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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04. 2023

나를 치유하는 도시 - 터키 브루사

 - 나의 모자이크 문화는 무엇일까? 



그저 배 시간에 맞춰 도착한 도시, 부르사에서 난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았다. 잊을 수 없는 도시. 그 선물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들과 배려들, 그리고 향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인상깊은 말들이었다. 신이 나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것 같은 , 태양이 내가 추울까봐 쫓아다니면서 내리쬐는 듯한 따뜻한 느낌의 경험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던 곳, 브루사. 


난생 처음 타본 큰 배가 마르마라 해를 지나 낯선 도시 부르사로 간다. 난 사전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내가 들고 있는 '론리 플래닛' 이라는 책에도 지도도 없고, 호텔 정도만 덜렁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배의 갑판이 내려가는 순간... 가슴이 터질듯이 쿵쾅거리는 내 앞에 너무 예쁜 도시가 펼쳐졌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동네. 터키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나. 자.. 어떻게 도심을 가고 숙소를 찾을 것인가. 

귀네쉬 호텔. 어떻게 갈까.  

일단, 손짓 발짓을 해서 터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도심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탄다. 버스 기사한테 들러붙어있다 내리라는 손짓 싸인을 받고 내린다. 

피씨방에 들어가 무작정 귀네쉬 호텔 아냐고 묻는다. 그것도 터키에서 영어로. (참 예의없는 여행객이다). 주인이 구글 검색을 하는 동안, 저 멀리 끝 뒤에서 듣고 있던 한 이스탄불 청년이 너무 답답했었는지 내게 영어할 줄 아냐며 다가왔다. 일단 근처까지 가서 다른 사람들 도움을 받아 찾으라며 나를 택시를 태워주며 가격흥정까지 끝내준다. 


돈 더 달라 하면 절대 내지마, 내가 다 지불했으니. 


호의에 호의가 이어진다. 일단 그 이스탄불 청년이 택시기사에게 말해놓은 도착지까지 도착해서 내려서 수퍼마켓에 들어간다. 물을 사면서 귀네쉬 호텔이 어디냐고 묻자, 친절한 청년은 말이 안통하는 내게 길을 설명해봐도 소용이 없자, 가게를 잠깐 비우고 직접 나를 데리고 귀네쉬 호텔 앞까지 데려다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오로지 바디 랭귀지와 "귀네쉬 오텔" 한 단어에만 의존했다. 영어가 안 통하므로.  


현지인들의 도움 릴레이


호텔 위치를 보니 혼자서는 도저히 못 왔을 곳을 그들의 계주 릴레이처럼 , 그들의 도움 바톤 터치로 도착했다. 터키어 한마디 못하는 관광객을 대하는 부르사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다. 철저한 인수인계. 

부르사에서는 사람들의 친절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 관광화된 도시가 아니라서 정말 도와주려고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말 한마디 못하는 아기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안내와 도움에 힘입어 힘들이지 않고  귀네쉬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슬렁 슬렁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부르사엔 뭐가 있나? 

관광 책자는 버려버렸다. 오직 론리 플래넷 하나만 달랑 들고 있으나, 부르사에 대해서는 설명이 거의 없다. 그럼 내 발로 직접 찾아보고, 주민들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청명한 산책길. 따라가다 보니 갈색 관광지 간판이 나오길래 뭐가 있는가 싶어 쭉 따라 올라갔다.  

부르사 시내의 아름다운 전경. 정말 아름다워 저 장소에서 넋을 잃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내가 어쩌다 부르사라는 낯선 도시에 오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난 뭘 하려고 오게 된 것일까.  


걷고 걷다보니 박물관이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 혼자다. 아무도 없다. 

난... 관광지가 아닌 곳만 돌아다니는 신비한 능력이 있나봐. 뭐, 나쁘진 않다.  


정말 예쁜 정원과 까페테리아. 아직 문도 열지 않았는지, 그냥 내가 앉아 있어도 아무도 주의 주는 사람도 없다.  부르사 시내가 전부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전경.  예쁜 자갈밭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너무 예쁜데다가 더 좋은 건 ... 방문객이 나 혼자라는 거다. 전시물들을 보니 터키의 전설적인 대통령 아타튀르크 와 관련이 있는 곳인듯.  박물관이라는 예쁜 건물이 하나 있는데, 뭔가 해서 기웃기웃 대다 보니  


관광 안내원이라면서 투어를 받겠느냐고 한다. 나 혼자? 혼자여도 가이드 받을 수 있는거야?? 

