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위한 마케팅119 (06)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짧은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지금부터 묻는 제시어에 떠오르는 브랜드만 2~3개 빠르게 대답하면 된다. 주의사항은 단 하나! 절대 깊게 생각하면 된다. 그냥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브랜드를 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예) ‘TV’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답) 삼성전자, LG전자, 기타 TV
자! 이 정도 했으면 모두 알거라 믿으며 바로 퀴즈에 들어가겠다. 참고로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선물은 이 강의가 전부다.
Q1) ‘자동차’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Q2) ‘노트북’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각자 어떤 브랜드가 생각하는가? 먼저 말했듯이 절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아마도 ‘자동차’라고 물었을 때는 현대, 기아 등 국산차를 비롯해, 해외 BMW, 벤츠, 중국의 BYD까지 자유롭게 떠올렸을 거다. 그게 아닌 다른 브랜드여도 괜찮다.
마찬가지로 ‘노트북’에 대해서도 에이서, HP, 애플(맥북), 삼성 등 여러 가지 나올 것이다. 그 또한 괜찮다.
각자 답을 냈으면 이제 거꾸로 질문을 해볼 차례다. 혹시 각 질문에 대해 3개 이상의 브랜드를 떠올린 사람이 있었는가?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한 다음에 3, 4개를 떠올린 게 아니라, 묻자마자 3개 이상의 브랜드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기억력이 탁월하거나 ‘타고난 마케터’다. 아쉽게도 이 문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아마 대부분 1~2개, 많으면 3개 정도를 떠올렸을 것이다. 간혹 강의실에서는 1개를 떠올리기도 버거워하는 분들을 보기도 했다. 맞다. 브랜드에 도대체 관심이 없거나, 가격이나 디자인, 프로모션 등 제품 외적인 요소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퀴즈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무의식중에 선호하는 브랜드 조사를 했을 거라고 ‘추정’하고, 다른 이는 사실 인간이 몇 개나 기억할 수 있는지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게 본 목적이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 퀴즈의 목적은 바로 여러분이 떠올리는 브랜드, 그 자체에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맞다. 특정 카테고리를 – 자동차이든, 신문이든, 노트북이든 – 물었을 때, 여러분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무의식중에 대답하는 브랜드가 바로 평소에 여러분이 그 카테고리에 대해 우선적으로 인식하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시처럼 ‘TV’라는 카테고리에 삼성과 LG를 떠올렸다면, 평소 TV 분야에서 LG와 삼성이 당신 마음에 자리 잡은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자동차와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다른 분야로 카테고리를 바꿔도 이렇게 무의식중에 떠올리는 브랜드가 바로 여러분이 그 분야에서 가장 ‘잘 기억하는’ 브랜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먼저 떠올리긴 해도 그 브랜드를 좋아하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순위가 인지도는 물론, 선호도 순위와도 비슷할 것이다.
바로 이처럼 특정 제품 분야에서 떠올리는 브랜드의 순서를 가리켜, ‘인식의 사다리’라고 한다. 마치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사다리처럼, 카테고리별로 1위부터 n위까지 소비자는 순서를 매겨 기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니 퀴즈 하나 더! 그렇다면 소비자는 각 카테고리 별로 몇 개나 되는 브랜드를 기억할까? 그 답은 벌써 위에 나와 있다. 퀴즈를 시작하기 전, 분명히 대부분의 사람은 3개 내의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라 했다.
맞다. 사람들은, 아니 소비자들은 2개 이상의 브랜드를 기억하기에 힘들어한다. 물론 ‘이성적 사고’로 더 ‘싸고도 좋은’ 제품을 사기 위해 서핑이나 아이쇼핑을 늘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작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순간까지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는 브랜드는 보통 단 2개, 때로는 단 하나일 때가 많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당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각 카테고리 별로 1~2위, 바람직하게는 단연코 1위를 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당신을 선택할 확률은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USP 메시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사다리냐고? 이런 인식의 격차가 바로 메시지로 판도를 뒤엎을 기초이기 때문이다.
인식의 사다리, 그에 대해 알아보자.
