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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08. 2023

낯선 곳으로 가고 싶어, 터키 시데

 -나의 부서진 원형극장,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호의

카파도키아에서 대부분 한국인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은 폐티예나 안탈리아로 떠났다. 그래서 이상하게 그들과 행선지를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가 철저히 이방인일 수 있는 이상한 낯선 도시를 계속해서 원했다. 안내인이 내 짐가방을 실어주는 동안 다른 관광객들이 내게 물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어디로 갈꺼야? 행선지가 어디야? 


난.. 시데. 


-시데가 어딘데? 

몰라, 남쪽이야. 

-왜 가는데? 그냥 이름이 끌려.  


카파도키아의 수많은 한국인들이 모두 패러글라이딩의 도시 페티예로 갈 때, 나 혼자 시데 행 티켓을 끊었다. 모두의 갸우뚱거리는 시선을 받으면서. 심지어 터키 사람들조차 시데라는 도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도대체 이 한국 여자애는 시데에 왜 간다는 것인지 이상하게 보는 눈길이 많았다. 그래도 .. 난 간다. 난 원래 비주류야. 대세를 따르지 않는다고. 


시데 SIDE 는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함께 목욕을 하며 일몰을 즐겼던 낭만적인 도시다. 


분명 색다르고 멋진 게 있을 거야.  


그런데 그 관광 버스는 밤새 달려 새벽 6시에 '시데' 라는 곳 한가운데  나를 혼자 툭 뱉어놓듯 내려놓고 제 갈길  떠났다. 새벽 6시에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표지판조차 SIDE 라고 씌여있지 않고, 물어볼 주변 사람도 없고,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하나? 배낭 메고 한참을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일단 걷자. 걷다보니 곳곳에 자미가 나온다. 일단 가방 내려놓고 멍~ 하게 SIDE 에는 유적이 많다던데..라고 중얼거리며 앉아 있었다. 지도도 없고, 안내 책자도 없고, 터키어도 모르지만.. 일단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것도 영어 하는 사람으로.

  


한 아저씨가 지나가길래 붙들고 "시데?" 라고 외쳤다. 영어를 못하셨다.. 몸짓 발짓으로 말씀하시길. 

여긴 시데가 아니야. 시데는 여기서 멀어~ 시데를 가려면 저쪽으로 2km 정도 걸어가야 해. 

정말 땅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꾸벅 인사하고 2km 따위야, 걸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아저씨가 가르킨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곳곳에 버려진 유적들.  



공원 한가운데도 버려진 성벽 조각들.  



복원 중인 건축물.  



길가에 버려져 있는 옛 신전 터로 보이는 대리석 기둥들. 새벽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나밖에 없다. 


꼭.. 유령 도시를 걷는 듯한 느낌이랄까? 


스산하게 허물어진 ruins .. 그리고 배낭과 함께 혼자 걷는 여행자. 

시데의 첫 느낌은 그랬다. 나 혼자 버려진 유령도시.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여기 오긴 왔는데 그게 뭘까. 

 


아니 , 근데 저....건.....? 원형 극장 아냐??? 


와우와우!!!! 눈이 땡그래지며 뭔가에 홀린 듯이 원형 극장을 향해 걸어갔다. 

내 생전 처음 보는 유적인데다가, 이런 새벽 시간에 나 혼자 길을 헤매다 발견한 이 어마어마하게 널려 있는 유적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라서 혼자 미친 애처럼 중얼 중얼 거리며 바삐 다가갔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이스탄불은 모두 정비가 끝난 완성품으로서의 유적들을 보여준다면, 

시데에는 그냥 유적들이 이렇게 널려 있다.  



성벽도 예전 그대로. 저 길을 통과하며 별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냥 뭐... 아후~ 내가 원하던 게 딱 이런 거였는데. 역시 시데에 오고 싶은 이유가 있었어. 라면서 잘했군 잘했어를 계속 되뇌이며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배낭 메고 두리번 두리번.  



저 멀리... 바닷가에 너무도 흰 대리석 신전 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신전터다. 그 고대에 .. 얼마나 화려했을까. 그 잔해들이 널려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정말 야릇 요상해져서 한참을 멍하니 바다를 보다, 신전 보다가, 또 바다보다가... 그렇게 앉아있었다.  



희고 흰 대리석. 내가 좋아하는 신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는 아폴론의 누이로 사냥과 처녀의 신이다. 활을 등 뒤에 꽃고 산 속을 뛰어다니는 활동적인 여신이랄까.  


그리스에나 있을 법한 흰 대리석 신전과 푸른 바다의 대비를 보고 있노라니, 남들 따라 페티예로 가지 않고 엉뚱한 시데로 온 것이 너무 만족 스러웠다. 이런 곳이 어쩜 한국인들에겐 유명하지 않은 걸까??  



