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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고위험군, 그리고 양수검사(2)

- 생명의 탄생, 그 무지개 세상과 눈물의 언덕

by 푸르른도로시 Mar 04. 2025



 내가 간 병원은 니프티, 양수 검사 등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 아담한 크기의 병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나무가 뿌리내린 화분에 달린 띠 종이에 적힌 감사의 문장과 데스크에 놓인 명패(검사 ***회 시행)에서 이 병원의 의사가 얼마나 해당 분야의 베테랑인지를 알 수 있었다. 


목이 말랐는지 함께 간 짝꿍이 커피를 사러 갔다가 내 몫의 초콜릿우유를 내밀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받기만 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혹시나 단 음료를 먹고 아기가 움직여서 주사 바늘을 찔러 넣다 사고라도 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왔다. 약간 긴장한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자 진한 대문자 T의 느낌을 풍기는 중년의 남자 의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는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고,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질문 타임도 꼬박꼬박 주었다. 





"1, 2차 기형아 통합 검사에서 보는 항목은 '엄마의 나이, 여기 보이는 다섯 가지 호르몬 수치 그리고 초음파 소견입니다." 



모니터 화면에 뜬 그래프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호르몬은 태반에서 나오며, 임신하면 누구나 몸속에 그 호르몬이 있는데 사람마다 농도가 다르다고 했다. 나의 경우 호르몬 수치들 중 두 가지가 튀는데,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게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정상 분포도에서 높은 건지, 다운이라서 높은 건지, 정상에서 낮은 건지 다운이라서 낮은 건지 알 수 없고, 고위험군이 뜬 것에는 이 수치들이 일조했을 것이라 하였다. 



 양수 검사를 시작하게 전에 몇 가지 과정들이 있었다. 우리는 니프티를 할 것인지 양수 검사를 할 것인지, 그리고 양수 검사와 더불어 미세결실검사를 추가할 것인지를 결정해서 병원 측에 알려야 했다. 잠깐의 의논 끝에 미세결실 검사는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그 정도까지 세세히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검사를 할 것인지 데스크에 의견을 전달한 후 필요한 서류에 사인을 하고 곧 검사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짝꿍 없이 나 혼자였다. 




먼저 초음파를 보고, 검사실 침대로 이동하여 누웠다. 배에 소독약을 도포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배려일 테지. 배에 긴 주사를 찔러 넣는다니,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무서웠다. 아플까? 아프다면 얼마나 아플까? 의사에게 여쭤봤더니 "안 해봐서 몰라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하다는 듯 공기처럼 가볍게 대답하는 그의 태연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침대 옆 초음파 화면으로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 꿈틀대지만 대체로 얌전했고, 손가락 다섯 개를 보란 듯이 쫙 펼치고 있었다. "여기 손가락 다섯 개가 아주 선명하게 보이네." "여기다가 하면 되겠다." 주사 바늘을 넣을 장소를 찾은 의사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양수를 채취하는 시간은 체감상 2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별다른 고통은 없었다. "주사 바늘 들어갑니다." 하는 말과 함께 채취가 시작되었고, 약간 따끔하는 느낌이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독감 주사가 훨씬 아픈 느낌이었다. 










 검사가 끝난 후, 회복실에 누워 짝꿍과 함께 수다를 잠깐 떨다가 91만 원가량의 검사 비용을 지불한 후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마스이브.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볼까 싶어 손바닥만한 주제에 4만원이 넘는 딸기 케이크를 샀다. 지난 일주일 간 머릿속을 맴돌았던 온갖 생각들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던 나날들은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다고 해서 바로 눈 녹듯 사라지진 않았다(무슨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주삿바늘이 들어간 곳 조금 옆에서 꼼지락대며 움직이던 아기의 모습과 아기가 쭉 펼쳐 보여주던 선명한 다섯 손가락이 케이크를 입 안에 밀어 넣는 동안에도 눈앞에 생생했다.


 








 내 아기가 만에 하나라도 아프거나 영구적인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일부러 생각하기에는 힘든 일이었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했다. 밖에 나가면 언제든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어느날은 초록불이 뜬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도 사고를 당할 수 있고, 누구나 심장마비에, 누구나 묻지 마 살인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평소에 그런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괜찮을 거야', '우리 가족은 괜찮을 거야.' 하는 무의식적인 믿음 없이 멀쩡히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우리 아기가 아플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 취향대로 꽃무늬 옷을 입혀야지, 너무 개구쟁이라서 에너지를 감당하기 힘들면 합기도 학원을 보내야겠다.'이런 따위의 공상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검사 예약일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나는 뱃속에서부터 아픈 아이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검진 때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태어나보니 심각한 병이 있다던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영구적인 장애를 입는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은 저마다 자책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은 아이를 많이 사랑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 아이를 낳아 키울 테니 검사를 하지 않겠다며 다운 고위험군이라는 말을 듣고도 니프티나 양수 검사를 하지 않는 부모도 있었다.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었다. 나는 아픈 아이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아픈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는 엄마였다. 그래서 선별 검사가 아닌 진단 검사를 선택했다. 확실히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아이가 펼쳤던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내 심장을 아프게 조이는 듯했다. 



"약한 엄마라서 미안해. 엄마가 너를 믿지 못해서 미안해." 



잠 못 드는 밤마다 아이에게 사죄를 했다. 나에게 너를 낳아서 기를 자격이 있을까. 어떤 아이가 태어나도 사랑하며 키울 자신도 없는 내게 너는 어쩌면 너무 과분한 존재가 아닐까. 천 번, 만 번을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내가 감히 너라는 세상을 품에 안아도 되는 걸까. 










 크리스마스 다음날, 최종 결과가 나왔다. 1차 결과는 정상. 2주를 더 기다려 받은 최종 결과에서도 역시 정상 소견이 나왔다. 크게 기쁜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구나.' 할 따름이었다. 마음이 푹 놓이지도 않았다. 다만 펑펑 울 일이 생기지 않았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이가 적어도 검사를 진행한 항목 안에서는 건강하구나, 그렇구나. 



결과를 듣고 난 후에 상당 기간 몸이 아팠던 것 같다. 너는 매사에 뭘 그리 복잡하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다. 어릴 적부터 사소한 것 하나도 남들보다 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던 지라, 이번 일도 그저 '결과가 잘 나왔으니 다행이다.'하고 넘어가지지 않았다. 생명의 수정과 탄생이라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무지개 빛 스펙트럼 그 어딘가에 피 비린내 나는 고통과 눈물의 언덕이 있었다. 새로운 생명과 그를 품고 키우는 일은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귀한 일임과 동시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무작정 던져지는 일이었다. 위험 회피 성향이 극도로 높은 내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세계는 위험 요소가 가득한 가시밭길처럼 보였다. 그동안 보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한 번 보이기 시작하자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었다.




 


믿음. 믿고 턱 하니 맡겨 버리는 것. 

그것을 못해서 수영장에 가면 물에 뜨지 못하고 가라앉곤 했다. 

엄마가 되려는 나는 이제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뜨는 법을 익혀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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