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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an 21. 2024

청록빛깔의 파라마운트 트레킹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부산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다니면서 한 가지 늘었던 건 바로 오르막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대구광역시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대구는 분지형태로 되어 있는 도시라 오르막이 잘 없다. 산도 팔공산 말고는 없어서 등산할 일도 잘 없는 그런 도시이다. 반면 부산은 온 사방이 산으로 점철된 도시이다.


부산을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정작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은 바다보다 산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내가 다닌 초, 중, 고 세 곳의 학교는 모두 언덕 위에 있거나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늘 등교할 때면 오르막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게 첫 번째 관문이다. 안 그래도 가기 싫은 학교를 오르막까지 올라가야 하니 오죽하랴..


학교만 오르막에 있으면 다행이다. 심지어 집도 산 꼭대기에 있어서 등교뿐만 아니라 하교 시에도 집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어릴 땐 아파트 입구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지나가는 차를 카풀해서 얻어 타고 올라갔다. 마을버스가 있지만 차비가 없어 늘 그렇게 남에 차를 얻어 타고 갔다.


옛날엔 지금과 달리 인심이 좋아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자주 태워주시곤 했다. 가끔씩 옆집 아줌마나 친구 부모님 또는 같은 라인에 사시는 이웃분을 만나면 흔쾌히 태워주셨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오르막과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해서 난 산을 싫어했다.



69 호수에서 모든 체력을 다 쓰고 난 후 앞으로 여행에서 등산이란 결코 없을 거라고 못 박아버리고 숙소에서 나가지 않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지냈다. 그렇게 이틀 정도를 요양하며 지내다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와라즈 시내를 구경하기도 하고, 같은 호스텔에 묵는 한국인 및 외국인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가도 했다. 하지만 무릇 여행이란 새로운 도전과 탐험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난... 굳게 내건 약속을 어기고 만다. 사실 자의로 어긴 건 아니고 타의로 어기게 되었다. 


당시엔 함께 동행했던 민혁이와 정갑이 형과 헤어지고 다른 동행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호와 은석이다. 수호와 은석이는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가끔 만나는 사이이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 이렇게 오래 이어지기도 하니 참 인연이란 신기하다.


수호와 은석이 이외에 다른 한국인 분들도 몇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었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 덕분에(?) 굳게 내걸었던 나와의 약속을 깨고 만 것이다.


이번에 파라마운트 트레킹을 하러 가기로 했는데 정~말 가기 싫었지만 굳~이 같이 가자고 하는 바람에 결국 트레킹 신청을 하게 되었다. 계속 거절을 하니 호스텔 직원이 이번 트레킹은 정~말 안 힘들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트레킹 자체는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이번에도 사건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정말 힘든 여정이 되었다..



이번에도 새벽 일찍 일어나 체비를 마친 후 봉고차를 타고 약 3시간 정도 달려 도착하게 되었다. 중간에 잠시 정차하여 아침도 먹고 산 위에서 먹을 점심거리도 함께 사갔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파라마운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덜 힘든 트레킹이었고, 무엇보다 뷰가 미쳤다...


이때만 해도 참 재미있게 사진 찍고 놀았지..


물 색이 저렇게 청록색인 이유는 바로 빙하가 녹아내려 흐른 물이라 그렇다고 한다. 태어나서 저렇게 청명한 청록색 물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신기하기만 했다. 69 호수에서도 봤지만 파라마운트는 웅장함이 더해 더욱 멋지게 다가왔다!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다. 함께 동행한 분이 카메라가 있어서 그걸로 많이 찍어서 이번엔 흔적을 조금 남길 수 있었다. 산이 거의 돌과 바위로 되어 있어서 걷는 건 힘들었지만 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올라왔기에 등반은 조금만 해도 멋진 뷰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여행객들은 가이드를 따라 조금 더 높이 올라갔지만 난 굳이 그러지 않고 중턱에 앉아 산을 구경하며 노래를 들었다. 나와 함께 남은 수지도 있었는데 사건은 여기서 벌어진다..


가이드와 떨어지게 되었지만 어차피 차로 돌아가려면 이 길로 내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아 그냥 차로 돌아가서 기다리기로 하여 수지와 같이 내려갔다. 그런데 분명히 많이 걷지 않아서 잘 찾아갈 줄 알았는데 길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올라올 땐 이 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꾸 길이 더 험해지기 시작했다.


올라올 땐 약 30분 정도 걸렸기에 15분만 하면 갈 줄 알았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 속으로 엄청 졸아있었다. 혼자가 아닌 수지가 있어서 어떻게든 이 아이를 차까지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길이 너무 험해서 넘어질까 자꾸 신경 쓰이기도 했고, 이 길이 제대로 가는 게 맞는지 몰라 불안했다.


이 사진은 솔직히 진짜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걷다가 드디어 차가 있는 곳을 도착하게 되었다. 진짜 죽을 뻔했다 ㅠㅠ 사람들은 이미 차로 돌아와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남 여 둘이 갑자기 사라지니 처음에는 둘이 어디 숨어서 이상한 짓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안 오니 슬슬 걱정하고 있던 찰나 우리가 도착한 것이다.


다행히 무사히 차로 돌아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수지는 힘들었는지 완전히 골아떨어졌다. 나 또한 이번엔 쉬울 거라 생각했던 트레킹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또 고생을 해서 이제는 정말 산은 타지 않겠다 굳게 맹세했다. 물론 이 다짐도 금세 깨지고 만다...




와라즈에서 약 일주일을 있으면서 총 세 번의 트레킹을 했다. 엄청 힘들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시간들이었다. 처음으로 빙하도 볼 수 있었고, 트레킹도 하면서 초록의 안데스 산맥을 누빌 수 있었다. 멋진 풍경과 대자연을 만끽했던 페루 와라즈였다. 그리고 한 달 넘게 함께 동행했던 정갑이 형과 민혁이와 헤어지고 새로운 동행을 얻게 되어 페루 여행은 다시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동안 지냈던 아킬포 호스텔을 떠나 이제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출발하게 된다. 나와 함께 동행하기로 한 수호는 다음날 리마로 오기로 했고, 난 수지와 함께 리마로 먼저 출발하게 된다.


리마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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