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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필 Dec 11. 2023

회계사 해월 씨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

윤필의 주변인 인터뷰 프로젝트

윤필     수험 생활 얘기가 궁금해. 얼마나 준비했어?     


해월     딱 2년? 1차 시험을 두 번째 도전 만에 붙고 그 해에 2차까지 합격했어.      


윤필     멋지다. 


해월     나름 적성에 잘 맞았어. 수험생만큼 규칙적으로 사는 삶은 없을 거야.      


윤필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하잖아.     


해월     그래서 나는 스터디를 많이 만들었어.     


윤필     오 네가!     


해월     응. 내가 만들었어. 생활 스터디. 몇 시에 일어나는지, 일주일 얼마나 공부했는지 인증하고.      



윤필     일과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해월     8시에 도서관 가서 11시 폐관할 때까지 공부했어. 1차 시험이 2월 말에 끝나고 2차 시험은 6월 말에 있는데, 나는 1차랑 2차를 같은 해에 봤잖아. 그런 경우는 4개월 동안 다섯 과목을 공부해야 해. 그때 엄청 바쁘거든. 시험 직전 한두 달은 아침 6시에 학교 가서 공부하고.      


윤필    독학한 거야?     


해월     도서관에서 인강 들으면서 공부했어. 인강도 다 나눠 듣고 그랬지. 공부를 깊게 안 해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 깊게 할수록 의문이 커지잖아. 그러면 시험 못 붙어. 궁금해하면 안 돼. '외우세요' 하면 외우는 거야.      


윤필     최종 합격 발표는 언제야?     


해월     8월 말쯤. 난 그때 채점을 하나도 안 했어.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윤필     자신이 없었어?     


해월     응. 안 되면 일하다 다시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자기소개서 쓰고 영어 성적 만들어 놓고 면접도 보고 그랬지. 근데 8월 말에 점수를 확인해 보니 합격인 거야. 바로 지원해서 회사 들어갔지.


윤필     그리고 9월부터 일한 거야?    


해월     응. 그해에 선발 인원을 늘려서 운 좋게 합격한 거야. 보통 그렇게 늦게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몇 명 없으니깐 빨리빨리 뽑아서 가더라고.      


윤필     그럼 마음 준비할 새도 없이 바로 출근한 거네.     


해월     그때 돈 벌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어.     


윤필     입사 과정은 어렵지 않아?     


해월     작년까지는 모셔가는 느낌? 면접도 면담에 가까웠고. 사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올 생각이 없었어. 다른 곳에 가고 싶었거든. 면접관이 내가 가고 싶은 회사를 말하면서 둘 다 붙으면 어디로 갈 거냐 물었었어. 그때 난 집 가까운 데 갈 거라고 대답했어. 그렇게 말해도 붙을 정도로 작년엔 입사가 까다롭진 않았어. 근데 올해 보니깐 좀 다르더라. 감사해하면서 다니고 있어.      


윤필     이야.      


해월     진짜 진심이었어.      



윤필     수험 생활이란 게 기약 없는 일이잖아. 버텨 낸 게 대단해.     


해월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나이 먹을수록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져. 특히 나빴던 기억이 빨리 사라져. 지금도 공부했을 때 어땠나 떠올려보면 기억이 잘 안 나. 회계사 일도 우리는 겨울에 바쁘거든? 지난 겨울도 정말 힘들었는데 벌써 기억이 희미해.      


윤필     그러면, 언제까지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지노선이 있었어?     


해월     3년 정도 생각했는데 안 되더라도 돈을 벌면서 계속 도전했을 것 같아.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계속하면 짐이 될 것 같더라고.      


윤필     포기 안 하고? 대단해.     


해월     아까워서. 그나마 하고 싶었던 광고 쪽도 대외활동 이후로 내 길이 아니란 걸 알게 됐고. 그 외에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없었어.


윤필     나중에 돌아봤을 때 엄청 소중한 기억일 것 같아. 열심히 살아서 이뤄냈으니깐.     


해월     그때는 안 되어도 미련 없다, 이런 느낌이었어.     


윤필     그게 중요하지. 멋지네.     


해월     다시 하라면 못해.     



윤필     그래서 지금은 어때? 회계사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야?     


