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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06. 2023

나 홀로 이방인, 카파도키아.

이스탄불에서 여행의 첫 발을 떼고, 부르사에서 사람들을 만나 마음이 따뜻해진 채로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가. 


카파도키아. 그 이상한 행성으로 가자. 


일단 나는 신기한 걸 눈에 가득 담고, 마음껏 놀고 싶어. 가서 풍선도 타보고, 개미굴 같은 사람 동굴도 보고싶어.  야간 버스 10시간. 힘들게 꾸부리고 내 가방을 베고 자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수건을 내 머리 밑에 받쳐준다. 


완전 포근해... 라며 수건을 베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이런 게 배려구나.. 라고 잠결에 혼자 중얼거리면서. 

별로 힘 들이지 않고도, 남을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비법. 그게 '배려'다. 그 친절한 남자 덕분에 나는 쌔근쌔근 10시간 중 대부분을 포근한 수건을 베고 쌕쌕 거리며 잤다.  


터키 남자들은 의외로 다정하다.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래고 있는 아빠.  



"울지마" 라며 귀찮아 하는 모습이 아니라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아이의 감정을 달래준다.  휴게소에서 만난 우는 아기를 달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이슬람 문화보다도 한국 문화가 여자가 살기엔 더 악조건이 아닐까? .. 라는 생각이 문득.  



카파도키아. 그 이상한 행성같은 곳에 도착.  



카파도키아라는 지명 자체가 '좋은 말이 자라는 곳' 을 뜻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거리에 말들이 많이 보인다.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과 신기한 돌산. 참 진귀한 풍경.  



터키는 관광자원이 정말 풍부한 나라다. 국가 GDP 의 40% 정도가 관광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버려져 있는 고대 유적들도 많고, 복원하면 큰 가치가 될 수 있는 고대 도시도 많은데, 돈과 인력 부족으로 빨리 진행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데린구유 지하도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도시. 땅속을 파고들어가서 살아남는 능력은 개미나 바퀴벌레 못지 않다. 카파도키아의 도시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인류의 처절한 생존 본능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종교 문제로 숨어들었던 사람들. 이슬람을 피해 숨어들었던 기독교 인들이 대부분이다. 후에 이슬람과 계속해서 전쟁을 하고, 주거자는 무슬림, 기독교인 중 승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해졌다. 전쟁에서 이긴 종교는 그 이전 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그렇게 무슬림과 기독교인간의 전쟁 역사를 통해 이뤄진 지역. 우리는 신기하다 구경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피말리는 전쟁에서 숨기 위해 굴을 팠던 뼈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어딜가나 한국 사람들을 보면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시선도 완전 꽃힌다. 

생긴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한국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너무너무 예쁘다. !!! 사진 같이 찍어요~~~ 


어딜 가나 터키인들의 구애를 받았다. 내가 어딜 가서 이렇게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받을까 싶을 정도로 배가 터지게 칭찬하고 환하게 웃고 반겨준다. 



유명한 우흘랄라 계곡 트랙킹에서 만난 당나귀. 투어를 받은 턱에 함께 몰려가야 하지만, 난 내 걸음 속도로 천천히 낙오자가 되어 걸었다. 마지막에 전부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 이런 아름다운 계곡을 경주하듯이 빨리 지나가서야 쓰나? 

역시 투어는 내 타입이 아니다. 그냥 혼자 올 걸 그랬어..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 터키에서는 신나게 놀아보자고 다짐했다. 인생에 한 번, 아깝다고 움츠리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해보는 거야. 시시하면 다음번에 안하면 되는 거고, 좋으면 만족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으니 .. 일단 해보는 것이 안해보고 두고두고 '해볼걸' 이라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어떤 면으로 봐도 낫다. 일단 하자. 비싼 벌룬 투어도.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나갔다. 벌룬 투어 하러.  



후회는 없다. 1시간 동안 타니 조금 지루하다, 돈이 조금 아깝다.. 라는 혹평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모두 해본 자들만이 평할 수 있는 혹평이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지루한지, 돈이 어떻게 아깝다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  



언제 풍선 타고 이런 기이한 곳을 날아볼테냐. 터키 조종사와 언제 이렇게 사진을 찍어볼 거야.  



카파도키아 남자들은 다른 지역 터키 남자들과는 달리 조금 터프하고 각지게 생겨서 멋있다. 조종사 아저씨 진짜 멋지더라. 껌 짝짝 씹어대며 풍선 조종하는 모습이 참 당당해 보였다.  



끝나면 샴페인을 준다. 자축의 의미. 같이 탄 한국 친구들과 함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면서. 

 


'일단 해보는 거야' 라는 내 여행 신조가 막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듯. 처음에는 너무 비싸지 않나, 해야 하나.. 에서 그 이후로는 신조가 생겼다. 


 '하고 싶으면 일단 해. 한국에서는 돈 주고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야' 


그래서 모두가 몰려나가  스쿠터를 탈 때, 나는 혼자 좋아하는 말을 탔다.  



내가 특이한 것일까. 나는 스쿠터같은 기계보다, 체온이 있고 꿈틀꿈틀 감정과 반응이 있는 동물이 좋다. 그래서 말 타자! 말 안탈래? 라고 한시간을 한국 사람들을 꼬셨으나, 전부 시큰둥.. 전부 스쿠터를 타러 나가더라..

  


하지만 나는 그 돈으로 1시간 말을 탔다.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서, 아무 말 없이 말 등위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따박따박 걷는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하다. 

너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있구나..
지금 너는 나를 태우기 싫고, 나뭇잎이나 따먹고 싶은데
일하게 되어서 내게 불만이구나. 

칭얼대며 자꾸 나뭇잎을 뜯어먹는 말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속으로나마 대화할 수 있는 게 좋다.  



체력이 되는 만큼 마음껏 놀고, 눈앞에 있는 것에 감탄하고, 순간을 붙잡아 보자. 

후회는 일단 해 보고 하자. 해 본 자만이 후회도 할 수 있다. 

뭐든 안해보고 하는 '해볼걸' 후회보다, 해보고 하는 '하지말걸' 하는 후회가 여운이 덜 남는다.  

카파도키아에서는 이렇게 돈 쓰고, 놀면서 이제 좀 즐겼구나.. 싶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이다 보니,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세계여행기

#유럽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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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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