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산책. _반드시 그리워질 서늘한 밤공기.
나는 ‘찰나를 영원같이 즐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영원한 행복도 불행도 없기 때문에 나는 어 중한 간 상태를 보통의 하루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것보다 되어가는 중의 상태를 좋아한다.
완전한 행복, 완전한 불행엔 희망이 빠진 느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을 무서워한다. 같은 맥락으로 성공을 두려워한다.
혹자는 젊은이들이 최선을 했을 때 성공하지 못한 나를 견디기 어려워 가능성의 상태에 안주한다 하지만.
모르겠다 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오는 허무를 알고 싶지 않다. 생장하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로 생을 마감한 순간 밖에 없듯. 사람에게 완전은 생명력이 다한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비약적 생각도 했다.
나는 언제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고 싶다. 지금의 행복이 찰나인걸 알고 영원처럼 즐기면서도 불행 앞에서도 같은 온도로 살고 싶다.
미생은 미지근한 생이면서 포기 없는 생의 온도다. 나는 ‘찰나를 영원같이 즐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영원한 행복도 불행도 없기 때문에 나는 어 중한 간 상태를 보통의 하루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것보다 되어가는 중의 상태를 좋아한다.
완전한 행복, 완전한 불행엔 희망이 빠진 느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을 무서워한다. 같은 맥락으로 성공을 두려워한다.
혹자는 젊은이들이 최선을 했을 때 성공하지 못한 나를 견디기 어려워 가능성의 상태에 안주한다 하지만.
모르겠다 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오는 허무를 알고 싶지 않다. 생장하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로 생을 마감한 순간 밖에 없듯. 사람에게 완전은 생명력이 다한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비약적 생각도 했다.
나는 언제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고 싶다. 지금의 행복이 찰나인걸 알고 영원처럼 즐기면서도 불행 앞에서도 같은 온도로 살고 싶다.
미생은 미지근한 생이면서 포기 없는 생의 온도다.
지붕도, 벽도 없는 공간에서의 걷기. 산책이 가장 어려워지는 계절은 단연 여름이다.
이상 기후로 길어진 여름만큼, 덥고 습한 아열대성 공기를 해치고 걷다 보면,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입보다 아가미가 필요한 기분이 든다.
한낮에 무리해 걷기보단 밤산책을 선택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열대야로 인해 선선한 밤이 귀해져서, 여러 날 중 그나마 선선하다 느껴지는 날씨가 걸리면.
그렇게 귀하고 소중할 수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런 날은 뛰고 걷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실제로 봄이나 가을보다, 여름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날은 공원이 정체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옷이 짧아진 만큼 내 몸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져서일까. 나도 덩달아 뛰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강경 산책을 잠시 거두고 뛰기도 했었다.
여름이 되면 바깥에 사람이 많은 이유. 일 년의 절반을 지나는 시점이라 그렇지 않을까.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남은 반년을 이전의 반년보다 나아진 나로 살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이
미뤄둔 새해 다짐을 다시 이행하듯. 길어진 밤에 낮의 열기를 식히려는 마음으로 걷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해서, 여름의 산책은 혼자가 아닌 느낌이다. 나란히 대열 합류에 걷다 보면.
전에 상상했던 ‘산책 크루’라도 된 것 같다. 일면식도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사람들과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걷는다. 그리고 걸음마다 서로의 보복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가끔 30분 전 지나쳤던 사람을 갈림길에서 마주치기도 하며, 익숙한 얼굴이 생기기도 한다.
다른 마음으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산책의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람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건 출근길 지옥철을 타고 내리며 한 곳으로 흘러가는 기분과 사뭇 다르다.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풍경을 공유하지 않고, 시선이 머무르지 않지만
산책길 사람들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그들의 하루가 어떤 일로 채워졌고, 각박했거나, 운이 좋았건, 기뻤건, 최악이었건, 산책의 걸음은 일정한 박자로 심신의 안정을 줄 것이고, 나란히 걷는 사람들이 그들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들을 풍경 삼아 더 걷게 되고, 안 가본 길로 가보게 된다. 어쩐지 마음의 의지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공원을 걸을 때 문득 돌아보던 불안이 없다.
소란스러움이 주는 안정감을 느낀다. 어쩌면 동네 사람들인 사람들을 보며 분위기를 읽기도 한다.
