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의 주변인 인터뷰 프로젝트
나의 마지막 룸메이트 지아 씨를 만났다.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로 운명처럼 만난 그녀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다. 또래에 비해 다양한 환경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나눠줄 만큼 넉넉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아 씨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어린 나이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원가회계 직무로 입사했다. 지아 씨는 연고지 없는 어느 도시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알아주는 기업에 빠르게 취업했지만 지아 씨에겐 또 다른 고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아 씨는 또 한 번의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작년, 퇴사를 결심한 지아 씨에게 본사 이동 제안이 왔다. 고민 끝에 지아 씨는 회사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진학, 입사 그리고 퇴사. 갈림길의 연속에서 누구보다 고민이 많았을 지아 씨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아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윤필 입사한 지 얼마나 됐어?
지아 이제 곧 있으면 3년이네.
윤필 이제 대리되는 거 아니야?
지아 대리 진급을 겨울에 심사받아. 좀 싱숭생숭해.
윤필 이상하다.
지아 내 말이.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윤필 공장에는 얼마나 있었던 거야?
지아 공장에서는 1년 반 넘게. 곧 있으면 본사로 옮긴 지도 1년이야.
윤필 시간 진짜 빠르다.
지아 엄청 빨라. 원래 사는 게 이런 건가?
윤필 그러게. 인생이 허무해.
지아 난 엄청 바쁜데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서 좀 허무한 것 같아.
윤필 그 일의 특성인가?
지아 그런 것 같아. 아무래도 관리 부서니깐. 평가를 받으려면 개선하고 바꾸고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진짜 없어. 꾸역꾸역 찾아서 하긴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
윤필 영업 같은 거는 아니니깐.
지아 영업이나 마케팅처럼 성과 지표가 보이는 게 아니라서 어떤 걸 해야 하지 싶은 건 있어.
윤필 무슨 업무를 해?
지아 쉽게 말하면 돈 들어오면 어떻게 굴릴지, 남은 돈은 어떻게 관리할지 그런 거 하는 부서야.
윤필 네가 하는 일은 뭐야?
지아 회사로 들어오는 돈을 관리하고, 기업 간 결제 시스템을 이용해서 거래처에 대금 지급하는 업무를 해.
윤필 말만 들어도 어려워.
지아 실수하면 진짜 큰일 나는데 실수 안 하면 그게 당연한. 그런 일인 것 같아.
윤필 업무 자체는 변동성이 크진 않을 것 같아. 근데 되게 집중해야 하는?
지아 맞아. 그날그날 하는 업무랄까.
윤필 그게 너랑 잘 맞는 것 같아?
지아 안 맞지는 않아. 근데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느낌. 대체 인력이 많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윤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승진해도 계속 비슷한 업무를 하는 거야?
지아 큰 틀은 같아. 운용이나 차입을 맡게 될 수도 있고 이것저것 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회사에 갔을 때 이게 경쟁력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
윤필 고민이 많겠다.
지아 솔직히 고민하다가도 그냥 별생각 없이 다니긴 하거든. 근데 한 번씩 미래를 생각하면 좀 속상해지긴 해.
윤필 어떤 점에서?
지아 내 경력이 잘 쌓이고 있는 게 맞나? 시간만 흐르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윤필 나도 공감된다.
지아 그러다가도 또 월요일 돌아오면 잊어버리고.
윤필 일 자체는 숙련되면 빠르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아 거의 같은 일의 반복이니까. 사실 운 좋게 본사에 자리가 났잖아. 퇴사보다는 나으니까 한번 해보자 하고 이동한 거거든. 솔직히 말하면 도피한 느낌.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은 것 같아.
윤필 공장에서 맡았던 원가회계하고는 무슨 차이가 있어?
