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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Oct 17. 2023

잿빛 유리 글라스

5


"벌써 기말고사가 보름 남았네."



"시험만 안보면 학교 다니는 게 훨씬 즐거울 텐데."



"즐거운 정도냐, 천국이지 천국."



"대학도 평준화 되면 얼마나 좋아.."



십대 학생들이 나누는 전형적인 이야기. 서현과 서희는 친구들이 급식실로 갈 때 교실에 앉아서 도시락을 꺼냈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평균 팔십점대를 맞은 남매는 어머니의 바에서 숙제하고 집에 돌아와 둘이서만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못 먹는 거 없이 다 잘먹는 서희가 특히 좋아하는 새우 튀김을 매운 소스에 버무린 반찬에 밥을 먹는 동안, 서현은 창가 너머로 보이는 매점 앞을 바라봤다. 빵과 컵라면. 닭 머리로 만들었다는 괴담이 떠도는 햄버거를 활기차게 먹는 아이들. 매점이 편의점 수준으로 잘 되어있던 중학교 시절에도 관심가지지 않은 장면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빠에게 말을 거는 서희.



"컵라면 먹고 싶어?"



"글쎄.."



집안일에 능숙한 서현은 집에서 라면도 잘 끓이지 않았다. 서희가 면 요리를 먹고 싶어하면 소면을 삶아 멸치 국물에 말아주거나 직접 반죽한 칼국수를 만들곤 했으니까. 정말 시간이 없거나 급할 때, 간혹 조미료 맛이 생각나면 라면을 먹기도 했지만 한달에 한두번에 지나지 않았다. 젓가락질을 멈추고 바라보는 건 컵라면을 든 남학생들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떠드는 모습. 이성, 동성을 가리지 않고 사람 사귀는 것에 익숙지 않은 서현은 대답한다기 보단 혼잣말 하듯 말했다.



"요리 연구부에 들면서 다른 사람들하고 뭔가를 먹는 게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어. 도시락 싸는 건 좋아하지만 웃으며 밥을 먹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엄마한테 말해서 급식비 달라고 할까? 비싸지도 않던데."



"아니. 지금까지 해온 습관이 있어서 아침은 적당히 바쁜게 좋아."



"난 어떻게 하든 상관없지만..오빠는 친구 만드는 거 싫어하잖아. 나도 친구가 거의 없긴 해도..아, 혹시 희연이나 수지랑 같이 밥 먹고 싶어서 그런 거야?"



"조금은."



쌍둥이 남매는 서로에게 비밀을 만든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오빠의 대답에 뭐라고 말해야 하나, 생각에 잠기려던 서희는 커다란 보온 도시락통을 서둘러 비우는 것으로 대화를 끊었다. "천천히 먹어." 집에서 끓여온 보리차를 한잔 따라주는 서현. 밥을 한번에 우겨넣고는 기침을 좀 하더니 미지근한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시는 동생을 보다가 다시 창가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었다.



"다들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오늘은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매작과를 만들어 보자꾸나." 



동아리 활동 시간에 선생님이 준비한 건 달콤한 한과인 매작과였다. 밀가루와 생강즙을 넣어 반죽하고 얇게 잘라 살짝 꼬아 모양을 내는 작업. 서현과 수지는 수월히 해냈고, 희연도 요리 실력이 많이 늘어 전혀 뒤쳐지는 기색이 없었다. "기름에 튀길 때는 특히 조심하렴." 금방 작업을 마친 부원들에게 새삼 감탄하면서 혹여 다치지나 않을까 확인하는 교사 휘선. 이번 기말 고사에 낼 시험지문은 다 끝마친 상태로, 할 수만 있다면 요리 연구부의 세 사람에게 언질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실행에 옮길만큼 어리석은 교사는 아니었지만. 시작한지 삼십분도 안 되서 과자가 완성된다. 양을 적게 잡았기 때문에 네 사람이 한 두개씩 집어먹으니 다 먹게 되었고, 휘선은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시험공부 잘 해라. 잘 먹고 잘 쉬어가면서 무리하지는 말고."



"에이. 선생님 그거 완전 모순이잖아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희연. 평균 80점 대로 성적이 엇비슷한 수지와 서현은 전교 1,2등을 다투는 모범생인 희연의 반응이 무척이나 발랄하다고 생각했다.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지 않고도 꾸준한 공부를 하는 걸로 학교에서 유명한 희연이었다. 식구들 전부가 제과점을 물려 줄 생각을 하고 있어 학교 성적을 등한시할 수도 있는 수지였지만, 성실한 성격으로 시험 기간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곤 했다. 서현은 어머니의 가게에서 공부하려고 가방에 참고서를 넣어둔 상황. 일찍 부활동을 마치고 각자 공부하러 가려는 차에 희연이 제안했다.



"얘들아. 오늘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갈까? 아홉시까지 개방 되어 있으니까."



"너무 늦지 않겠어?"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수지는 친구들과 함께 한다 생각하니 내심 기뻣지만 서현의 눈치를 보았다.



"아빠한테 퇴근하면서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니까. 서현이는 어때?"