바다도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한데..  

그 다음부터 행선지를 정하는 데 나만의 법칙이 생겼다. 일단 끌리는 곳에 간다. 

왠지 가고 싶다면,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무의식은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직감을 따라 가자. 



그랬다. 한참 이 부서지고 낡은 유적들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반나절을 걷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시데에 온 이유는 

황폐해진 내 마음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내 마음 속이 지금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장소로 시각화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내 무의식의 의도가 있었던 듯, 나는 이상하게 친숙하다 싶어 갸우뚱대면서 떠날 수가 없어서 한참 앉아 있다가 문득 지치고 허물어진 내 마음속을 닮은 도시라는 걸 깨닫고 한참 눈물을 흘린 이상한 도시다.  성벽을 따라 아까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원형 극장 근처로 되돌아갔다.  

무거운 배낭을 낑낑 짊어지고 고대 원형 극장을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어루만져 본다.  


안에 앉아있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 졌다. 그러면서도 떠날 수 없게, 그냥 멍~ 때리며 이런 편안한 느낌이 왜 드는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며 앉아 있었다. 이런 풍경.. 익숙해. 어디선가 보고 느낀 적이 있어.. 라고 중얼거리면서.  


수많은 세월동안 닳고 닳은 계단에 앉아서, 여기 앉아 연극을 구경했을 수많은 고대인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햇볕이 따가워져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런... 시데는 내 마음속을 닮았구나. 


오랜 세월동안 닳고 닳아 황폐해져 버려져 있던 내 마음상태를 닮아서 그렇게 익숙했구나...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었고, 꿋꿋하게 잘 버티며 살아오려 애쓰는 과정에서 나를 방치해 두었었는지 원형극장 안에서 깨닫고 나자, 온 도시가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다시 지으면 돼. 뼈대만 남아있다면, 복원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한참을 흐르는 눈물을 혼자서 원형극장 한가운데 앉아 자유롭게 방출한 뒤, 황폐해진 내 마음을 이제 잘 보살펴서 복원시켜주마. 라고 나와의 굳은 다짐도 하면서 폐허가 된 온 도시의 유적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나니, 기운이 생겼다. 내가 이 여행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고해졌기 때문일까. 기운을 되찾아 밖으로 나왔다.  


그 새 오전이 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아져 거리가 활기차다.  



독일인들이 여름휴가로 많이 오는 휴양지라고 한다. 동양인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특히나 나같이 거북이 등껍질같은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자는 어디에도 없다.  



돌아오는 길은 곳곳이 이제 친숙하게 느껴진다. 버려진 성벽. 내 마음속에도 버려진 성벽이 있다.  



예쁜 공원. 내 마음속에도 저렇게 단장한 예쁜 공원 같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다.  



오오~ 어딜가나 자미인데, 이건 은빛 자미네? 라며 어리둥절 길을 헤매이며 걷고 있는데. 

옆에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코 앞에 소 한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런 곳에 소를 방목하고 있다니?? 와우, 멋진 동네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안탈리아로 가야겠다.. 그러려면 버스 정류장을 찾아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마나브갓은 걸어도 걸어도 당췌 보이지를 않는다. 걷다 지쳐 소들이 풀 뜯고 있는 앞에서 멍~ 하니 또 바라보기만 한다. 길가는 사람들은 한 번씩 나를 전부 쳐다보고 지나간다. 쟤 여기서 뭐하냐? 라는 갸우뚱한 시선을 던지고는.  



외로운 유령도시지만,  나에대한 큰 발견이 이뤄진 곳이다. 

도시 전체가 내 마음속을 보여주던 곳. 그래서 나를 울게 만든 곳. 

나는 상처받았었다. 여행하며 해야 할 일은 내 마음속을 튼튼하게 재건하는 일이다.  

폴 오스터의 <고독의 발명> 중 이런 말이 나온다. 


그랬다. 하지만 기억하자.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이 끝나자마자, 세상은 내게 친구를 보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호의를 베풀어 준 친구들을.



배낭매고 낑낑 걸어가는 내 모습이 기이한지  동네 사람들이 계속 흘끔 흘끔 쳐다본다. 

맘껏 쳐다보라지. 그래 나 관광객이다. 동양인이다. 배낭 맸다. 모자도 썼다. 왜? 난 지금 걷느라 바쁘다고. 헥헥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나와 같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던 두 남자가 말을 건다. 

"영어 할 줄 아니?" 

"어. " 

"어디 가는 거야? " 

"마나브 갓."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화들짝 놀라더니, 자기들이 거기를 가는 중이니, 따라오면 된다고 한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시키는 말에 대답만 하며 힘들게 걸어간다. 태양빛 완전 따갑다.  

