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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이방인, 카파도키아.

by 파랑새의숲

이스탄불에서 여행의 첫 발을 떼고, 부르사에서 사람들을 만나 마음이 따뜻해진 채로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가.


카파도키아. 그 이상한 행성으로 가자.


일단 나는 신기한 걸 눈에 가득 담고, 마음껏 놀고 싶어. 가서 풍선도 타보고, 개미굴 같은 사람 동굴도 보고싶어. 야간 버스 10시간. 힘들게 꾸부리고 내 가방을 베고 자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수건을 내 머리 밑에 받쳐준다.


완전 포근해... 라며 수건을 베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이런 게 배려구나.. 라고 잠결에 혼자 중얼거리면서.

별로 힘 들이지 않고도, 남을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비법. 그게 '배려'다. 그 친절한 남자 덕분에 나는 쌔근쌔근 10시간 중 대부분을 포근한 수건을 베고 쌕쌕 거리며 잤다.


터키 남자들은 의외로 다정하다.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래고 있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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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라며 귀찮아 하는 모습이 아니라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아이의 감정을 달래준다. 휴게소에서 만난 우는 아기를 달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이슬람 문화보다도 한국 문화가 여자가 살기엔 더 악조건이 아닐까? .. 라는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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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그 이상한 행성같은 곳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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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라는 지명 자체가 '좋은 말이 자라는 곳' 을 뜻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거리에 말들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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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과 신기한 돌산. 참 진귀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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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관광자원이 정말 풍부한 나라다. 국가 GDP 의 40% 정도가 관광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버려져 있는 고대 유적들도 많고, 복원하면 큰 가치가 될 수 있는 고대 도시도 많은데, 돈과 인력 부족으로 빨리 진행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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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린구유 지하도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도시. 땅속을 파고들어가서 살아남는 능력은 개미나 바퀴벌레 못지 않다. 카파도키아의 도시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인류의 처절한 생존 본능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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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문제로 숨어들었던 사람들. 이슬람을 피해 숨어들었던 기독교 인들이 대부분이다. 후에 이슬람과 계속해서 전쟁을 하고, 주거자는 무슬림, 기독교인 중 승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해졌다. 전쟁에서 이긴 종교는 그 이전 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그렇게 무슬림과 기독교인간의 전쟁 역사를 통해 이뤄진 지역. 우리는 신기하다 구경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피말리는 전쟁에서 숨기 위해 굴을 팠던 뼈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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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가나 한국 사람들을 보면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시선도 완전 꽃힌다.

생긴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한국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너무너무 예쁘다. !!! 사진 같이 찍어요~~~


어딜 가나 터키인들의 구애를 받았다. 내가 어딜 가서 이렇게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받을까 싶을 정도로 배가 터지게 칭찬하고 환하게 웃고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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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우흘랄라 계곡 트랙킹에서 만난 당나귀. 투어를 받은 턱에 함께 몰려가야 하지만, 난 내 걸음 속도로 천천히 낙오자가 되어 걸었다. 마지막에 전부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 이런 아름다운 계곡을 경주하듯이 빨리 지나가서야 쓰나?

역시 투어는 내 타입이 아니다. 그냥 혼자 올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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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 터키에서는 신나게 놀아보자고 다짐했다. 인생에 한 번, 아깝다고 움츠리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해보는 거야. 시시하면 다음번에 안하면 되는 거고, 좋으면 만족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으니 .. 일단 해보는 것이 안해보고 두고두고 '해볼걸' 이라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어떤 면으로 봐도 낫다. 일단 하자. 비싼 벌룬 투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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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나갔다. 벌룬 투어 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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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다. 1시간 동안 타니 조금 지루하다, 돈이 조금 아깝다.. 라는 혹평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모두 해본 자들만이 평할 수 있는 혹평이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지루한지, 돈이 어떻게 아깝다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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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풍선 타고 이런 기이한 곳을 날아볼테냐. 터키 조종사와 언제 이렇게 사진을 찍어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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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남자들은 다른 지역 터키 남자들과는 달리 조금 터프하고 각지게 생겨서 멋있다. 조종사 아저씨 진짜 멋지더라. 껌 짝짝 씹어대며 풍선 조종하는 모습이 참 당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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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면 샴페인을 준다. 자축의 의미. 같이 탄 한국 친구들과 함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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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보는 거야' 라는 내 여행 신조가 막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듯. 처음에는 너무 비싸지 않나, 해야 하나.. 에서 그 이후로는 신조가 생겼다.


'하고 싶으면 일단 해. 한국에서는 돈 주고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야'


그래서 모두가 몰려나가 스쿠터를 탈 때, 나는 혼자 좋아하는 말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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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이한 것일까. 나는 스쿠터같은 기계보다, 체온이 있고 꿈틀꿈틀 감정과 반응이 있는 동물이 좋다. 그래서 말 타자! 말 안탈래? 라고 한시간을 한국 사람들을 꼬셨으나, 전부 시큰둥.. 전부 스쿠터를 타러 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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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 돈으로 1시간 말을 탔다.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서, 아무 말 없이 말 등위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따박따박 걷는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하다.

너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있구나..
지금 너는 나를 태우기 싫고, 나뭇잎이나 따먹고 싶은데
일하게 되어서 내게 불만이구나.

칭얼대며 자꾸 나뭇잎을 뜯어먹는 말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속으로나마 대화할 수 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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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되는 만큼 마음껏 놀고, 눈앞에 있는 것에 감탄하고, 순간을 붙잡아 보자.

후회는 일단 해 보고 하자. 해 본 자만이 후회도 할 수 있다.

뭐든 안해보고 하는 '해볼걸' 후회보다, 해보고 하는 '하지말걸' 하는 후회가 여운이 덜 남는다.

카파도키아에서는 이렇게 돈 쓰고, 놀면서 이제 좀 즐겼구나.. 싶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이다 보니,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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