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나무 밑둥처럼 살짝 넙적한 원기둥 위에 정육면체 큐브들이 어슷하게 얹어져 있다. 어느 미술관 앞에 설치된 조형물이 생각나는 모습. 먹거리 치고 꽤나 예쁜 꼴이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버지가 사오신 크리스마스 케이크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었다. 생각은 나보다 깊었고, 아는 건 나보다 많았다. 무언가 새로운 걸 알게 되어 신기해하며 아버지께 얘기를 했을 때, 그걸 모르고 계셨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내게 신앙이었다. 어렸을 적 이야기다.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바뀐 입장이 더 일상적이다. 내게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가 아버지에게는 새롭다. 신기해하며 내게 말씀하신다. 저걸 이제야 아셨구나. 하는 생각들이 든다. 이제야 아시기는 커녕 아직 모르시는 것들도 많다. 아버지는 전지하지 않다. 전능하지 않다. 더 이상 신앙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감히 헤아리지 못하는 게 있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걸 해본 기억은 없었다. 우리집에서 크리스마스는 그냥 서양 풍습이었다. 우리집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케익을 사들고 오셨던 그 날의 모습이 말이다.
"와, 어쩌다가 크리스마스 케익을 다 사오셨대요."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에 신이 난 동생이 물었다.
"조형미가 예뻐서."
엉뚱했다. 예상 가능한 대답은 아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이 케이크가 보이는데 너무 예쁜거야. 그래서 사왔어."
아버지는 이 케이크를 처음 보셨던 거다.
"예쁘지 않니?"
아버지는 본인이 느꼈던 그 아름다움이 가족들에게 공유되기를 원하셨다.
나는 이미 봤던 케이크였다. 평소에도 예쁘다고 생각했던 케이크였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사오신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스티로폴 박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그다지 큰 미적 감흥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던 거였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아버지가 몰랐다는 사실이 아니였다. 비록 케이크에서 새로운 조형미를 느끼지는 못했으되, 아름답다는 이유로 케이크를 사오신 아버지에게서는 큰 울림을 받았다. 알고 모르고는 참으로 작디 작은 문제였다.
조형미. 아버지에겐 정말 그게 전부였을 거다. 예뻐서 사오셨을 거다. 나아가 본인이 느낀 아름다움을 우리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을 거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았을 때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심미적 즐거움. 아버지께서는 그걸 느끼시고는 우리가 생각나신 게다.
본인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 그것을 공유해주고 싶었던 사람. 내면의 즐거움을 느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 그게 아버지께는 우리 가족이었던 거다. 아들이었고, 딸이었고, 마누라였던 거다.
아버지에게는 당연했던 그 사실이 다시 나의 눈으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통해서.
LADY, HAPPINESS, PEACE.
부인과 딸과 아들이다.
아버지 휴대폰 속 우리의 이름이다.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들이 본인의 이름을 잃었던 시절. 누구누구엄마- 라며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아버지는 결코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지 않으셨다. 이름 두 글자. 그리고 그 뒤에 붙는 존칭, 씨.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이름을 잃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계속 여인이다. 그래서 LADY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당신의 딸을 본 순간, 깊숙한 곳에서부터 행복감이 차오르셨단다. 그렇게 행복하실 수 없었더랬다. 이전에도 미처 경험하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그 때만한 행복을 못 느껴보셨더랬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딸과 행복은 동의어다. 딸은 HAPPINESS다.
평화다. 핏기도 채 가시지 않은 생후 0일의 아들과 만났을 때, 지구가 떠오르셨단다. 그리고 우주가 떠오르셨단다. 우주의 웅장함, 지구의 고요함. 그 속에서 멈춘 시간. 평화. 일렁이던 마음은 차분해지고, 붕 떠있던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진중하게 자리를 잡았단다. 그 찰나는 평화였다. PEACE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우리는 여인이고 행복이고 평화다.
그깟 앎이 아버지보다 나을지언정, 나를 평화로 여기는 사람의 속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아버지가 한 없이 깊은 이유다.
이제 크리스마스다. 일 년이 또 지나갔다.
크리스마스는 각자에게 의미가 다른 기념일이다. 누군가는 연인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믿는 신을 생각한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렇다. 캐럴도, 트리도, 산타클로스도 아니다. 그저 아이스크림 케익이다. 아버지가 사오신 아이스크림 케익이다. 찰나의 작은 심미적 행복조차 우리와 나누고 싶어하셨던 아버지의 날이다.
어느새 아버지의 곁을 떠나 독립해서 살고 있는 나지만, 마음은 아직도 오롯이 독립하지 못 했다. 인생에 큰 고민이 생겼다치면, 여지 없이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 앞에서는 생각이 얕은 미생이 된다. 아버지는 그렇게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