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장밥 Aug 26. 2020

떡볶이 200원 어치

떡볶이 : 독립문 영천시장

할머니는 생선 장수였다.


 비릿한 냄새가 났다.


손자의 잠자리는 할머니 옆이었다. 할머니는 곤히 자고 있는 당신의 강아지가 행여 잠에서 깰 새라, 언제나 조심스레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하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준비 소리가 손자에게 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철제 대문 여는 소리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할머니가 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면, 손자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후다닥 달려나와서 안녕히 다녀오세요 인사를 했다. 문이 닫히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잠을 마저 청했다. 손자는 할머니의 허리춤을 간신히 넘는 나이였다.


끼익-

새벽 세시 반.

그 날의 장사를 위해 도매시장에 가는 시간.

어린 손자의 모닝콜은 대문 열리는 소리였다.



시장 통로를 향한 좌판에는 제멋대로 생긴 돌얼음 더미 위에 도매시장에서 그 날 떼온 갖가지 해산물이 진열되어 있었고, 별다른 가림벽이 없는 가게 내부에는 생선도마와 손바닥만한 소형 테레비와 황토빛 장판이 깔린 뜨끈뜨끈한 마루가 있었다.


할머니의 앞모습은 손님의 차지였기 때문에, 어린 손자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더 익숙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다. 할머니 눈에는 손자가 참 예뻐보였을게다. 생선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내느라 몸에는 비린내가 배었을지언정, 고개를 돌려 손자녀석 얼굴을 한번 쓱 보면, 그것만으로도 피로가 잠시나마 잊혀졌으리라.


그래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떡볶이를 사주시곤 했다. 손자는 떡볶이를 좋아했고, 할머니는 떡볶이를 먹는 손자의 모습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이는 떡볶이를 입안 가득 채워넣고 힘차게 씹어대는 손자의 모습을 보면, 할머니는 잠시나마 장사일로 인한 노곤함을 잊을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진통제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떡볶이를 사주시던 날은, 유독 더 고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진통제가 없이는 기운을 차리기가 힘들었을, 그런 고된 날.



그 날도 그런 날이었을까. 떡볶이집을 가자셨다. 손자놈은 신이 나서 할머니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하필 손님이 왔다.


손님은 왕이었다. 생선 판매업이라는 서비스직에 종사하시는 할머니에게, 손님은 더욱 왕이었다. 할머니는 황급히 전대에서 천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원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 손자놈 손에 쥐어주셨다. 가서 떡볶이 천원어치와 하드 하나를 사먹으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가 있는 가게를 뒤로 하고 어린 꼬마는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허리를 숙이고 손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생선을 맨 손으로 잡으려 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아랫배쯤에 위치한 전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전대는 생선물에 젖어 축축해져 있었다.



생선가게에서 불과 서른 걸음 쯤 떨어진 떡볶이집. 꼬마는 선뜻 떡볶이집에 들어서지 못했다. 손바닥을 펴 1,200원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할머니가 좋아한다는 걸. 그래서 때때로 꼬마는 일부러 더 맛들어지게 떡볶이를 먹기도 했었다. 보란 듯이.


할머니에게 떡볶이 먹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상황. 그렇지만 뭐라도 할머니를 웃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할머니를 돕는 길이라 생각했다.


"...떡볶이 200원 어치만 주세요!"


고민 끝에 꼬마가 말했다.



"어이구야 세상에. 누가 200원 어치를 판다니."


아줌마는 말과 달리, 벌써 떡볶이를 버무리고 있었다. 떡볶이를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크고 네모낳지만 그리 깊지는 않은 철판 안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이 열리는 붉은 빛깔의 고추장 양념이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떡볶이판에 담긴 떡볶이 소스는 팔팔 끓지 않았다. 주걱으로 양념을 휘저을 때마다 약간의 수증기가 은근히 새어나올 뿐이었다. 겉이 살짝 풀어진 채 양념을 잔뜩 머금은 떡은, 언뜻 봐도 한참을 버무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오래 졸여진 떡볶이를, 꼬마는 좋아했다.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빛바랜 멜라민 접시에 위생비닐이 씌워졌다. 그 위에 얹어지는 떡볶이 조금. 200원 어치다. 얇고 길다란 원통형의 떡이 예닐곱 개 쯤. 접시는 금방 비워졌다.



다음 행선지는 슈퍼였다. 그곳에는 꼬마가 즐겨먹던 2백 원짜리 하드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아이스크림통에서 꺼낸 건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이었다. 이걸 위해 꼬마는 떡볶이 먹을 돈을 아낀 것이었다.


넉넉지 않았던 집안 사정 때문에, 꼬마는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을 수 없었다. 어쩌다 가끔 먹는 그 맛은, 2백 원짜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부드러움이었다.


하지만 어린 손자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다. 대신, 생선가게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그걸 내밀었다. 자신의 입에 맛있으니까, 할머니 입에도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부끄러워서 차마 또박또박 말하지는 못했지만, 작은 소리로나마 분명히 말했다.


"선물이에요."


꼬마는 천 원을 그렇게 썼다. 할머니는 소리 내어 웃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영천시장의 떡볶이집은 아직 성업중이다. 오히려 그 때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유명한 TV프로그램에도 몇 번인가 나왔다. 그렇지만 많은 것이 사라졌다. 2백 원 어치를 달라는 꼬마도 없고, 2백 원 어치를 파는 집도 없다. 이제 여기도 1인분에 3천 원이다. 그 밑으로는 팔지 않는다.


그러나 손자를 사랑하시던 할머니는 아직도 여전하시다. 행복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함께 그 날의 기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당신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새벽에 도매시장에 갈 이유도, 그럴 기력도 없으시지만 말이다.


지금도 우리 할머니가 시장에 마실을 가셨다하면, 여지 없이 손자에게 전화를 거신다. 전화를 받으면, 질문도 여지 없다.


"강아지야, 할머니가 떡볶이 사갈꺼나?"


왠지 할머니에게 응석을 피우고 싶은 날이다.

이전 24화 토사물을 먹어야 했던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