"근데... 마나브갓이 어디인지는 알고 가는거니? " 

"몰라. 거기 가면 안탈리아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해서 가는 중이야." 라고 심플하게 대답하니, 청년 둘이 어이가 없는듯이 "거긴.. 시데 옆 도시야... 우리야 시간 많아 걸어가는 거지만, 넌 배낭 메고 걸어가려면 정말 힘들텐데..."  

뭣이라? 마나브갓이 버스 터미널 이름이 아니고 도시 이름이야?? 젠장..  


힘든 동양 소녀 짐 좀 덜어주자고, 예쁜 마나브갓 시내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차이'도 공짜로 얻어먹었다. 

너무 예쁜 강변에서 사람들 수영하는 걸 바라보면서 해바라기 씨를 혀로 까먹는 법을 배운다.  



정말 예쁜데? 넋을 잃을 정도야... 그리고 이상하게 낯선 터키 남자 둘을 만났는데, 너무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터키에는 투르크족과 터키인 두 종족이 살고 있어. 우리는 투르크족이야. 터키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상한 사람들은 대부분 투르크족이지. 그들의 삶이 터키 내에서도 차별받고 힘들어서 그래. "


갑자기, 삶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사는 게 안편해서 그렇다는 언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예쁘지? 자유여행이라면, 이런 곳을 못보고 지나치면 안되지. 라면서 이곳 저곳 산책할 겸 구경시켜 준다.  


기대하지 못했던 낯선 곳에서의 뜻밖의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사진을 찍어두려 하자, 두 명의 친구들이 이야기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나봐?" "아니, 그닥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남겨두고 싶어서." 

그 청년이 말한다. 


그냥.. 마음에 눈에 담아.
이렇게 좋은 풍경은 사진기에 담기지 않아.


그래도.. 그들처럼 현재에 여유롭게 있지 못하는 나는, 나는 기억력이 그닥 좋은 편이 못 되어서.. 라며 틈틈이 사진기 셔터를 눌러댄다.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두 청년.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라 호텔이 텅텅 비어서 지루하다며, 혹시 서두르고 있지 않다면 시데에 더 머물고 가라고 한다. 보통이라면 그 제안을 뿌리치고 도망갔겠지만, 반나절을 같이 놀다보니 이 사람들은 내게 어떤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확실한 긍정 전파가 느껴졌다. 그저 호의구나.. 라는 어떤 확신이 나를 그들이 운영하는 호텔로 따라가게 만들었다.  



작고 귀여운 호텔이라며??? 완전 좋은데??? 

터키인들의 습성인 건지, 그 두 청년의 호의인건지, 그들은 내 방을 세팅하고 정식 손님처럼 나를 맞아주었다. 

자 .. 네 방이 준비되었어. 올라가서 푹 쉬렴. 내일은 늦게까지 자도 돼.
check out 12시인데 너는 제외해줄께.


들어가서 방을 보니 뜨아스럽게 좋아서 깜짝 놀랐다. 호텔이 텅 빈 틈을 타서 제일 좋은 방 줬나?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포근하고 깨끗한 침대에 뒹굴거리며 꿈나라로 즉시 날아가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수영장이 더 푸르르고, 바도 더 아기자기해 보인다. 

마음씨 좋은 두 청년, 아포와 마이클이 일을 하다 말고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든다. 

TJ! 일어났네? 빨리 내려와~ 커피먹자.  



내려가니 내 아침상을 호텔식으로 거하게 차려준다. 


 "My special guest" 라면서


이런 거 받아먹어도 되나? 너무 부담스러운데?? 라며 편하게 같이 먹자고 하니, 터키인들은 손님을 이렇게 접대해. 특히 나같은 매너 미남들은 그렇지 푸하하. 라면서 농담을 한다. 가만히 앉아서 맛있게 먹어주면 우리는 행복하다며. 밥을 배불리 멕이고서는, 수영하란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너만의 풀장을 즐기라면서.  



수영하면서 햇살을 즐기다 보니, 마이클이 흐뭇하게 쳐다보며 묻는다. 

"Are you happy? " 


응. 정말 행복하네?? 고마워. 

"You're happy, then it's OK." 라고 싱긋 웃고는 다시 호텔 일 보러 들어간다.  



영어 잘하는 청년 아포도 와서 묻는다. 

"TJ, 뭐 필요한 거 있어? 커피 줄까? " 

아니. 괜찮아. 

"즐거워 보이네? 마음껏 놀아. 오늘까지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우리도 한가하거든."  



길잃은 고양이 주워다 밥주고 재워주고 장난감 주는 착한 두 청년.. 내게 그들의 이미지는 그랬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강렬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마이클의 따뜻한 눈웃음이.  



