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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을 떠나며 .

by 파랑새의숲

이스탄불을 떠나는 길. 곧바로 선착장으로 가는 것 보다, 배낭을 매고 다시 한 번 도보 여행으로 빙 돌아 보기로 했다. 일단 트램을 타고 테오도시우스 성벽 근처에서 무작정 하차. 지도 보고 방향 감각 잡고 성벽을 따라 돌아가면 된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나타났다. 얼마나 오랜 세월 저기 서 있었는지 , 역사책에만 등장하던 고대 로마 성벽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벽돌이 튼튼해 보였다. 이 성벽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전쟁이 치뤄졌는지. 터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전쟁이 많이 일어난 전장터였다. 그런데도 저 성벽이 저렇게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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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구조물이 아직 남아있다. 게다가 오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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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호기심 많은 나보고 들어가보란 소리겠지? 음흐흐

계단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밟히고 닳았는지 가운데가 움푹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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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성벽에는 집시들이 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자꾸만 나보고 내려오라는 손짓을 해서 "싫어" 라며 버티고 있었는데, 나중에 집시들 때문에 위험할까봐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리조리 성벽을 만지고 돌아다녔다. 쓰레기가 있는 걸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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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집시들이 살고 있었다. 내게 돈을 달라고 아이들을 가르키며 구걸하길래 돈을 줬다.


더 달래길래 돈 없다며 내려왔다. 그게 다였다. 어린 집시 아이가 성벽에 매달려 내게 잘가라고 인사하고,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준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터키 사람들은 내가 관광객이라 돈 뜯길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계속 내려오라고 손짓 발짓 다 했지.. 친절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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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 예디쿨레도 봐야지. 중세 시대 무시무시한 감옥 및 처형장으로 쓰였던 음침한 건물이다.

들어가보니 관광객이 나밖에 없다. 그 많은 관광객들은 다 어딜 구경하고 다니는거지?


예디쿨레 성벽에 있는 가파른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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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가파러서 꼭 하늘을 향해 난 계단같다는 느낌이 든다. 배낭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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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빙빙 감옥으로 통하는 음침한 동굴 속을 지나게 된다. 벽에 당시 사람들의 낙서도 있다. 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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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보면 .. 이렇게 답답한 구조로 도망칠 수 없게 되어 있다. 여기 갇혀 있던 사람들은 주로 타국에서 잡혀 온 사람들이라는데, 헝가리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안내문에서 읽은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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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를래도 .. 오를 수가 없다. 갇힌 자의 무기력함을 함께 느꼈다. 정말 죄인들만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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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만 간간히 보이는 쓸쓸한 유적지... 마음 한켠이 휑해지면서..

사람이 사람을 구속하고 자유를 속박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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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고대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껴본다. 모두가 치열하게 서로를 가두고 도망못가게 지키고 살았을 터이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건축물만 남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서로를 속박하는 데 사용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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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새들이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와 같은 눈높이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보면, 저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딜 저리 바쁘게 가는 걸까? 라는 생각에 갸우뚱 하곤 한다. 새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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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 너무 청명한 하늘과 공원, 그리고 잔디밭. 나도 모르게 무거운 배낭 던져버리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관리인이 누워 있어도 괜찮다는 사인을 눈으로 보내고 웃으며 지나간다. 이 배낭을 매고 과연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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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양파지? 두 개네.. 사이좋게... 보기좋네.. 나도.. 사이 좋은 짝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있어 더 외로운 허무하고 뭔가 빠진 공허한 관계 말고, 저렇게 꼭 붙어 있고 싶은 영혼의 짝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진으로 한 방 남겼다..


배낭을 매고 낑낑 땀 뻘뻘 흘리며 겨우 선착장 도착. 반나절을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었지만,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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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닉으로 가려 했으나, 배 편을 보고 그냥 부르사 행을 끊었다. 부르사엔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 심지어 도심 지도도 없다.. 그냥 가는 거야. 거기에도 사람 살 거 아냐.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일단 .. 간다. 부르사에 뭐가 있으려나? 어떤 일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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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꽉 짜여진 일정을 따라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숙제마치기와 같다.

예정하지 않은 일, 황당한 경험, 곤란한 일. 이런 것들을 맞딱뜨리고 그에 대한 내 대처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것이 나의 여행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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