그럼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며 영어로도 되냐고 했더니, 미숙하지만 해보겠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내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지만, 아타튀르크의 별장이라고 했다. 이국적인 침실, 서재, 거실.. 모두 인상적인 데다가 단 한명의 고객까지 공짜로 영어 가이드를 해 주는 저 마음씨 좋은 터키 가이드 때문에 너무 행복해졌다. 흐뭇하게 내려오는 길, 지나가던 차가 멈춰선다. 


내게 뭐라 뭐라 터키어로 말하며 친절하게 참깨빵을 주신다. 


아침을 사 가지고 가는 길이라고 말하셨던 것 같다. 터키어로.  고맙다고, 정말 잘 먹겠다고 우적우적 씹어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터키인들. 나눔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방인에게 참깨빵 하나 서슴없이 미소와 함께 건넬 수 있는 다정함을 가지고 있는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동물들이 다가와주면 무조건 땡큐인 사람이다. 같이 철푸덕 앉아 놀고 있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고양이 좋아하는구나....? 라고 물으시는 듯, 눈빛에 반가움이 가득하시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걸 간파하셨는지, 방으로 종종 들어가 태어난지 3일 되었다는 고양이를 꺼내오셨다. 아이구~~~ 쬐끄매. 꼭 쥐새끼 같다. 푸하하하  

낯선 사람에게 새로 태어난 고양이 구경도 시켜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떠나기 싫지만 고양이들과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내려간다.  


내가 부르사에 왜 왔는지 알겠다. 사람을 만나러 왔구나..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다는 걸 느끼러 왔구나.. 
사람은 모두 같은 기본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러 왔구나.  



그리고, 아흐멧 선생님을 만났다. 


아마 터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신가 본데, 나는 아무 정보도 없어서 그저 영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데 대한 기쁨이 가득했다고나 할까.  



지긋이 내 눈을 보면서 , 말씀하셨다. 


너는.. Battery Empty 상태여서 이곳으로 여행을 왔구나. .

 

부르사에서 에너지를 충만할 수 있을거라시면서. 내 눈을 지긋이 보시면서 점쟁이처럼 계속 말씀하신다. "정말 intelligent 한 사람인데, 아무도 너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네 배터리가 다 나가버린거야. 한국 남자들은 별로 여자들한테 kind 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어서 유감이지만, 여자에게는 inside happiness 가 가장 중요해. 넌 텅 빈 가슴을 안고 행복을 찾으러 부르사에 온거야. 걱정마, 채울 수 있어. " 


나는 아흐멧 선생님이 짜 주는 일정대로 다음날부터 돌아다녔다.  

주말르크즉 마을은 전통 오스만 마을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니 꼭 가봐. 그 앞에 싸고 맛있는 음식점도 있으니, 가다가 들러서 아침 먹고 가면 좋을 거야. 그래서 갔다.  



길 따라 흐르는 조그만 개울물에 앉아 물 소리도 듣고. 동물들과 시간도 보내면서.   

그렇게 아흐멧 선생님이 추천해준 대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돌아와보니, 오늘 어땠냐고 물으신다. 

좋았어요. 라며 한층 풀어진 얼굴로 대답하니 흐뭇하게 쳐다보시더니, 여러가지 말씀을 해 주신다.  


"난 모자이크 문화를 좋아해. 터키 문화, 한국 문화, 유럽 문화, 여러가지 문화가 있지만, 단 하나만 고집하는 건 별로 이득이 안돼. 각 문화에서 좋은 점만 쏙쏙 뽑아서 너만의 모자이크 문화를 만드는 거야. ."  


너는 유럽까지 여행한다고 하니 그게 더 수월하겠네. 터키의 좋은 문화를 많이 느껴보고, 좋으면 네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봐. 부르사의 life style 은 내가 봐도 전세계 최고야.


"음악이 사람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어?" 