지아 원래 하던 일은 제품 원가 분석하고 개선하는 것? 같은 회계라도 원가회계는 결이 달라. 제품을 생산한 후에 원가를 계산해서 분석하는 일이라, 회사 전체 프로세스 놓고 봤을 때 완전 앞단의 일이거든. 지금 하는 업무는 돈을 내보내는 거라 완전 끝단에 있어.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어.
윤필 원가회계가 더 재밌다고 그러지 않았어?
지아 그때는 회의자료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서 그런 거 제외하고 원가 분석 업무만 봤을 때는 이전에 일이 확실히 더 재밌었어.
윤필 진짜?
지아 진짜.
윤필 하는 일이 원가율을 줄이는 거야?
지아 비슷해. 사실 내가 어떻게 줄일 수는 없고 전년 대비해서 왜 올랐는지 이런 걸 분석해. 그러면 떨어뜨리기 위해서 어디를 건드릴 수 있나 고민하고 관련 부서 사람들이랑 논의도 해.
윤필 엄청난 일을 했네.
지아 말로 들으면 그렇게 느껴지는데, 신입 때 조금 하다가 옮겼으니깐 중요한 역할을 하기 전에 나온 것 같아.
윤필 그런 일은 어떻게 하는 거야? 데이터를 분석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지아 제일 중요한 건 현장을 알아야 해. 생산 쪽 일을 다 알아야 과정이 그려지거든.
윤필 아 그래서 입사를 공장으로 했구나.
지아 맞아. 그래서 현장에도 많이 가보라고 하셔. 나도 들어가기 전에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어. 그냥 원가 분석을 하겠거니 하고 간 거야.
윤필 원가 쪽을 계속 파고들면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어?
지아 그런 것 같아. 그래서 원가 쪽은 이직하기도 좋은 편이야. 퇴사 결정 전에 이직 준비도 했었거든. 1년 정도밖에 경력이 없는데도 원가를 했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지더라. 되게 적극적으로 했어. 정말 너무 벗어나고 싶어서.
윤필 재미를 느끼는 일이었는데 벗어나고 싶었다니 슬프다. 어떤 게 힘들었어?
지아 그때 하던 게 원가 분석이랑 회의자료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했잖아. 근데 회의자료 만드는 게 한 70% 됐던 것 같아. 나머지는 극히 일부 이런 느낌이었어. 그리고 업무 환경도 한몫했어. 워낙 환경이 안 좋았다 보니 좋은 환경의 회사로 가고 싶은 거야. 진짜 간절했어. 안 되어도 퇴사하려고 생각했고.
윤필 그 환경에 사람도 포함된 거지? 같이 일했던 분 때문에 힘들었다며.
지아 맞아. 중간에 대리나 과장급이 없어서 얘기할 게 있으면 팀장이랑 바로 소통해야 했어. 근데 그분의 방식이 한 마디로 상명하복. 지시 방식뿐만 아니라 성격도 안 맞았어.
윤필 신입이 팀장이랑 소통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지아 조금 열린 분이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 원래는 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온 선배가 있어서 같이 일을 했었어. 더는 못 버틸 것 같은 시점에 선배는 본사 발령이 났고 나 혼자 남은 거야. 진짜 견딜 수가 없었어. 업무량도 훨씬 늘어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주말 출근 안 해도 팀장님이랑 통화해야 하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프거든. 목에 없던 멍울이 생기고 진통제를 먹어도 두통이 안 나아져. 출근해서 팀장님이랑 얘기하면 머리가 너무 아파. 막 울려. 근데 일은 계속해야 해. 아, 이거는 아닌 것 같다.
윤필 버티고 버티다가 내린 결정이었구나.
지아 이직 면접까지 봤는데 결국 안 되어서 퇴사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다행히 시기가 딱 맞게 본사에 공석이 나서 지금 이렇게 다니고 있는 거야.
윤필 퇴사해서 어떻게 할 계획이었어?
