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8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특별할 것 없는 내가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한 이유

by 푸르른도로시 Feb 14. 2025


 한국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초저출산 국가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든 업무량과 제도의 문제, 미세먼지 등의 환경 문제, 경쟁이 과열된 사회 분위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를 가지기가 두려웠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평범함'에 있었다.     



 평범하다는 건 무엇일까? 각자의 기준이 다를 테니 쉽게 정의 내리긴 어렵다. 사전상으로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는 의미다. 하지만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다'는 개념조차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평범하다'라고 여긴다. 지나치게 자아가 비대하거나 반대로 형편없이 쪼그라든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구의 상당수가 인생의 반 이상을 자신이 평범하고, 남들도 평범하며 지나가는 차도, 나무도, 아파트도 모두 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매일 보는 나, 매일 보는 이웃, 매일 보는 직장동료, 매일 보는 나무와 매일 지나치는 건물들이 매번 특별해 보인다면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경이롭긴 하겠지만 정보 과잉으로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고로, 우리는 온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매일 빛나는 눈으로 살아가는 어린아이에서 도파민이 홍수처럼 터질만한 일이 아니라면 그 무엇에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동태 눈깔 어른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생명체가 아닌 지방대 졸업에 특별히 예쁠 것도 못날 것도 없는 얼굴에 무직 백수에 내세울 재주 하나 없는 평범하다 못해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잉여 인간'으로서 자신을 판정 짓게 되었다.     




 잉여 인간인 내게 아이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어야 했다. 일부 어르신-아이 낳은 여자들에게 애국자라며 치켜세워주는(?)-들을 빼고는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아이를 낳고 죄인이 되지 않는 기준'은 이러했다.     







1. 아이가 원하는 공부를 시키고, 좋아하는 음식을 충분히 먹이며 아이가 무엇하나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 결핍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돈을 잘 벌 것. 혹은 적어도 아이 뒤를 걱정 없이 밀어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것.


2. 아이에게 부정적인 정서를 물려주지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잘 통제하는 성숙한 어른일 것.-아이에게 미치는 부모(분명 아이는 둘이 만들었는데 아이 양육에 관한 모든 관심과 비난은 엄마한테만 몰리는 경향이 있다)의 영향은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지대하니까!-


3. 아이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북돋아 줄 좋은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울 것-무엇이 좋은 환경일까. 학군이 좋은 것? 공기가 좋은 것? 다 갖춰지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둘이 양립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3번이야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제쳐 두고, 1번과 2번 모두 내게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지도 않았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만약 아이가 나나 남편을 닮아서 예술에 재능이 있다고 하면, 그래서 혹시라도 피아니스트나 전문 가야금 연주자처럼 돈이 많이 드는 꿈을 가진다면 나는 도저히 아이를 지원해 줄 자신이 없다. 만약 아이가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의 꿈을 품게 된다면 우리는 가진 걸 다 팔고 반지하 셋방에 들어앉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 조부모님의 등골까지 쪽쪽 빨아먹어야 하겠지. 그러고도 위태로울 형편인 거다.     





 흔히 부모가 되면 성숙해진다고들 한다. 지난 6개월의 임신 기간을 돌아보면, 아직 아기를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자궁 안에 품어본 것만으로도 인간적으로 나아진 면모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날마다 흔들리는 인간이다. 그뿐일까. 매시간 매분, 매초 마다 시시각각 다른 감정에 휘말릴 때도 많다. 때로는 호르몬에 놀아나고, 때로는 오래된 습관이나 집착에 매몰되어 이성을 잃기도 한다. 나는 결코 인간적으로 성숙한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부자도, 정신적으로 잘 성숙한 것도 아닌 나에게는 엄마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아이를 갖기로 하고, 임신한 것일까.



솔직히 터놓자면, 종족 번식에 대한 동물적인 욕구가 컸다.

자식을 낳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이왕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으니 그 사람과 나를 반반씩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를 온갖 위험과 아이에게 최고의 부모가 되지 못할지도 모를 나의 평범함을 잠시 잊게 했고,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로 인해 내 배 속의 아이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는, 모험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고, 낳고, 기르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예측할 수가 없다. 태생적으로 불안이 높은 내게는 너무나도 위험부담이 큰일이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배우자에 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다.   



  

아이를 품고부터 매일 느낀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지극히 별것 아닌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는 걸. 길가에 핀 풀 한 포기는 그저 밟아버리면 그만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나올 정도의 힘을 지닌 생명의 정수이다. 안정적인 직장, 특출한 외모, 넘치는 부, 성숙한 인간미 무엇 하나 갖추지 않은 나 역시 길가의 풀 한 포기만큼이나 특별하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나는 이 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할 것이다. 방법론은 차차 익혀가더라도 한 생명을 사랑할 준비만큼은 충분히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이전글 뇌가 고장 난 우울증 환자의 뜬금없는 에피파니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