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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삶'을 꿈꾸는 인간의 단상

전생에 개였던 걸까?

by 몽삶
아홉 살이라 믿기지 않는 최강 동안 (팔불출)


전생에 개였던 걸까?

우리 집 반려견보다 산책을 더 좋아하며, 이제 그만 들어가겠다는 '개'와 대치하는 '사람'.

이제는 제법 노견 소리 듣는 9살 푸들이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하는 눈으로 한숨을 쉰다.

그 모습을 보며 처지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2번 산책을 하며, 내킬 때는 나갈 일을 만들어서라도 기어코 걷고 온다. 덕분에 튼실해진 종아리를 풀어주는 데만 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따지고 보면 사치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바쁜 현대인에게 시간은 금이라며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시간을 절약하는 요즘, 굳이 걷는다.

직장인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정이라는 것도 맞다. 하지만 어쩌겠나. '산책하는 나, 기분이 좋크든요.'

그 순간 모든 문제를 유예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시간.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이족보행을 하며 직립 생활을 시작하고 문명을 이루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24시간 중 절반을 앉아서 생활하는 좌식 생활자들이 현저히 늘었다. 사람이 하루에 평균 7시간을 잠든다고 했을 때, 서 있는 시간은 세 시간 남짓.


좌식 생활은 우리의 중심인 코어를 무너트리기 좋다.

앉아 있는 내내 바른 자세로 있으면 좋겠지만 어느새 모니터로 마중 나온 목과 무너진 허리가 된다. 몸에 좋지 않은 편한 자세로 굳어 기어코 허리디스크가 터진다.

허리 수술을 하고 애플워치를 구매했다.

'이제 일어설 시간이에요.!' 한 시간에 한 번 알림이 울리는 기능 때문이었다.

집중의 시간은 짧지만, 잡생각의 시간이 버무려지면 한 시간이 오분같이 흘러간다.

허리 수술이라는 값비싼 경험으로 오분 같은 한 시간이든 억겁같은 한 시간이든 알람이 울리면 일단 일어나 집안을 배회하고 다시 앉곤 한다.

그러다 보면 한 두 번은 조금 멀리 나가 걷게 되고 그게 곧 산책이 된다.

개에게산책은 필수불가결한 일상인 것처럼 나에게도 산책이 의식주만큼 중요한 일이 되었을 때.

산책 중 터무니없는 소망이 생긴 적이 있다.

현생에도 개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이자, 업이자, 삶인 것 같은 산책을 보고 있자면 개팔자에 대해 문득 부러워진다.


걷는 게 직업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말도 많고 걸음도 많은 사람에게 알맞은 것. 여행 유튜버, 여행 작가, 여행 칼럼니스트, 또는 르포 기자 등이 있겠다.

무언가 경험하고 다니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멀리 떠나는 것을 꿈꾸지는 않는 편이다.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꼭 여행을 떠나면 한국 음식이 그립고 김치가, 국밥이, 냉면이 당기는 것처럼 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밖을 좋아하는 만큼 집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알맞은 직업은 산책 기록자, 산책 유튜버, 산책 칼럼니스트 등이 될 텐데... 누군가 궁금해할까 싶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상에 그다지 이롭지 않은 일이라 역시 업으로 하기보다는 취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 했다. 그렇다면 역시 다음 생에는 산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개가 좋을 것 같다는...

다소 '개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 '개 같은 삶'이 나의 이상적 삶이다.

산책하는 개의 표정을 본 적 있다면 '개 같은 삶'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유튜브에 개에게 카메라를 설치해 개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낮은 보폭의 네 다리가 뚱땅거리며 리듬감 있게 흔들린다. 지나던 길가의 꽃에 코를 박고, 또 누군가 이미 마킹한 나무 밑동에 볼일을 보며 걸음마다 부산스럽고 바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바쁜 시선엔 순수한 호기심이 묻어 나온다.

무해하고 맑은 눈빛으로 세상을 보는 것.

건강하고 순수하지만 까맣고 윤이나는 눈에서 단단한 영혼이 느껴진다.

만약 인간이 개 같은 시선으로, 개 같은 마음으로 매일 산책을 한다면 남은 좌식 생활에서도 눈을 빛낼 수 있지 않을까.

개 같은 마음으로 뚱땅뚱땅 산책을 하면. 두 발로 동동 구르며 보내는 하루가 차분하고 다채로운 시간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전에 앉아 일하는 동안 굽은 허리를 한 번 펴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잠깐의 산책을 기대해 본다.

개 같은 시선으로, 개 같은 마음으로 매일 산책을 한다면 남은 좌식 생활에서도 눈을 빛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앉아 일하는 동안 굽은 허리를 한 번 펴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잠깐의 산책을 기대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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