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각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
우리의 직관은 경험의 산물이다. 그것은 압축된 전문성이다.
Our intuitions are the product of our experience. They are compressed expertise.
— 게리 클레인(Gary Klein) – 미국 인지심리학자
터키에서 만난 두 청년의 이름은 아포와 마이크였다.
사실, 처음에는 낯선 두 남자를 따라가는 일이 머리로는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이 낯선 도시에 생판 모르는 저들을 따라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너무도 편안했다.
의심스러운 시선도, 불순한 기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는 내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머리라는 이성과 감각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어느 쪽이 맞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성과 계산이 이끌었던 삶은
내 영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느꼈으니까.
그 경험은 조금은 도발적이고 위험했지만,
결국 내 감각의 100% 성공으로 끝났다.
나는 그때, 내 감각을 온전히 믿어도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생전 처음이었다.
-울지 마, 그거 울 일 아니야.
-저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아 진짜 너 예민하네, 이 정도 가지고.
아마도 이런 말들이 기억나는 그 시초였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 금세 지치면
‘기력이 없다'라고 핀잔을 들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해서 대충 하면
‘끈기가 없다', '승부욕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하고 싶지 않음, 마음이 동하지 않은 느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언어로 평가되었고
나의 진심, 슬픔, 두려움, 공포 등은 예민함으로 무시되었다.
그렇게, 나는 자신의 감각들과 느낌들보다,
밖에 존재하는 외부 지표와 타인의 평가,
그리고 이성적 상황들에 모든 판단을 맡기는
몸만 큰 어른이로 성장해 왔다는 것을 그들을 만나고 알았다.
여행을 하면서 나쁜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그들의 말에,
나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
나쁜 사람들도 더 잘 속이는 경향이 많으니 정말 잘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그 터키 청년들은 황당하다는 듯 서로 앞다투어 동시에 내게 말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느낌이 있을 거고,
나쁜 사람은 섬찟한 느낌이 있을 거야.
머리가 아니라, 네 피부와 감각들이 반응해.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 느낌을 그대로 따르면 돼."
그들의 말은 내 안 깊숙이 잠자고 있던 감각을 흔들어 깨웠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 감각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고,
무시당할 이유도 없었다는 것을.
나를 병들게 했던 것은 나의 감각들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그 감각들을 부정하는 내면과 외부의 방해 때문이었음을.
오히려 내가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내 정직한 감각이었다는 것.
그 점을 바로 내 앞의 두 터키 청년,
아포와 마이크가 증명하고 있었다.
아포는 영어가 비교적 능숙했고,
마이크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였다.
그런데도 나는 아포보다 마이크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교감으로 말이다.
서로 말은 길게 하지 않았지만
표정과 눈빛, 단어 한마디가 가진 응축된 힘이 컸다.
짧은 단어로도 서로에 대한 삶의 배경과 서사가 전해지는 듯했다.
아마도 나이대가 비슷해서였을까.
그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눈웃음을 가졌고,
말투는 차분하고 빠르지 않았다.
재산은 많이 가진 것 같지 않았지만,
묘하게 일상이나 행동, 말투에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참 좋아했다.
주변 커피숍, 빵가게, 매점, 심지어 길 가다 만난 호텔 투숙객모두가 그의 'friends'였다.
반면 아포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슈퍼마켓에 들어가면, 혹시 사기를 당할까 싶어
뒤따라 들어와 주인장이 돈 세는 것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내 무거운 배낭을 자연스레 가져가 들어주며,
“터키에는 우리 같은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들도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해.”
그는 매번 그렇게 걱정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나는 아포와 마이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어떤 사심도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내 이성적인 판단, 즉 머리로는 두려워했다.
그들 말대로 길 잃은 타지의 여행객을 데려다가 재우고,
먹이고, 놀게 해 주고 보살피며 꼬박 2박 3일을 보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묻고,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태워주기 위해 내 배낭을 또 자연스레 짊어지고서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중간에 걷다 끈 떨어진 신발로 맨발에 가까운 모습으로도 내 짐을 대신 들어주며 웃던 청년들.
"이틀 전 우리가 바로 여기서 처음 만났었지? 맞아, 바로 여기였어 아하하."
“나중에 네가 할머니가 되면 손주들에게 우리와의 얘기를 해주겠지? 상상하면 정말 재미있고 멋지지 않아?”
그들은 내 추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 그리 기쁜 듯이,
행복한 듯 말하며 서로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들의 호의를 통해 배웠다.
세상에는 여전히 무심한 선의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의를 알아보는 방법은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 말대로, 내 평생에 걸쳐 그들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임을. 이 짧은 인연이 가장 소중하게 오래도록 남을 것임을.
그들은 내 삶 속에서 아직도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순박한 웃음과 호의가,
내 안에서 사람을 믿고 마음을 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감각을 온전히 믿는 법,
내 감각에 대한 신뢰를 되찾아 준 소중한 경험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진실한 감각은, 진실한 사람을 알아보는 가장 오래된 언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We are not thinking machines that feel;
rather, we are feeling machines that think.
—안토니오 다마지오, 신경 과학자 Descartes’ Error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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