해월     다들 회계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더라고. 사실 회계사들도 잘 몰라. 회사가 만든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거? 크게 말하면 분기 끝날 때마다 분기 검토 보고서를 내야 해. 그 시즌마다 보고서를 쓰느라 바쁘고 그 외에는 회사 내부 회계 구축이라든지 이런 업무.     


윤필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 거야? 9시부터 6시까지야?     


해월     대부분 한 10시까지와. 본사는 따로 있고 고객사로 출근하는 거야. 거기 가면 회의실이 있어. 난 일찍 가는 거 좋아해서 한 9시 15분쯤에 가. 그렇게 메일도 확인하고 일하다가 6시쯤 누구 하나 일어나기 시작하면 6시 반에 가는 것 같아.     


윤필     지금 있는 팀은 어때?    

 

해월     좋아. 지금 팀엔 지원해서 왔어. 고객사가 은행이다 보니 일도 많고 까다로울 거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차피 바쁠 거라면 알아주는 데서 바쁜 게 낫지 않나 해서. 노비도 대감집 노비가 낫다는 말이 있잖아. 자원한 거라 크게 불만은 없어.     

 

윤필     거기서 어떤 업무를 해?     


해월     요즘엔 은행 내부에서 1차로 검토한 내용을 잘 검토했는지 확인하고 보고하는 일을 해. 부족한 부분은 인터뷰 잡아서 묻기도 하고.     


윤필     거의 감시하는 일 아냐?     


해월     근데 우리가 을이야. 자료를 안 주거든. 보안 유지 명목으로 필요한 자료를 안 넘겨줘. 그쪽에서는 우리가 캐묻는다고 보는지 불편해하더라. 가끔 선임분들이 재무제표를 보면서 어느 부분이 이상하다고 얘기를 나누시는데 그러면 이슈가 터지기도 해. 그럴 때 이런 게 경력이구나 느껴.    

 

윤필     그럼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해?     


해월     보고해야 해. 윗분들이 물어보시거든. 예를 들어 인건비가 뛰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 그럼 또 답변을 준비하지.

     

윤필     그런 사건을 겪어본 적 있어?     


해월     요새 은행에서 횡령 사건이 많은데 우리 쪽에서 터진 일이 아니라도 영향을 받아. 우리도 관련 사업에 문제없는지 확인하고 현 상황이 어떤지 정리해서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해. 물론 내가 하진 않아.

      

윤필     듣기만 해도 어려워. 법인 내에서 금융 쪽이 다루기 어렵고 힘든 일이야?     


해월     보통 회사들은 우리나라 감사만 받거든. 근데 은행 같은 금융지주들은 미국에서도 받아. 그게 엄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감사할 때 조서를 써. 미국 감사를 받는 회사는 정말 열심히 써야 해. 얘네가 잘하고 있고 우리가 잘 봤다, 그러니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써야 하는 거야. 우리 팀장님은 내가 국문과니깐 글을 잘 쓸 거라고 기대하고 계시더라.     


윤필     그런 엄청난 일에 바로 투입될 수 있어?     


해월     어디나 그렇겠지만 1년 차는 비교적 중요도가 낮은 일을 맡아. 근데 막막하지. 엑셀도 다루기 어렵고 수험서만 보다가 왔는데 갑자기 하라니까 막막해.     


윤필     그럼 신입은 무슨 일을 맡아?     


해월     지금 들어오면 3분기 검토랑 기말 감사 시작 전에 밑 작업하고 그런 거? 내가 신입일 때는 보험 쪽 일에 차출됐어. 특수한 분야라 어려워서 나한테는 일을 안 맡기더라.


윤필    일이 어려워서 적응하는데 힘들었을 것 같아.     


해월     모르는 게 많은데 질문하는 게 힘들어. 몰라서 실수하고 나중에 일 터지면 큰일이잖아. 근데 참 쉽지 않아.     


윤필     다들 바쁠 때 물어보는 게 어렵잖아.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참 힘들어. 그럴 때 친절한 선배를 만나면 참 좋을 텐데. 잘 알려주시는 분.      


해월     내 선임 중에 다행히 그런 분이 있었어. 감사한 일이지. 요즘 회사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느낀 건데 알려주려면 나도 잘해야 한다는 거. 안 그러면 궁금한 거 있냐고 물어보기도 힘들 것 같아. 다음 주에 후임이 오는데 일단 나부터 잘해야 알려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다음 편에 계속.



덧말+    [NEW!] 드디어 해월 씨에게 후임이 생겼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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