내가 남편으로부터 이해받기를 포기했던 그 시점부터,
더 이상 사랑받거나 인정받기를 다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것도 더 이상 우기지 않고
이제 백기투항한다는 마음을 먹었던 때.
나의 이제까지의 삶의 과정을 담담히 ‘내 입장’에서
분노 또는 비난 없이,
진실된 그 진짜 감정을 털어놓았을 때였다.
그동안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상처들
그것들을 창피하지만 용기 있게 온전히 꺼내놓자,
남편은 그동안 굳게 닫고 있던 귀를 처음으로 열었다.
그리고는 나의 상처를 그때부터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때,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서로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었음을.
서로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너무도 서툴렀음을.
내가 그에게 내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전해왔다.
사랑과 인정을 달라, 내 옆에 서 달라,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말을 ‘분노’와 ‘비난’이라는 잘못된 틀로 표현했다.
아니, 그것보다 나 스스로 조차도 나의 분노의 본질이
슬픔과 상처,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사랑을 포기하기로, 우리의 관계를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을 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의 진심을 왜곡해왔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그런 사랑’을 포기하니,
전혀 새로운 사랑이 열리기 시작했다.
서툰 표현방식들 너머,
상대의 진실된 마음과 연결되는 진짜 관계 말이다.
우리는 그 때부터 진정한 부부로서 다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결혼 후 1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까지
우리는 무늬는 ‘부부’였으나,
마음으로 진정 연결된 적이 없었다.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우리 사이에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자리하던 그 시간,
우리는 그토록 혹독한 단절을 겪어야 했음을 서로 이해했다.
그동안 홀로 외로이 내 상처받은 마음을
남편이 온전히 이해하며 감싸기 시작했고,
나 역시 남편의 입장과 고충을 깊이 이해하며
그를 비난하기보다 내 입장을 이해해주기를 요청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역할놀이에서 벗어나
진짜 부부로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짐이 되는 역할들만 내려놓기로 하고,
서로를 향한 ‘동반자’ 역할에는 더 충실하면서,
부부로서 더 깊이 연결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서로의 마음을 돌보면서.
그렇게 나에게 이해와 관심을 달라고
상대에게 요구하는 사랑이 아닌,
서로의 마음과 진심에 연결되는
‘너와 내’가 만나는 진짜 사랑.
서툴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그렇게 걸어가보기로 했다.
새로운 사랑을 향해.
결혼한 지 15년,
우리는 엄마·아빠, 딸·아들, 직장인, 집안 일꾼…
수많은 ‘역할’들을 수행하느라
서로를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우리가 만났던 애초의 그 본래의 모습들은
오래 전 자취를 감춘 채,
서로의 온기를 잃어버리고 산 세월이 더 길었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기로 했다.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여자와,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남자.
그 여자와 그 남자가 다시 만나, 두 번째 신혼여행을 간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로,
그가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을 하러.
부모님, 아이들, 회사 일, 집안 일에서 잠시 벗어나
단둘이 깊이 연결되는 시간.
관계는 헤어져야만 끝나는 게 아니다.
같은 사람과도 영원한 결별 없이
관계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능하다.
우리가 진정 결별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닌 '그 관계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능으로서의 관계를 맺던
이전 내 남편과 결별하고,
새로운 남자로서 내 남편을 다시 만나
다시 결혼하기로 했다.
무늬만 부부였던 세월을 지나
진짜 부부로 손을 잡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과 다시,
새로운 사랑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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