지아 당시에는 어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 거야. 사람한테 너무 지쳐 있었어. 그 일까지 미워질 정도로. 근데 회계 분야가 아니면 당장 취직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것도 아니었거든. 그래서 아예 다른 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윤필 아예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
지아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봤어. 퇴사 전에 살길을 만들어야 하니깐. 그러다가 해보고 싶다고 느낀 게, 책 편집자. 본격적으로 준비하려면 교육부터 들어야 하니깐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랬는데 본사 이동 제안이 온 거야.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는데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냐. 엄청나게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도피성이 있었던 것 같아. 당장 나와야 하는데 그냥 나올 수는 없고 할 만한 걸 정해둬야 하니깐. 그런 마음이었던 거지.
윤필 그러면 퇴사 후에 편집자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었어?
지아 그러기로 마음먹었는데 되게 불안했지. 아무래도 보수가... 진짜 쉽지 않더라고. 열정이 엄청나야 견딜 수 있을 만한 보수인 거야. 나는 이미 좀 더 높은 보수의 맛을 본 상태잖아. 그래서 거기에서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지. 근데 뭐 어떡해. 당장 죽을 것 같고 일반 기업은 무서워서 못 가겠는데 이건 좀 재밌어 보이고. 불안하지만 열심히 해봐야지 했던 것 같아. 갑자기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서 고민이 많았는데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퇴사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윤필 어떤 기준으로 편집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지아 그때 내가 잘하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 전부터 글 다듬는 걸 잘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거든. 내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있었어. 그래서 글을 교정하는 직업을 찾기 시작한 거지. 마침, 편집자라는 직업이 있는 거야. 하는 일을 보니까 되게 재밌어 보여. 직접 글을 쓰지 않아도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어. 내가 좋아하는 책들에 둘러싸여서 일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기더라.
윤필 일단은 잘하는 걸 찾는 데서 시작했구나.
지아 사실 좋아하는 것 중에 일로 삼을만한 걸 생각해 봤을 때 그렇게 좋아하는 게 있는 것 같지 않았어. 그리고 그럴 수 없는 것 같아. 좋아하는 게 독서인데 책 읽는 직업을 가질 수가 없잖아. 그러다가 그냥 잘하는 걸 찾아보자 한 것 같아.
윤필 정말 일반 기업에는 갈 생각이 없었어?
지아 진짜 너무 지긋지긋했어.
윤필 회계 쪽은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다?
지아 지나고 보니 사람이 문제였던 건데 당시에는 회계까지 싫어하게 됐던 것 같아. 일은 버틸 수가 있잖아. 진짜 중요한 건 사람이구나. 다행히 지금은 사람들이 괜찮아. 일은 재밌다기보다는 무난. 그냥 이 정도의 회사 생활이면은 나쁘지 않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다니고 있는 것 같아.
윤필 지금 동료분들이 너의 일화를 들으면 다들 놀랄 것 같아.
지아 그냥 다른 회사야.
윤필 난 공장 점퍼를 지퍼까지 다 잠그라고 지적했다는 게 충격이었어.
지아 그런 게 많았어.
윤필 이해는 돼. 규칙이 풀어지면 사고 나기가 십상이니까. 품질도 그렇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공간은 맞는데.
지아 맞아. 근데 나는 거기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윤필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진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지아 아침마다 체조했거든.
윤필 또 시작됐다.
지아 그 체조를 한 8시 45분부터 하는데.
윤필 9시부터 일하는 거야?
지아 어. 근데 그전까지 옷을 다 갈아입고 들어가야 해.
윤필 출근 시간이 앞으로 당겨지는 거네?
지아 체조 다 끝나고 9시는 안 넘거든? 근데 체조 끝나고 들어가면 지각한 걸로 찍히는 거야. 나 지각 안 했는데!
윤필 아침 체조 빠질 수 없나요?
지아 빠져도 되지만 연속으로 빠지면 뭐라고 했던 것 같아.
윤필 이유가 너무 많았네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