터키에서는 해외 비자를 받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 인들은 본국에서 나가기가 힘들다. 마이클은 배낭을 지고 지뢰밭이 무성한 터키-그리스 국경 70km 를 걸어서 넘은적이 있다고 했다. 지뢰가 터져서 친구도 한 명 잃고. 그렇게 힘들게 걸어서 터키탈출에 성공한 후 그리스에 도착했는데, 즉시 본국 소환 되어 다시 터키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몸집에 비해 벅차 보이는 배낭을 메고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를 봤을 때, 자신의 과거 경험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렇게 위험한 지뢰밭을 걸으면서까지 그리스엔 왜 걸어 갔어? " 라고 물으니 호탕하게 눈웃음치며 말한다. 

삶을 위해서. (For Life!! )


그는 "내 막내 여동생은 지금 4살이야. 너무 예뻐. 막 춤도 추기 시작했어. 라면서 She's my everything "이라고 말하는 다정한 오빠이기도 하다. 비디오를 보여주며 너무 예쁘다고 핸드폰에 뽀뽀하는 모습에서 뭔가 익숙한 내 기억이 떠올랐다. 


"난 태정이가 너무 귀여워 죽겠어~~~" 라며 간지럼 태우던, 어릴 때 나를 키워준 오빠의 다정함이랄까.  



내가 잃었던 부분을 찾게 해준 고마운 인연이다. 나는 그를 통해 그동안 내가 잘 몰랐으나 끊임없이  그리워 하고, 간절히 찾고 있었던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그건, 따뜻한 보살핌과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이다.  


"터키 동부 사람들은 대부분 주민등록이나 패스포트가 없어. 그래서 나는 내 생년월일을 몰라. 하지만, 나는 아마도 30 즈음이 아닌가 싶어.. 왜냐하면, 작년과 올해 즈음.. 내 취향이 바뀌고 있거든" 이라고 말하는 마이클. 


어? 나도 그런데? 나도 30살인데, 취향이 완전 바뀌고 있어. 너랑 나랑 비슷한 나이인가봐?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는, 계속해서 터키에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런데,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지? 난 그게 매일 헷갈리는데? " 라고 물으니,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냥 느낄 수 있어. 너는 애가 아니잖아. 좋은 사람은 그냥 좋은 느낌이 있을거고, 나쁜 사람은 섬짓한 느낌이 있을거야. 그냥 그 느낌을 따르면 돼."  



어.. 그래.. 난 애가 아닌데, 애인가보네.. 아직은 잘 모르겠던데...?

하긴, 마이클과 아포는 전혀 의심없이 따라가도 되겠다는 확실한 느낌이 있었다. 이들은 내게 사심이 없다. 그저 보살피려는 호의 뿐이다.. 라는 100%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짐작대로 전적인 호의로 이틀간 나를 재우고 멕이며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예쁘다고 초상화까지 그려 벽에 붙여놨다. (그림보니 별로 예쁘지는 않다만..)  


"터키에서는 꼭 조심해. 터키 남자들은 위험해. 특히 투르크족을 조심하도록 해. 그들은 삶이 힘들기 때문에 관광객을 상대로 등쳐먹으려는 사람들이 많거든. 너는 여자니까 더 조심해야 해. 터키 남자들 이상해. 혼자 여행하니까 정말 조심해야 해. " 



꼭 엄마처럼 조심해. 조심해. 조심해. 계속 잔소리 하는 마이클. 되돌아보니 웃을 때 갈매기 눈이 나와 정말 닮은 친구다.  


 

아포는 내 무거운 가방을 지고, 마이클은 끈 떨어진 신발 때문에 맨발로 저벅저벅  나를 안탈리아 행 버스를 태워 보내러 나온다. 둘이 나를 배웅하면서 수다를 떤다. 


"나중에 TJ 가 할머니가 되면 이 기억을 행복하게 떠올리며 , 손자 손녀들에게 우리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거야." 

"맞아 떠올리면 정말 즐거운 기억이 되겠지. 우리도 그럴꺼야." 라며 순박하게 흡족해 하는 청년 둘.   



내 가방을 짊어지고 차를 태워주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아포가 활짝 웃으며 나를 뒤돌아본다.

 TJ, 이틀 전 우리가 바로 여기서 처음 만났었지? 맞아, 바로 여기였어 아하하.


정말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나 싶어서 더운 날 내 배낭 매고서 버스 잡으러 가는 그들 뒷모습을 한참 응시했다.  내가 얼마나 상처입고 움츠려 있었는지 깨닫자마자, 두 친구가 내 삶에 들어와 세상과 사람들에게 올바로 마음을 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사라졌다. "행복하니? 그럼 나도 행복하네." 라며 웃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게 사랑이고 배려라는 것. 


그리고 일단 마음을 활짝 열어보이기 위해, 사람이 주는 느낌을 민감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도.  


그냥 느낄 수 있어. 넌 더이상 애가 아니잖아


#세계여행기

#유럽여행기

#터키여행기

#퇴사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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