소비자가 한 카테고리 별로 잘해야 ‘2개’의 브랜드를 기억한다는 건 꽤나 실망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신규 제품을 출시할 카테고리에는 이미 ‘경쟁자’나 1위 업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
내가 출시하는 제품은 뭔가 기존 제품들과 다른 아예 새로운 것이라고? 기존 아이스크림이 차갑기만 한데, 나는 거기에 과일맛에 오밀조밀 예쁜 인형까지 추가해 아이들이 좋아할 거 같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정말 이렇게 명확한 차별화를 만들어냈다면 꽤나 기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아마도 그냥 ‘또 하나의 아이스크림’ 정도로 기억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소비자는 복잡한 걸 원치 않는다. 그냥 TV고 자동차고 노트북이다. 기존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 ‘무엇’이라면 그냥 예전 카테고리에서 ‘변주곡’ 정도로만 신제품을 이해한다.
그럼 시장에서 손이 가는 건? 여전히 그 카테고리에서 먼저 인식한 1~2위 업체의 브랜드다. 예를 들어, 당신이 BMW와 벤츠를 자동차 분야의 최고 선호 브랜드로 기억한다고 하자. 누군가 ‘BMW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가격은 저렴한’ 신차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자들은 당신의 제품을 ‘BMW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더 저렴한’ 제품으로 인식할까? 아니다. 그냥 ‘BMW 부류인데 가격만 더 싼’, 그래서 뭔가 성능도 의심스러운 브랜드로 인식할 확률이 더 높다. 당신의 제품은 아직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스타트업이 만든 듣도 보도 못한 신제품’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BMW나 벤츠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낸 ‘브랜드’의 신뢰를 이길 방법이 없다.
물론 당신 제품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당신 앞에는 아무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당신이 만들어낸 신제품은 이건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다들 고민해야 할 만큼 새롭다. 아무도 비슷한 제품이 없으며, 당신이 처음으로 개척한 시장의 리더이자 선두주자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그 이유는 앞서 이 신제품을 설명한 내용에 이미 들어있다. 아무도 당신이 새로 출시한 제품에 대해 모른다. 그 기능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앉아서 한참을 고민해야 그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소비자는 그렇게 한 제품에 대해 ‘고민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도 자신의 스케줄과 할 일이 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소비자에게 당신 제품을 살 이유를 줘야 하는 건 바로 당신이지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에 없었던 제품’이란 말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어 제왕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이처럼 자신만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초기 시장 형성이 어렵다는 말도 된다. 이런 새 시장과 기능을 설명하려면 막대한 커뮤니케이션 비용과 시간이 든다. 획기적인 마케팅 방법이 없고서는 작은 스타트업이 감당하기 전에 쓰러질 만한 비용과 시간이 들 수도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내가 완전한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차라리 관련 시장이 형성되기를 기다려 – 새로운 시장에 대한 니즈가 성숙되는 걸 기다려서 – 비슷한 제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시장에 들어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만큼 초기 시장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분야 개척자’로서의 지위는 포기하는 것이며, 아직 리소스가 충분하지 않은 스타트업 입장에선 이 방법 또한 고려해볼 만한 전략이다. 초기 비용 대신 차라리 제품을 디버깅하거나 테스트하는 기간을 오히려 늘리면서 말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부분의 경우처럼 이미 경쟁자가 있는 시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가 있는데도 새로운 차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국내 기업 현대와 기아, 과거 쌍용이 차를 만들던 당시 이미 세계에는 우수한 자동차 브랜드가 많고도 많았다.
반도체 분야는 또 어떤가? 과거, 삼성과 LG, 현대가 반도체를 만들던 당시, 이미 미국과 일본, 독일에는 굴지의 거대 반도체기업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삼성과 현대(매각 과정을 거쳐 현재 하이닉스)는 지속적으로 뛰어들었고, 세계 1~2위를 여러 번 해냈으며, 마침내 제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우리는 어떻게 선두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런 ‘후발주자’로서의 시장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앞선 선두주자를 이길 것인가? 아울러, 나만의 ‘고유 시장’을 형성할 것인가?
답은 위에 제시한 2가지 사례에 이미 있다. 이에 대해, 인식의 사다리와 결부해서 해결방안을 이어서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