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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필 Dec 11. 2023

회계사 해월 씨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

윤필의 주변인 인터뷰 프로젝트

9월의 어느 날, 회계사가 되어 금의환향한 친구 해월 씨를 만났다. 지갑 속을 뒤적이더니 딱 하나 남은 명함을 건네주는 해월 씨. 명함을 받아 드니 이름 옆에 예상치 못한 수식어가 하나 붙어있었다. 바로 ‘수습’이란 단어.


세월의 흔적이 가득해 보이는 명함과 다르게, 그녀는 입사한 지 갓 1년이 된 수습 회계사다. 국내 4대 회계 법인 중 한 곳에서 재직 중이며 은행 팀에 속해있다. 알아주는 직장에, 그럴듯한 업무에 멋짐이 가득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윤필     어떻게 하다가 회계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어?     


해월     내가 국어국문학과를 전공 했잖아. 1년 다녀보니깐 알겠더라. 학문으로 배우는 건 역시 다르구나. 그리고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야.      


윤필     맞아. 글 잘 쓰는 사람 많지.     


해월     대학교 1학년 때 필수 교양으로 글쓰기 수업 같은 거 듣잖아. 내가 신입생 때 그 수업이 상대 평가였어. 한 반에 30명 정도? 점수 따기가 너무 힘든 거야. 다들 글을 엄청 잘 쓰고, 무엇보다 글쓰기에 진심이야.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뒤로 경영학과 이중 전공을 했고 한 학기 듣다가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갔어. 거기서 생각을 많이 했지.     


윤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네?     


해월     그런가? 교환학생 가서는 정말 쉬기만 했어. 거기서 생각을 많이 하면서 느낀 게,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어. 직장 말고 직업. 언제든 자유롭게 거취를 옮길 수 있는 뒷배경이 필요한데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 그래도 숫자로 공부하는 거 좋아했으니깐 회계사가 맞지 않을까 싶더라.     


윤필     맞아. 평생직장은 없으니깐. 혼자 있어서 그랬나? 생각을 많이 했나 봐.     



해월     그때 현지인이 많이 사는 한적한 동네에서 지냈어. 한 시간에 한 번씩 바로 앞 교회에서 종이 울리고 길가에 소랑 양이 있고 그런 곳이었어. 창문 앞에 앉아서 하늘 보면서 생각 좀 했지.     


윤필     마음 먹기 따라 힐링일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해월     한국에서 늘 꽉 채운 삶을 살다가 한 번 그러니깐 좋더라. 그때는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으니깐.     


윤필     즐기자, 이런 마음으로?      


해월     응. 맞아.     


윤필     근데 왜 네덜란드를 선택했어?     


해월     그나마 물가가 안정적이고 다인종 국가여서 인종 차별이 조금 덜 하지 않을까 싶어서.      


윤필     네덜란드어 따로 있지 않아?     


해월     다 영어를 잘하더라. 내가 간 학교는 한국학과가 있는 곳이었어. 한국학과 동아리도 했었는데 거기 친구들은 영어, 네덜란드어, 한국어 세 개를 섞어서 쓰더라고.      


윤필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     


해월     가서 탈춤 동아리 이런 것도 하고... 공부 빼고 다 한 것 같아.     



윤필     국문과 가서 회계사 될 생각도 하고. 여러 고민이 많았네. 학과 공부가 잘 안 맞았어?     


해월     어학은 재밌었어. 근데 현대 문학이 너무 안 맞더라고. 그것 때문에 과 공부를 접은 게 커. 교수님이 ‘내가 읽었을 때 마음에 안 들면 등단 못 한다’ 이렇게 말해. 교수를 할 정도니깐 학계에서 권위가 있는 분이지.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의미가 있나 싶더라. 재미가 없었어.     


윤필     아무래도 문학은 취향 차이가 좀 있지.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국문과를 선택한 이유는 뭐였어?     


해월     솔직히 그땐 성적 맞춰서 간 거였어. 얼마 전에 생활기록부를 확인해 봤거든? 직업 희망란을 보니깐 다 광고 쪽으로 써놨더라고. 광고 기획자. 그거랑 가까운 학과를 고르다 보니 국문과를 선택한 것 같아.    

 

윤필     광고 쪽은 생각 안 해봤어?     


해월     했지. 교환 가기 직전에 광고 동아리를 했었어. 그때 준비하던 PT가 있었는데 거의 한 달 동안 팀원들이랑 밤새가며 열심히 했어. 근데 결과가 안 좋았어. 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맞더라. 생각보다 보람이 없었어. 그 과정을 겪어보니깐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싶은 거지.


윤필     한 작품을 함께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     


해월     맞아. 광고는 창의력이 중요한 줄 알았는데 로직을 세우는 단계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 어려웠어.


윤필     학생 때 광고나 방송 분야 관심 갖는 친구들 많잖아. 나도 그중 하나였거든? 근데 팀플 한 번 하면 정신 차리게 되는 것 같아.

      

해월     맞아. 팀플이 메인이야.     


윤필     그렇게 광고 기획자의 꿈은 멀어지고... 회계사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     


해월     취업?     


윤필     취업이나 다른 전문 자격증도 있고. 변호사 같은?     


해월     난 법조계는 단 한 번도 관심 가진 적 없어. 그건 정말 선택지에 없었어. 3년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돈 안 버는 상태에서 뭘 하는 거에 질렸어.

     

윤필     맞아. 수험 생활은 경제적인 게 늘 부담이지.     



해월     내가 학교 다닐 때 취업 특강을 많이 들었거든. 경력개발센터에서 하는 직무 특강 이런 거. 정말 할 게 없더라.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야. 그나마 내가 관심 있는 건 재무, 회계 이런 건데.      


윤필     경영학 공부하면서 재무나 회계 쪽이 잘 맞다는 걸 알게 된 거야?     


해월     응. 근데 그게 있어. 분야는 좀 다르긴 한데, 내가 고등학생 때 수학을 좋아했어. 처음 1학년 때는 수학 내신 5등급으로 시작했거든. 근데 겨울방학 때 혼자 열심히 해서 2학년 때 2등급까지 올렸어.

      

윤필     우와, 멋지다.      


해월     그때 느낀 성취감 때문인 것 같아. 노력해서 이뤄내니깐 ‘오 숫자 괜찮은데?’ 딱 좋은 느낌만 남은 거야. 그 뒤에도 숫자가 있는 공부는 좋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윤필     신기하네. 세무 쪽은 관심 없었어?     


해월     회계사랑 세무사랑 시험 과목이 비슷하거든. 그래서 할 거면 더 어렵게 가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지. 


윤필     멋지네. 어쨌든 시험을 준비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해월     언제든 쉬고 싶으면 떠날 수 있는, 그리고 돌아올 곳이 있는. 그런 걸 원했던 것 같아.      


윤필     안정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해월     응. 어렸을 때부터 공무원 하라는 말을 많이 듣긴 했어. 근데 공무원도 참, 되기 어려운데 공부하고 투자한 거에 비하면 보수가 아쉬운 것 같아. 솔직히 사명감도 별로 없어. 



다음 편에 계속.         



덧말+     아름다운 사진에는 해월 씨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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