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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03. 2023

이스탄불을 떠나며 .

이스탄불을 떠나는 길. 곧바로 선착장으로 가는 것 보다, 배낭을 매고 다시 한 번 도보 여행으로 빙 돌아 보기로 했다. 일단 트램을 타고 테오도시우스 성벽 근처에서 무작정 하차. 지도 보고 방향 감각 잡고 성벽을 따라 돌아가면 된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나타났다. 얼마나 오랜 세월 저기 서 있었는지 , 역사책에만 등장하던 고대 로마 성벽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벽돌이 튼튼해 보였다. 이 성벽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전쟁이 치뤄졌는지. 터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전쟁이 많이 일어난 전장터였다. 그런데도 저 성벽이 저렇게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 


내부 구조물이 아직 남아있다. 게다가 오픈으로. 



그럼.. 호기심 많은 나보고 들어가보란 소리겠지? 음흐흐 

계단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밟히고 닳았는지 가운데가 움푹 패였다. 




알고 보니 이 성벽에는 집시들이 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자꾸만 나보고 내려오라는 손짓을 해서 "싫어" 라며 버티고 있었는데, 나중에 집시들 때문에 위험할까봐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리조리 성벽을 만지고 돌아다녔다. 쓰레기가 있는 걸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예상대로 집시들이 살고 있었다. 내게 돈을 달라고 아이들을 가르키며 구걸하길래 돈을 줬다. 


더 달래길래 돈 없다며 내려왔다. 그게 다였다. 어린 집시 아이가 성벽에 매달려 내게 잘가라고 인사하고,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준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터키 사람들은 내가 관광객이라 돈 뜯길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계속 내려오라고 손짓 발짓 다 했지.. 친절한 사람들. 



돌아가는 길에 예디쿨레도 봐야지. 중세 시대 무시무시한 감옥 및 처형장으로 쓰였던 음침한 건물이다. 

들어가보니 관광객이 나밖에 없다. 그 많은 관광객들은 다 어딜 구경하고 다니는거지? 


예디쿨레 성벽에 있는 가파른 계단. 


엄청 가파러서 꼭 하늘을 향해 난 계단같다는 느낌이 든다. 배낭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빙빙 감옥으로 통하는 음침한 동굴 속을 지나게 된다. 벽에 당시 사람들의 낙서도 있다. 섬뜩 



계단을 올라가보면 .. 이렇게 답답한 구조로 도망칠 수 없게 되어 있다. 여기 갇혀 있던 사람들은 주로 타국에서 잡혀 온 사람들이라는데, 헝가리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안내문에서 읽은 기억이.. 



기어오를래도 .. 오를 수가 없다. 갇힌 자의 무기력함을 함께 느꼈다. 정말 죄인들만 있었을까? 



새들만 간간히 보이는 쓸쓸한 유적지... 마음 한켠이 휑해지면서.. 

사람이 사람을 구속하고 자유를 속박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고대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껴본다. 모두가 치열하게 서로를 가두고 도망못가게 지키고 살았을 터이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건축물만 남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서로를 속박하는 데 사용해야 했을까. 



가끔은 새들이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와 같은 눈높이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보면, 저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딜 저리 바쁘게 가는 걸까? 라는 생각에 갸우뚱 하곤 한다. 새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 



나오는 길, 너무 청명한 하늘과 공원, 그리고 잔디밭. 나도 모르게 무거운 배낭 던져버리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관리인이 누워 있어도 괜찮다는 사인을 눈으로 보내고 웃으며 지나간다. 이 배낭을 매고 과연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을까



저건 양파지? 두 개네.. 사이좋게... 보기좋네.. 나도.. 사이 좋은 짝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있어 더 외로운 허무하고 뭔가 빠진 공허한 관계 말고, 저렇게 꼭 붙어 있고 싶은 영혼의 짝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진으로 한 방 남겼다.. 


배낭을 매고 낑낑 땀 뻘뻘 흘리며 겨우 선착장 도착. 반나절을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었지만,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이즈닉으로 가려 했으나, 배 편을 보고 그냥 부르사 행을 끊었다. 부르사엔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 심지어 도심 지도도 없다.. 그냥 가는 거야. 거기에도 사람 살 거 아냐.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일단 .. 간다. 부르사에 뭐가 있으려나? 어떤 일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꽉 짜여진 일정을 따라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숙제마치기와 같다. 

예정하지 않은 일, 황당한 경험, 곤란한 일. 이런 것들을 맞딱뜨리고 그에 대한 내 대처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것이 나의 여행 방식이다. 


#세계여행기

#유럽여행기

#자유여행기

#퇴사여행기

#터키여행기


이전 04화 난생 처음 혼자 해외여행, 터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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