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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01. 2020

직장에서 만난 좋은 사람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2년 3개월간 은행에서 일하며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대략 20명 정도 된다. 은행 영업점은 직원이 많아 봐야 열 명 안팎이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또 친한 사람이 있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직원은 바로 출납담당 직원이다. 이유는 주로 출납 계장의 일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동전 바꾸는 것과 지폐 교환, 그리고 ATM기기 업무 등 이 모든 건 전부 출납 계장의 업무이고, 그(녀)가 담당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의 일을 도와주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닌 ‘지금까지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출납 계장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보통 업무 분장은 1년에 한 번씩 이뤄진다. 물론 그사이에 수시로 바뀌기도 하지만 대부분 1년을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 난 총 3명의 출납직원과 함께 일했고 그중 가장 처음 함께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30대 후반의 여성이고, 단발머리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큰 눈을 가지고 있지만 눈보다는 코가 가장 돋보이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 둥근 안경을 썼으며, 키는 160보다는 조금 컸던 거 같다. 몸매는 보통의 체형이었다. 같은 은행 출신 남자와 결혼을 해 아들과 딸을 둔 엄마이자 아내였다. 처음 은행에 왔을 땐 그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조용한 성격이었다. 말수가 적었다. 그녀의 특징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늘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그녀가 돋보였던 때는 손님이 그녀 앞에서 목청껏 욕을 퍼붓고 있었지만 그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저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개는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가련다.‘하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다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말했다. 아마도 속으로는 욕을 했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계장님은 내가 일한 2년 3개월 동안 쭉 함께했다. 내가 18년 4월에 입사했고, 그녀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18년 1월에 전출을 왔다. 본가는 경북이었지만 대학을 강원도에서 나와 쭉 강원도에서 지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녀와 함께 오랫동안 일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눌 기회가 많았지만 말수가 많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일은 잘하는 편이었는지 잘 몰라도 내가 느꼈던 것은 적어도 요령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딱 정해진 대로 FM처럼 했다. 조금 더 편하고 쉽게 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늘 정석대로 하던 게 그녀였다. 그래서 그런지 출납 계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나서는 조금 힘들었다. 요령을 부리면 편할진 모르지만 꼭 한 번씩 실수를 해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녀는 그런 사소한 실수는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녀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랐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은 명절을 앞두고 엄청나게 바빠서 정말 혼이 다 빠져나갈 만큼 정신이 없는 한 주를 보냈다. 다행히 명절 동안 큰 사고가 없었다. 이제 퇴근을 하면 명절 동안은 편히 쉴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계장님이 나를 부르시고는 흰 봉투를 꺼내시며 말했다.     


“희재 씨 그동안 도와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이거 많지는 않지만 부산 내려갈 때 차비라도 쓰라고 조금 넣었어. 지금처럼만 잘 부탁할 게 고마워.


봉투에는 딱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내가 동전을 바꾸고 기계를 고치고 하는 것들을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아 이 사람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걸 말이다. 단순히 돈을 줘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물론 그게 좀 큰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그냥 지금까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그 뒤로도 한 번도 싫은 소리 없이 끝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그녀가 출납계를 떠나 총무, 대부계로 떠난 후에도 난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다.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는 건 쉬운 편이었다. 은행은 손님들에게 주는 사은품이 엄청 많다. 프라이팬부터 시작해서, 락앤락 용기, 비닐장갑 기타 등등 주부들을 겨냥한 생필품들이 많았다. 그중 간혹 엄청 무거운 것들도 있어서 지점에 배달이 오면 그걸 정리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아주 가끔 남자 직원이 도와주긴 했다.) 딱 그녀만 빼고 말이다. 사실 그냥 나를 시키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절대 나 혼자 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꼭 같이 하자고 말했다. 그것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일할 때는 항상 나를 “희재 씨”하고 불렀지만 지점 밖을 나가거나 은행 업무가 끝나고 나서는 “씨”를 빼고 “희재”라고 이름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주임”이라고 불렀지만 그녀는 한 번도 나를 직책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줬다. 난 그게 좋았다.(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그리고 점심 조가 같았을 땐 자주 밥을 먹었지만 조가 바뀌고 난 후에는 자주 먹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 같이 점심을 먹으면 그녀는 꼭 이 말을 했다.      


