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이 아니었다. 공무원이 박봉이란 건 뻔히 아는 사실이었다. 안정성 때문도 아니었다. 매년 의무적으로 몇 퍼센트의 공무원을 자른다는 공무원 퇴출제가 논의되던 시절이었다. 권력 때문도 아니었고, 출세 때문도 아니었다. 그럴 거였으면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을 거다.
단순했다.
'이건 아닌데' 싶은 것들이 좀 줄어들길 바랐다.
그게 다였다.
참 많았다. 이건 아닌데 싶은 것들이.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야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열망이 뜨거웠던 젊은 시절.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그 기여가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무원을 꿈꿨다. 우리 사회 모두에게 걸쳐있는 것이 제도였으니까. 정책이었으니까. 그게 행정이었으니까.
모든 직업이 다 그런 것일까. 모든 사람은 미래의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알지도 못한 채 직업을 고르게 되는 걸까. 공무원의 삶은, 지난 수험생활 5년 동안 그렸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재량은 없었다. 방향은 이미 저 높은 곳에서 정해져 내려왔다. 유일한 재량은 도구 선택에 있어서의 재량이었다. 이미 정해진 방향을 어떤 도구로써 실현시킬 것인지에 대한 재량이었다.
보람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에 대한 여론은 놀랄 만큼 부정적이었다. 노력해서 내놓은 정책은 가짜뉴스로 호도되었고, 탁상공론으로 매도되었다. 오해를 풀기 위한 설명은 변명으로 치부되었고,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한다며, 불통이라며 비난받았다. 지친다고 쉴 수도 없었다. 철밥통이라며, 복지부동이라며 욕 먹을 테니까.
일에는 의미가 없었다. 무수한 업무들은 무의미한 공회전이었다. 쓸모 없는 보고서를 써야했다. 매일 수 십 장, 수 백 장씩 갈려나가는 A4용지들을 보며 '미안해 나무야'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특정한 시즌에는, 이유 없는 대기가 새벽에도 이어졌다. 마치 주연배우의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엑스트라의 대기시간 같았다.
그간 꿈꿨던 모습은 없었다.
실제 공무원의 삶에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있었다. 일, 야근이었다.
과로사(過勞死)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 했었다. 육체노동이라면 말이 된다. 체력이 다 하도록 몸을 쓰면, 사람이 죽을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노동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일을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싶었다.
공무원으로 일한 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아서, 과로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꼬박 백 일 가량.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서 단 하루도 쉬지 못 했다. 처음으로 명절 차례상 차림을 돕지 못했고, 어머니 생신날 얼굴을 뵙지도 못 했다. 새벽 다섯 시면 일이 시작되었고, 다음 날 새벽 두 세시 경에 일이 끝났다.
말그대로 지옥 같은 백 일. 힘이 들었다. 이러다가 지쳐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게 과로사구나 싶었다.
몇 달을 주기로, 이 깨달음을 중복해서 느낄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게다가 이 불행한 깨달음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럿이 떠났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기 중 하나는.
차라리 수험생 시절이 더 정의로웠다. 더 나은 사회라는 꿈이라도 있었다. 소망이라도 있었다. 그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라도 있었다.
이제는 완벽한 소시민이다. 꿈과 소망과 노력을 소실했다.
그러자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당초 가졌던 삶의 방향을 잃어버릴수록, 거꾸로 강해지는 것이 있었다. 작은 행복. 이른바 소확행에 대한 욕구였다.
일상이 힘들수록, 작은 행복의 쾌락은 짙게 느껴졌다. 달큰했다. 어쩌다 제 때 하는 퇴근, 싸구려 스피커를 찢고 나오는 랩, 멍 때리며 봐도 웃을 수 있는 원초적 예능. 그리고 대형마트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천 원 짜리 탄산수가 그러했다.
별 거 아니다. 그냥 물이다. 기포가 좀 날 뿐이다.
별다른 맛은 없다. 무미다. 향도 없다. 무취다. 빛깔도 없다. 무색이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기포가, 평범한 물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모든 경우에, 우리는 물과 함께 한다. 회사를 가기 위해 물로써 스스로를 정돈하고, 점심시간에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물이 포함된 식단을 소화한다. 근무하는 중간에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항상 물기를 머금고 있는 화장실이라는 장소로 향한다. 물은 우리의 일상이다.