저녁에 나를 데려가신 차이 바.  모두가 모여 손뼉치고 큰 소리로 노래하는데, 나도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충전이라도 되듯이 점점 눈빛이 밝아지는 내 모습을 나도 느낄 수가 있었던 특이한 경험.  "저는 부정적인 기운 아래 너무 오래 있었거든요. 그래서 배터리가 나갔어요." 라고 말하니, 아흐멧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게 세가지가 있어. 
하나는 Open mind, 둘째는 communication, 셋째는 Chemistry 야." 


chemistry? 화학...? 처음 듣는 말이라 갸우뚱 했더니, 계속 말씀하시기를. "눈에 보이지 않지만, chemistry 는 정말 중요해. 서로 맞는 chemistry 를 가진 사람끼리는 쉽게, 빨리 친해져. 하지만 서로 맞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같이 해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서로 에너지만 뺏게 되지."  



그날 밤, 그 차이 바에는 나와 꼭 맞는 chemistry 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나보다. 원하면 와서 아무 악기나 주워들고 연주 하며 서로 눈빛과 입술을 읽어가며 노래한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알아서 집에 간다. 아무도 붙잡거나 간섭하는 사람 없이 그 누구와도 communication 하며 함께 합창한다.... 눈빛과 입술,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충전된다.  


공짜 세마 공연도 보고 가. 


세마가 뭔지 몰라서 따라갔다. 500년된 홀, 터키 전통 종교 의식 춤인 세마.  


남성은 1층, 여성은 2층으로 자리가 구분되어 있다.  

근 30분간 저렇게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정말 신기할 따름.. 어지럽지 않은가봐...  


그리고 단번에 제자리에 멈춰서서 의식이 마무리된다.  음악이 이상하게... 평온했다. 신비주의 종교의식이라서 그런가.  공연이 끝나고 나와서 아흐멧 선생님께서는 내 문제점을 간파하신 듯 말씀하신다.  


"주위를 둘러봐. 모두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어. 삶은 이걸 위한 거야. 웃으며 대화하기.   네 고갈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법도 이거야.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노래하기.   비록 너의 진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 배터리가 고갈되어 여기까지 왔지만, 부르사에서 새로운 life style 을 배워가서 한국에서 이렇게 살아봐. "  


난 그 교장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하나 하나가 콕콕 가슴에 문신처럼 들어와 박혔다. 


"너는 일단 차분한 안정이 필요해 보여. 앞의 자미로 가봐. 
그리고 분수 옆에서 차분히 물의 소리를 들어봐. 마음이 안정될 거야. "


어, 맞아. 난 차분한 안정감이 필요해. 어찌 아셨지... 미뤄두고 아직 가보지 않았던 자미로 향했다. 



내부에 큰 분수가 있고, 그 분수 옆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앉아서 명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도시의 소음들과 예쁘지 않은 대화들로 지친 영혼을 달래는 데는 자연의 소리가 최고..차분하게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마음이 안정되어서 그렇겠지.  



벽에 씌여있는 아랍판 서예. 참 이국적인데다가 , 이런 게 문자라니 신기할 따름. 

뭐,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한글이나 한문은 한 술 더 뜬다고 하니, 

역시 이국적이라는 것은 익숙한가 낯선가에 따라 결정된다. 

꾸란의 구절을 여러가지 문자체로 써 넣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자미들과는 달리 굉장히 독특한 실내 장식.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나와서 공원에 드러누웠다. 분수가 춤추며 노래를 하길래. 



물의 강약, 박자등이 완벽하게 결합된 하나의 오케스트라. 차분히 물방울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저기 지붕위의 두 남자도 그걸 감상하러 올라간 걸까.



5월의 지중해성 따뜻한 햇살을 정면으로 맞고 공원에 누워있다 보니, 내가 햇살을 이렇게 맘껏 쬐본 것이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높은 초고층 빌딩안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주말에는 주중에 너무 일해 피곤하다는 핑계로, 인간의 정신건강에 필수가결한 조건인 '좋은 햇빛'을 그동안 너무 무시해왔다. 그러고선 기운없고 우울하다고 찡얼댄 건 아니었는지.



옛날 낙타들의 쉼터였던 코자한. 밑에서는 낙타나 말들이 물을 먹으며 쉬고, 2층에서는 주인들이 잠을 자며 긴 여정을 쉬어가는 일종의 숙박 시설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유적으로 남아 그 주변이 모두 식당가.. 나와서 설레설레 구경하다보니, 여러 미술작품 전시회들이 열리고 있다. 