“희재랑 점심 오랜만에 먹네.”     


난 이 말이 듣기가 좋았다.     



은행원들은 점심시간 때면 제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가기가 힘들다. 물론 다른 직장인들도 일이 바쁘면 그럴 수 있지만, 특히 은행은 점심시간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은 평일에 은행을 들리기 힘들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은행에 볼일을 보러 오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손님이 많거나 상담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점심을 거르거나 늦게서야 먹게 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럴 때마다 난 은행원들을 기다리지만 너무 오래 걸릴 때는 그냥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 사실 난 혼자 밥 먹는 게 같이 먹는 것보다 더 좋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혼자 밥을 먹으면 점심 카드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내 돈 내고 먹을 때가 있다. 이건 그냥 단순히 카드를 가지러 가기 귀찮아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 밥을 내 돈 주고 먹는 거라 별로 크게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계장님은 어떻게 아셨는지 퇴근하는 나에게 말했다.     


“희재 씨 오늘 밥 네가 돈 내고 먹었지? 밥 카드 쓰지 왜 안 가져갔어. 얼마나 왔어? 입금해 줄게 계좌번호 불러줘.”     


처음에는 그냥 괜찮다고 했지만 계장님은 아니라고 빨리 말하라며 기어코 6,000원을 입금해 주셨다. 내가 밥 카드를 가지고 가지 않은 걸 알고 그걸 기억해 굳이 6,000원을 보내주시는 건 사실 관심과 챙김이 있지 않고는 하기 힘든 행동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물론 총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계장님 빼고, 계장님은 늘 나를 챙겨주셨다. 그럴 때마다 난 그분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퇴근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일을 하다가 속이 자꾸 아파서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은행 문을 닫고 나서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가 나와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걸 봤는지 계장님이 오시더니 내 상태를 물어봤다. 내가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다고 하자. 그냥 지금 바로 퇴근하고 병원 가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집에 갈 때 그냥 택시 타고 가라시며, 2만 원을 쥐어주셨다. 물론 그녀가 나에게 돈을 줘서 좋았다.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그게 큰 영향이 있긴 하지만) 나를 챙겨줬다는 게 큰 의미가 있었다. 아마 내가 좀 상태가 안 좋아질 때부터 알았던 거 같다. 유일하게 나를 걱정해주고 챙겨줬던 건 계장님밖에 없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니 일도 그렇게 하기 싫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나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결국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잘려 나가는 동안 계장님이 내심 도와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대부계(대출)는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바쁜 곳이었다. 더불어 새롭게 온 지점장의 포부가 워낙 컸기에 직원들도 그에 발맞추려면 뛰어야 했다. 그렇게 난 지점을 떠나게 되었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솔직히 마지막에는 제대로 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한 행동은 그마저도 발길을 끊게 만들었다.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계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냥 받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고 난 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계장님께는 따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고,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계장님 어제 전화 못 받아서 죄송해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특히나 계장님은 더 고맙습니다. 끝이 좋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잘 지내세요.”
“내가 어른스럽지 못해서 너한테 부끄럽다. 잘 챙겨주고 도와줬어야 하는데 내가 힘들어서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 그러지 못한 것이 미안하네.... 뭐라 인사를 해야 할지 어떤 말이 좋을지 모르겠다만 그냥 건강히 잘 지내길 바랄게.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주고 잘 지내 희재야.”   
  

지금까지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 오히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을 땐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녀의 말처럼 꼭 좋은 소식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끝이 좋진 않았지만 계장님 덕분에 2년 3개월간 일하며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계장님처럼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늘 나의 행동과 말에 신경을 쓰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반드시 잘 돼서 다음에 혹시나 만난다면 웃으면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건강히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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