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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뵙지 않고도 합격이라고요?

동네학원강사의 두 번째 이직면접

by 김도현

학원강사 중 "영어"학원강사는 의외로 일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1. 영어유치원 강사/보조강사

2. 초·중등 어학원 강사

3. 중·고등 입시학원 강사

4. 시험대비 (공무원시험/대학편입시험) 성인대상 학원강사

5. 공인영어인증시험 (토익/토플/토익스피킹/오픽) 성인대상 학원강사

6. 영어회화 학원강사

7. 회사에 출강나가는 성인대상 학원강사

8. 대안학교/방과후학교 강사


학교에서는 한 과목으로 배웠던 "영어"가 의외로 정말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영어로 게임을 잘 하는지, 영어 문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지,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내용을 쪽집게처럼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유창하게 영어를 말할 수 있는지, 원어민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지. 본인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대학생 시절 내내 공립학교 교사를 꿈꾸다, 졸업 후 3년 반 동안 학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시험대비 위주로 강의식 수업을 했다. 이제는 회화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화에서 잠시 나왔듯, 영어유치원에 지원했지만 처참히 좌절했고 이번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토익스피킹/OPIC 시험대비 어학원에 지원해보았다.


사실 지원했다기보다는, 사람인 웹사이트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다른 직종은 모르겠지만, 학원업계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먼저 면접 제의를 받을 때는 의심하게 되거나 혹은 그저 무관심하게 되는 것 같다. 1년 내내 공고를 올리고 있는 학원들이 주로 면접 제의를 하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뽑을 생각이 없거나, 기꺼이 그 곳에서 근무할 사람이 없는 학원들...

하지만 이직면접을 딱 1번 해봤던 나는 별 생각 없이 경험이라 생각하고 면접에 갔다.


면접 10분 전쯤 도착해서 학원에 들어갔다. 학원의 문의나 상담을 맡으시는 상담선생님께서 안내데스크에 앉아 계시다 인사를 해주셨다. 면접 시간이 되자, 상담선생님께서 면접장소로 안내해주셨다. 그리고는 그 "상담선생님"이 면접을 진행하기 시작하셨다.


"지역을 옮기신 이유가 있나요? 여기 오시는데 멀지 않으셨나요? ... 영어 말하기 수준은 어느 정도 되시나요? 어떤 수준의 수업까지 맡으실 수 있나요? ... 프리랜서로 근무하실 예정인데 어느 시간대에 일하고 싶으신가요?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10~20분 정도 질문과 대답을 이어나갔다. 내 대답은 나의 이력서 빈 공간에 열심히 적고 계셨다. 그리고는, 물어보셨다.


"OPIC (영어 말하기 시험 중 하나) 질문 하나를 드릴 건데, 영어로 대답해주시겠어요? 원장님께 녹음파일을 보내드릴 수 있게, 답변을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면접이 끝났다. 약 20분? 아마 이력서에 적힌 나의 답변과 1분 남짓한 녹음파일이 원장님께 전달되려나?

며칠 뒤 면접해주신 상담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합격이라고.

원장님은 1분이 채 되지 않을, 녹음된 영어 답변을 듣고 같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구나.


물론, 회사 면접에서 인사 담당자가 면접을 본다. 회장님, 사장님 다 보면서 면접을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내데스크 선생님이 면접을 봐주시고 내 답변을 녹음해서 원장님이 들어보시고 원장님을 뵙지 않고 합격/불합격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왜 이럴까?


면접은 면접관이 면접자를 파악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면접자가 학원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학원은 주로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일하는, 원장님의 철학과 생각이 학원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아주 작은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학원 강사로서 구직할 때 연봉이나 근무조건만큼 중요한 건 원장님과 학원의 분위기인 것 같다. 그에 맞춰 동료 선생님의 분위기, 수업 분위기, 학생과의 관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뭘 보고 이 학원에서 근무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 때부터 서서히 마음 안에서 불안과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면접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상하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걸까?

그런데 이렇게 따지다가 이직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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