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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시언니 Nov 08. 2019

잠깐 숨 좀 쉴게요.

두시에는 좀 자요. 오빠.(3)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오빠의 집이에요. 아......




아 집 안 가득 아득한 추억의 냄새. 맥주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 때 확 풍기는 쉰 김치와 오래된 음식 냄새. 빨지 않은 옷, 널지 못한 옷. 이것저것 다 어우러져 만들어 낸 오빠 냄새.
그리고 나를 꼭 안은 그대. 그리웠던 그대의 품 안에서 더 짙어지는 냄새...


급했던지 저를 잠시 때어놓고 오빠는 화장실을 가네요. 그럼 저는 잠깐 숨 좀 쉴게요.


근데요 오빠, 문 좀 닫아줄래요? 거실이 작아서 우리 지금 거의 화장실 앞에 앉아 있잖아요?

소리가 너무 거칠게 들려요. 그리고 오빠, 부탁이 있는데 손도 좀 닦고 나올라요.

아아 이런... 그 손을 어디다 대요? 저 도저히 안 되겠어요. 식은 맥주, 남은 맥주 제가 다 들이킬게요.












갑자기 오빠는 잠들었어요. 많이 고단 했나 봐요. 잘 모르시겠지만 오빠 코 고는 소리는 정말 굉장해요.


드르렁대는 콧구멍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 날이 떠올라요.

감기 걸려 훌쩍대는 오빠를 보고 제가 감기약 사갔었잖아요. 그건 제가 오빠의 기침, 가래, 콧물 그 모든 것을 동반한 전염성까지 다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어요.


근데 완두콩 색의 찐득한 콧물이 턱 보다 더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는 모습을 봤을 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죠.


하지만 결코 그것 때문에 오빠가 건넨 이별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아니었어요.









오랫동안 앓았어요. 술에 취해 오는 연락인 걸 알면 서도 거절할 수 없었어요. 자니?라는 문자에는 자다가도 일어났어요.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라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취한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어요. 이제 마음이 좀 나아요.


그만 갈게요. 잘 자요 오빠.










잠깐, 화장실만 좀 쓸게요. 근데... 변기 위에 저거 뭐예요?















글/그림 : 두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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