그 중 내 마음을 사로잡는 건, 푸른 빛깔이 청명하고 물고기들이 요동치고 있는 한 그림이었다. 

내 마음 속 같아... 라는 느낌. 


부르사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름다운 색채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세상에 이런 많은 색깔들과 아름다운 조합이 있구나. 화려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아름답다... 라는 나만의 느낌이 생겨났다. 

이제까지는 누군가에 의해서, 대중 매체에 의해서  '이건 아름다운 거야, 이건 멋있는 거고, 이건 예쁜거야' 라는 식으로  느끼는 법을 강요당해왔다면, 이제 비로소 나만의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부르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 예실 자미 . 원래는 그린 타일로 된 건물이었는데, 이전 터키 대지진 때 모두 불에 탔다고 한다. 그런데 그린 타일을 복구할 수 있는 기술이 사라져서 파란색 타일로 장식하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난 파란 색감이 너무 좋아서 이 건물에 반해버렸다. 

너무 예쁘잖아. 색깔도 너무 청명하고, 생김새도 너무 귀엽잖아. 라면서 건물 주변 몇 바퀴를 뱅뱅 돌았는지 모른다.  내부도 이스탄불의 다른 자미들과는 다른, 독특한 파란색 석관으로 되어 있다. 정말 화려하고 예쁘다.   벽의 타일 색깔이 너무 예뻐서 내부에 한참 앉아 있었다. 나는 이런 아늑한 공간이 좋은데다가, 파란색 파장이 나와 잘 맞는 듯이 이런 좋아하는 색깔로 장식된 내부에 있으면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뱅글 뱅글 돌면서도 건물을 떠날 수가 없어서 한참 앞에 죽치고 감상.. 

우리 집 파란색으로 칠해버릴까.. 생각하면서.  

  


돌아 나오는 길, 자미 밑에 자리한 공동 묘지. 

터키 뿐 아니라 유럽도 그렇지만,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나 공동묘지가 있다. 음침한 곳이 아니라 양지바른 곳에 알록달록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묘지가 어디 있더라?? 사람은 그렇게도 많은데..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만, 피하고 감춰야 할 그 무언가가 아니다. 피하고 감추면 썩어서 곪는다. 오빠의 죽음으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어 내면서 우리 가족이 얻은 교훈 중에 하나다. 

죽도록 아프면.. 입이 아플 때까지 속을 얘기해서 터뜨려라. 고름이 모두 밖으로 쏟아질 때까지. 

그게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가장 빠른 치유법이다.  


여행을 할 때 하루는 꼭 정처없이 떠도는 도보여행을 한다. 지도는 버리고, 관광책자도 버리고,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 그렇지 않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에 그 도시를 떠날 수가 없다.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 현대 건축물 사이로 보이는 옛날 성벽 터. 이렇게 버려져 있다. 우리 나라라면 국보 몇 호, 보물 몇 호로 벌써 지정되고 유리벽에 콘크리트로 입구 만들어 철통 감시할 텐데.. 널리고 깔린 게 유적이다보니, 그냥 사람들이 무덤덤한 듯.. 생활에 그냥 묻혀져 있다.  


길가다 밟히는 게 자미다. 이슬람 국가임을 실감하게 한다. 시간이 되면 모든 자미에서 일제히 기도를 시작하는데, 기분이 묘해진다.. 아아아~~~~으아아아~~ 하는 창법과도 같은 꾸란 기도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마을 전체로 퍼지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며 마음이 안정된다.  



시장의 과일들. 고추와 장미꽃, 감자로 사랑스럽게 장난을 쳐 놨다 ^^  분주한 시장 거리는 어디나 다 똑같은 듯.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활기찬 풍경은 항상 생기를 불어넣는다. 삶이 지겹고 무의미해진다 생각될 때면 새벽시장을 가 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모든 에너지가 총 집합되어 있는 곳이 재래시장이 아닐까.  


오스만 가지 자미를 방문했다. 다른 곳과는 달리 무덤이 고풍스런 갈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 무덤 앞에서는 경건해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조차 지금은 돌바닥 위에 흔적없이 누워있다.  오스만 가지 자미에서 내려다본 풍경.  