탄산수는 일상의 변주다.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다.
무미, 무취, 무색의 액체. 물을 빼어닮은 이 음료수는, 우리의 날숨, 이산화탄소를 담는 것만으로 물로부터의 탈피에 성공하였다.
먹을 거리를 사러 대형마트에 가면 꼭 생수 코너를 들른다. 그리고는 커다란 초정탄산수 페트병을 몇 개 장바구니에 담는다. 플라스틱 장바구니 손잡이를 타고 탄산수의 무게가 전해진다. 그 묵직함이 행복하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500ml 탄산수는 보통 2+1 행사를 한다. 대개 한 병 가격이 1600원이니까, 행사를 생각하면 세 병에 3200원. 1.5리터에 3200원인 셈이다.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초정탄산수는 1.5리터에 딱 1천원이다. 가격이 3할 정도에 불과하다. 동네 마트에서는 또 이 가격이 아니다. 2천원도 더 받는다. 인터넷 최저가도 대형마트보다 비싸다. 꽤나 여러 탄산수를 찾아봤지만, 대형마트에서의 1.5리터 초정탄산수만큼 가성비 좋은 건 없었다.
행복하다. 묵직할 수록 행복하다. 어서 집에 가서 내 입에 맞는 요리를 하나 해서, 초정탄산수 한 병과 먹는 상상을 한다.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예능을 하나 틀어놓고. 마치 혼술을 하듯.
덕분에 장을 보다가 배시시 웃는다. 초정 탄산수를 장바구니에 담으면.
간혹 흠칫할 때도 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작은 행복에 집착하게 되었나,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놀람은 그리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당장 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함이 너무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천 일 정도 됐다. 천 원 짜리 탄산수로 행복함을 느낀 지 말이다. 본래 갖고 있었던 뜻을 잃고, 작은 행복에 목 맨 지 말이다.
그 행복은 불행하다.
불행한 회사 생활로부터 시작된 행복이고,
불행한 회사 생활을 잇게해주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새벽 두 시다.
이제 어서 글을 마치고 자야한다.
다시 불행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탄산수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라며 글을 닫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 언제부터 탄산수를 좋아했지? 맹맹한 사이다라며 꺼리지 않았던가? 싫어하지 않았던가?
맞다. 잊고 있었다. 애초부터 탄산수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여느 탄산음료와 달리 조금의 단맛도 나지 않는 이 음료수가 어색했었다. 탄산수를 마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었다.
공무원이 된 지 반 년. 우습게도 탄산수를 좋아하게 된 건, 휴일 없이 일하던 그 백 일의 때였다.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오후. 얄쌍한 초록빛 페트병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요새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단다. 동료의 선물이었다. 작은 탄산수였다.
고마웠다. 비록 탄산수를 즐겨 마시지는 않았었지만, 그 마음으로 충분했다. 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탄산수를 들이켰다.
단맛 없는 맛은 여전했다. 게다가 시원한 맛도 없었다. 한참 전에 사다둔 것이었는지, 냉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미지근했다.
그러나 의외였다. 새로웠다. 탄산수는 새로운 맛이었다. 물이라는 놈을 보기 좋기 비틀어버린 듯한 쾌감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회사생활 탓이었을 거다. 밋밋하지 않을 틈도 없이 숨가삐 굴러가던 일상. 그 속에서 일상이 아닌 음료수를 맛보았으니, 혀 끝에 느껴지는 탄산은 과거에 맛봤던 그 탄산과 또다른 의미를 가졌을 거다.
그렇게 탄산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회사생활 탓에.
그러나 회사동료 덕에.
힘들고 고되다. 모두가 그렇다. 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의 노동으로 이어가야 하는 처지. 두 손에 들린 목숨의 무게는 어린 시절에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다.
때로는 버겁다. 삶이 이어지며, 우리에게 얹어지는 무게는 더해만 간다. 내 목숨 하나 잇기도 가쁜데, 자식의 무게가 더해지고, 늙은 부모의 무게가 더해진다.
그러니까
당연한 일이다.
커다란 꿈이 치워지고, 탄산수 같은 작은 행복이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어쩌면 철이 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