'혼자 걷는 일'
혼자 걸을 때는 이어폰을 챙겨 노래를 듣는 편이다.
산책에 있어 음악이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아주 중요한 준비물이다.
봄엔 아무래도 꽃잎이 살랑이는 리듬의 노래들을.. 여름엔 라틴팝이나 밴드 노래를, 겨울엔 서정적인 인디 가수의 목소리로 따뜻한 감성을 유지하고 가을엔 발라드가 통상적이지만. 여름에 캐럴을 들어보기도 한다. 무더운 날, 내리쬐는 해를 맞는 정수리가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 한 곡을 반복해 들으며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걷는 일도 좋다.
어느 가수의 노래를 쭉 훑어 들으며 그 가수의 목소리로만 들은 적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날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날의 온도와 습도, 나의 기분으로 결정하면 충분하다.
일단 귀에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공공의 장소에서 온전한 일 인분의 보호막이 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만의 배경음을 틀고 나만의 세계에서 혼자를 즐길 수 있다.
‘함께 걷는 일’
매일 같이 혼자 걷던 길을 친구와 또 동생과 걸을 일이 있다.
혼자 걷는 일이 나와의 대화라면 둘이 하는 산책과 대화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산책을 감성 에세이에 맞게 풀어보자면,
나는 감히 두 세계의 만남이라 거창하게 이야기하겠다.
‘공공장소에서 발맞춰 걷는 일.’ 공적이고 내밀하고 사적인 대단한 일이다.
우선 나의 발걸음과 상대의 발걸음 보폭을 맞추어야 하고, 내 시야에 길이 아닌 사람을 두어야 하는 일이며. 그 사람의 컨디션, 기분, 상황에 따라. 그날의 산책이 어떻게 흘러갈지 결정된다.
되는대로 걸어선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아닌 우리를 중심에 두는 일.
함께 걷는 일에 자격요건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나’랑 걸을 수 있지만 함께 걷는 순간 그 사람은 ‘아무나’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함께 걸은 사람은 오래 기억한다.
잘 맞는 걸음, 대화, 체력이라면 꼭 붙들고 싶어진다.
함께 하는 산책은 나란히 시선을 공유하고, 대화를 동반한다.
다른 대화와 다른 것은 시선의 자유라는 것이다.
카페, 식당에서 마주 앉아서 하는 대화는 시선을 상대에게 두는 것이 경청의 의미지만
산책을 통한 대화에서는 어느 곳을 보아도 무방하다.
의외의 곳에 시선이 머물면 그것이 다른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시선을 당겨와 보게 한다.
혼자 할 때는 몰랐던 것을 보고 감각한다. 함께 하는 산책은 공감각적인 대화다.
이것이 마주 보고 하는 대화와 나란히 보며 하는 대화의 차이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보지 않고 비켜 보는 것의 편안함.
그러다, 때때로 마주치는 시선은 조금 더 특별하고 밀도 있다.
친구, 가족, 연인에 따라 그 1초가 굉장히,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함께 걸어 기분 좋은 산책은 그런 진심을 주고받는 일이다.
친구와는 그날 있던 상사의 이야기, 오른 수도세 이야기, 함께 응원하는 야구팀의 이야기를…. 여름휴가 일정, 갑자기 많아진 새치 이야기,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 동생과는 최근 가족과의 대화, 동생의 남자 친구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닮아가는 얼굴에 대한 불평.. 시시콜콜한 기타 등등. 그 사람과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지기를 반복하는 대화들을 했다.
다른 분위기의 다른 이야기였지만, 누구와 걷든 함께 걷고 나면 열이 오른 다리처럼.
조금은 온도가 올라간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조금은 후련하고 뿌듯한 마음이 될 수 있다.
누군가와 하는 산책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하지 않아도, 각 잡고 고백하는 용기가 없어도 은근슬쩍 내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두 눈을 보고 하기 낯부끄러운 이야기, 용기가 필요한 이야기를 하려거든
산책하며 슬쩍 흘려보길 추천한다.
무덥고 긴 여름. 일인용 산책 그리고 둘이 걸으며 다채롭게 채웠다.
올여름은 정말 길고 덥다던데,
언젠가 이 무덥고 습한 여름 산책이 추억할 때가 오겠지, 하며 순간을 소중히 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