인상적인 부부를 만났다. 



나를 보며 계속 예쁘다고 생글생글 웃던 부부. 내가 너무 예쁘다며 예쁜 분홍 옷핀을 내 가방에 달아주더니, 급기야는 앉으라고 권하더니만 '차이'를 사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차이'.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라서 그냥 받아먹는다.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터키 부부, 터키어를 못하는 나. 그렇게 서로 대화는 하고 싶은데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며 '좋아~' 라는 느낌만 주고받았다. 특이한 경험.  


파란색 오스만 풍의 가옥.. 너무 예뻐서 한참 들여다봤다. 왠지 가분수처럼 위가 무거워 보이는데, 묘하게 균형감각은 느껴진단 말이지.  오르막을 천천히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 또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 꼭 내 삶을 뒤돌아 보는 것처럼 . 산과 집들이 나를 굽어 보는 느낌.   




동네 학교와 동네 목욕탕을 들렀다가 돌아오니 아흐멧 선생님은 나를 끌고 터키 전통 악기 '네이'를 연주하는 친구 집에 데려가신다. 너의 정신건강과 마음 안정에 정말 도움이 될 거라면서.  


정말 그랬다... 난 음악을 들으면서 졸았다.. 마음이 착 땅속으로 가라앉는양, 몸이 노곤노곤하게 나사 풀린 뱀처럼 고불고불하게 늘어지고, 두 눈이 스르륵 감기면서. 아.. 이런 게 평온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를 만났다. 아들의 숙제를 하면서 낑낑대는 아버지. 내게 다정하게 네이 부는 법을 알려주고, 밥을 멕이고, 좋은 사고방식을 불어넣어준 엄청난 긍정 에너지를 가진 사람.  



사실.. 남자들은 무조건 경계해야돼... 위험해 위험해.. 라는 극도의 경계어린 내 태도가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누그러졌다. 세상에는.. 짐승들만 있는 게 아니다. 분별있는 사람들이 더 많구나. 자기 가정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이방인에게 사심이나 대가없이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구나.  

아흐멧 선생님은 곧잘 말씀하시곤 하셨다. 


"행복해? 너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야. 그러니 네가 행복을 느낀다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져."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아들의 숙제, 랜턴 만들기를 정말 진지하게 골몰하는 다정한 아빠, 무랏. "선생님들은 다 바보들같아. 이런 아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다니 말이야. " 라며 담배를 물고 쯧쯧 대면서 완벽을 요구한다는 바보같은 선생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숙제를 대신 해 주는 모습이 한국의 가장과 비슷했다는.  


그리고, 또 하나의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  

아흐멧 교장선생님의 학교, 터키의 고등학교에 방문했다. 


아흐멧 교장선생님의 초대로, 학교에 방문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학생들이 교장실로 속속 모여들었다. 참.. 편안한 분위기. 교장 선생님이 앞에 계신데도 뒹굴고 떠들고 드러눕고 장난 치는 모습이 정말 이색적이었다. 내게 교장선생님은 항상 저 머나먼 존재였는데, 이들에게는 교장실이 가다가 한 번 들르는 편안한 곳.  


전부 모여들어서는 "터키에는 왜 왔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시시콜콜하게 질문을 하고 난리 났다. 동양에서 온 까만 눈의 여자가 정말 신기한 듯이 생글생글 거리면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밝은 웃음으로 환대한다.  



"터키식 커피 먹어봤어요?" 


으응? 아니.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학생이 커피를 타러 나간다. 동양인 멕이러. 

참.. 밝구나. 아이들이 찌들지 않고 완전 발랄하다.  


돌아오는 길. 무랏이 말한다. "끝내주는 풍경 한 번 보고갈래? 우리 엄마네 집에 가면 전망이 끝내줘." 

곧바로 무랏의 어머니네 집으로 향한다. 와우.. 정말 정갈하고 깔끔한 아파트.  


웬만한 상류층 깔끔한 아파트 저리가라 식의 단정하고 공간 배치가 아름다운 무랏 어머니의 집.  

