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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Feb 01. 2024

페루의 수도 리마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와라즈에서 리마까지는 7~8시간 정도 걸린다. 나와 수지는 오전 버스를 타고 와라즈를 떠나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8시간 버스 이동은 남미에선 그리 긴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고산에 있다 보니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고산병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괜찮았지만 수지가 조금 힘들어했다. 밥도 잘 먹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만 잤는데 옆에서 보기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수지는 대학을 휴학하고 여행을 떠나왔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복학을 해야 했고, 4학년이라 취업 준비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나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왔기에 한국을 돌아가면 취업 준비를 해야 되는 입장이라 서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대화가 잘 통했던 것 같다.


이렇게 여행은 모두가 각자의 고민과 걱정을 안고 떠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장기 여행에선 더더욱 말이다. 장시간 여행을 한다는 게 생각보다 선택하기 어렵다. 우리는 매일 루틴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루틴한 일상을 잠시 멈춰두고 완전히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도피라고 말하기도 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도망치는 것도 사실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길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중 여행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삶을 새롭게 바꿔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풀리지 않던 삶의 고민과 걱정들을 여행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한 때는 욜로라는 것이 유행하여 퇴사하고 여행 가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졌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여행으로 해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는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꼭 다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행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기에 그 문제를 대면할 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길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사실은 여행이라는 수단을 통해 삶을 변화해 보고자 시도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있지도 않았기에 쫓기듯 취업하긴 싫었다.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그 수단으로 여행을 택했지만 사실 여행으로 찾아지지 않는다는 걸 다녀오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시간만큼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냈고 또 행복했던 시기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은 여행대로 즐기고 내가 해결해야 될 문제들은 그것대로 해결해 나가면 된다. 생각보다 인생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리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6시 정도였다. 리마에 도착하기 전에 상태가 호전된 수지는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리마에 한식당이 많다며 도착하면 한식부터 먹자고 했다. 그래서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한식당을 찾아보려 했지만 길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주변 페루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엄청~ 친절하게 알려줘서 너무 고마웠다. 택시마다 바가지를 씌우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택시는 피해서 타라며 이것저것 알려줬다. 그래서 바가지 쓰지 않고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고마운 페루 사람들 :-)



한식당은 터미널에서 거리가 조금 멀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도 먹고 싶었던 한식을 마구잡이로 시키기 시작했다. 떡볶이부터 김밥 그리고 김치찌개 등등 둘이서 메뉴를 무려 5개나 시켜 먹게 됐다. 우리는 당연히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그중 거의 손도 못 댄 음식이 있어 남은 음식은 내가 싸 가기로 했다.


수지는 리마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후 택시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가야 했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난 후 난 예약해 둔 숙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덕분에 즐거웠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리마에서는 3박 4일 정도 머물렀다. 정말 오랜만에 대도시를 와서 그런지 너무 신났던 것 같다. 쇼핑도 하고 스타벅스도 가고 도심 구경을 열심히 했다. 밀렸던 빨래도 했고, 다시금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대도시의 좋은 점은 역시나 인프라가 좋고 무엇보다 한식당이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합류한 수호와 같은 남미 단톡방에 있는 성표형을 리마에서 만나게 되었다. 셋은 한식당을 가서 양껏 먹고 같이 카페도 가며 도심의 여행을 즐겼다.



남미여행을 떠나온 지 벌써 3개월 차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내 머리는 산발이 되기 직전이었다. 호주를 떠나오기 전에 머리를 잘랐기에 머리가 너무 길어 자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남미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깎게 되었다. 리마 도시에 있는 미용실을 방문했는데 값이 너무 싸서 처음에는 조금 겁을 냈던 것 같다. 혹시 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대화도 안 되니 어떤 스타일로 머리를 자를지 미리 사진을 검색하여 보여줬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잘라서 놀랐다.


이후에 은석이도 같은 숙소로 오면서 우린 밤마다 숙소에서 술을 마셨다. 수호와 나 은석이 이외에도 몇몇 여행자들이 있어서 같이 밤거리를 산책하기도 하고 숙소에서 술과 음식을 먹기도 하며 리마에서의 3박 4일을 보내게 됐다.


다음 행선지는 리마에서 비교적 가까운 이카라는 도시이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라 사막투어를 할 수 있어서 나와 수호 둘이 함께 가기로 하였다. 그럼, 이카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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