무랏은 전망 좋은 베란다에 나를 앉혀놓고 잠깐만 풍경 구경을 하고 있으라고 한 뒤, 부엌으로 총총 사라진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전망. 와우~ 정말 끝내주는데??? 이런 풍경 매일 보고 살면 기분이 어때??? 신선한 공기, 여유롭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곳. 게다가 이런 깨끗한 아파트, 정말 좋겠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 동안 무랏이 음식을 내온다. 



"우리 엄마의 특별 요리야. 냉장고 뒤졌지 크하하하"  


정말 맛있었다.. 프로의 손맛이 느껴지는 ... 음식을 그냥 마시다시피 후딱 해치우고선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워..""우리는 손님을 이렇게 대접해. 너희도 손님이 오면 이렇게 대접할 거 아냐. 나중에 한국에 가면 이렇게 대접하면 되지." 라고 순박하게 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귀엽다,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 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내 다음 행선지인 무라디예까지 차로 데려다주고는 "구경 잘 하고, 호텔까지 조심히 들어가~" 라고 예의바른 인사까지. 




흡족한 마음과 배를 움켜쥐고 무라디예를 들어갔다. 족히 몇백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가 쓰러져 있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에 뭐지? 라며 눈길을 돌리니, 거북이가 정원을 성큼성큼 돌아다니고 있더라는. 

딱 봐도 20년은 넘은 올드 거북이..  


내가 거북이를 쫓아다니며 놀고 있으니, 경비원이 와서 흡족하게 쳐다본다. 

"이거 원래 여기 사는 거예요?" 

"응. 여기 그런 거북이 많아." 라며 거북이 좋아하나봐? 생글생글 웃더니, 뭔가 생각난 듯, 이리와봐. 라고 손짓한다.  


따라가보니, 어느 방의 문을 열어준다.  


여긴 관광 금지된 구역인데, 너한테만 특별히 보여줄께. 


열쇠를 열고 들어간다. 



와아아아아~~~!!!! 이런 색채의 향연은 처음본다.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색상과 느낌이었다. 무덤을 많이 보긴 했는데, 이런 고운 옥색의 타일과 내부 장식은 처음본다. 내가 입을 벌리고 너무 아름다워, 원더풀, 판타스틱, 와우와우!!! 를 외치고 있으니, 경비원 표정도 환하게 밝아지면서 계속 설명해준다. "600년이 넘은 거야. 그 옥색 타일들은 지금은 제조 비법이 사라져서 이젠 똑같이 만들 수가 없어. 진짜 굉장하지?" 라며 싱글벙글.  


사진 찍어줄까? 라며 사진기를 달라 한다.  

흔들렸지만, 아주 성심 성의껏 사진을 찍어줬다. 으흣. 

그리고.. 인상적인 건, 내가 탄성을 지를 때마다 감탄할 때마다 , 행복해할 때마다 그의 표정도 같이 살아나면서 기뻐하더라는 것. 같이 눈을 맞추고 "좋지? 정말 예쁘지? 좋아할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뿌듯해한다.  


참.. 경비원들 조차 너무 따뜻하다.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길래, 어떻게 살고 있길래 이렇게 따뜻한 거니.  

부르사의 life style 이 최고라고 말씀하셨던 아흐멧 선생님. 그게 뭔지 알 것 같다. 


돌아오는 길, 한 명의 장님이 길을 더듬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서 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는 제 갈길을 간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어디가니? 라고 묻고, 귀네쉬 호텔 알아? 라고 하면 영어를 잘 모른다면서 따라오라고 그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는 사람들. 이런 방식이 부르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에게서 '온화함'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도 당당하고 만족하는 삶. 

서로 웃고 대화하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생활. 서로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않되, 관심은 충분한.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웃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는 사람들. 

이런 게 진짜 바람직한 도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커플이 내 손에 소중하게 초콜릿 상자를 놓아주는 꿈. 내가 눈부신 햇살 아래 그 초콜릿을 먹는 따뜻한 꿈을. 


난 그제서야 부르사를 떠날 준비가 되었다. 


내가 만들 '나만의 모자이크 문화'에 부르사를 넣을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무랏의 도움을 받아, 카파도키아로 간다. 

터키안에서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는 비상 연락망까지 얻어서.


#세계여행기

#퇴사여행기

#유럽여행기

#홀로여행기

#터키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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