서현은 바로 좋아, 라고 대답하진 못했다. 이전 수지네 빵집에 갔다 왔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무척 기뻐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서희는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권투부 연습도 금방 끝나 세 사람이 복도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머리를 푼 서희가 나타났다. 서현의 짧은 고민의 원인을 알아낸 듯, 희연은 서희에게도 권했다.



"서희야. 우리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면 어때?"



"어머니한테 전화해 볼게."



서현에 비해서 명쾌하게 대답하는 서희. 폴더폰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때 서현은 내가 왜 머뭇거렸을까, 답이 없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두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는 자신의 마음에 혼란을 느낀 것을 알지 못한 채.



"네. 어머니. 그럼 아홉시 반쯤 갈게요. 괜찮다고 하셨어."



"그럼 넷이서 같이 시험공부하는 거네? 어서 가자!"



희연은 서희와 수지에게 동시에 팔짱을 끼며 활짝 웃었다. 조용히 뒤따라 가는 서현은 혼자 남자라는 사실에 큰 어색함을 느끼진 않았다. 새로 친구가 된 두 여학생에게 점차 애착심이 생기는 걸 내색하지 않으려 할 뿐. 독서실 큰 책상 하나에 네명이 모여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총 다섯 개가 있는 큰 책상에는 다른 학생들이 앉아 시험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너 명 정도 함께 온 학생들이 눈에 띄어 네명이 함께 온 서현 일행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나 이 문제 도저히 못 풀겠어."



"이렇게 대입하면 되잖아."



"어...그거 그렇게 푸는 거야? 수학 문제 하나에 이틀 동안 끙끙 앓은 내가 전설이네."



"뭘, 어려운 공식인데."



"사회 진짜 짜증나. 젤 복잡한 부분만 골라서 내잖아."



"난 달달 외우면 되니까 좋더라. 수학이나 과학 도저히 모르겠어. 암기 과목에서 어떻게든 점수 올려야 돼."



"방법을 알면 수학 과학도 어렵지 않은데 말야."



한창 공부에 치이고 시험에 부딪히는 고등학생들. 소곤소곤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평소에 비해 약간 소란스럽지만 다들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 독서실 관리 교사는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다. 한시간 내내 죽 암기 과목을 공부한 서현은 확인 차 문제집 다섯 페이지를 죽 풀었고, 모두 정답인 걸 확인했다. '이제 머리를 굴려야 겠다.' 수학 교과서와 참고서를 펼치고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원리를 파악한다. 이과계열 공부를 잘하는 수지는 서현의 샤프가 적어내려가는 공식을 확인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봤고, "서현아 그 공식은.."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언했다. 해답 문제 풀이를 반복해 읽던 서현은 "아..이렇게.."실마리를 잡아 곧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 사이 국어 문제집에 완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 물이 흐르듯 손에 쥔 샤프를 움직이는 희연. 두 시간이 되어 가도록 희연은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건내지 않았다. 다 함께 공부하자고 밝게 제의했던 아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오늘 하루 운동이 부족했던 서희는 잠깐씩 딴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독서실에 앉아있는 값은 할 만큼 공부를 했다. 뛰어난 분석력으로 과학 교과서를 반복해 읽는다. 수지와 함께 수학 문제집과 씨름하는 오빠를 잠깐 의식할 때, 자리에 앉은 지 딱 두 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우리 뭐 좀 먹고 하자."



매점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점심시간 만큼 붐비지는 않아 앉아서 먹을 자리를 잡기가 어렵진 않았다. 희연은 바나나 우유와 구운 계란. 수지는 옥수수 크림빵과 흰 우유. 서현은 단팥 빵에 사이다. 서희는 햄버거 두 개에 구운 계란과 크림빵, 콜라까지 골랐다. 이전 제점에서 알게 되었지만 빠르게 많이 먹는 서희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의외로 다가온다. 겉으로 보기에 서희는 군살 하나 없었고, 오히려 조금 마른 체격이었으니까. 



"서희는 운동을 무척 많이 하나 봐. 중학교 때도 운동했어?"



"아, 우리 둘 다 학교 운동부에 들진 않았지만 우리끼리 공원에서 달리기랑 근육운동을 하루 두세시간씩 하곤 했어."



"와..둘 다 운동을 많이 했구나."



"이전에 말한 무술을 가르쳐준 형이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운동을 많이 하라고 했거든."



"공부도 적당히 하긴 했지만."



햄버거를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 서희가 말했다. 어머니의 가게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은선. 그는 삼십대가 될 동안 꾸준히 수련을 쌓아온 무술의 달인이었다. 친 형제 이상의 유대감으로 서현과 서희가 어렸을 때부터 챙겨 주었던 가족. 이미 쌍둥이에겐 어머니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은선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칵테일을 만드느라 바빴다. 작은 규모의 스낵 바였지만 은선의 칵테일 실력과 마마의 멋진 요리 실력으로 단골손님이 많은 편. 아름답게 장식한 과일 안주를 내던 중 마마는 잠깐 구석 자리를 바라보았다. 늘 가게 한켠에 있던 쌍둥이가 없다는 게 조금 서운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깊은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은선 씨. 신데렐라로 한잔만 더."



오렌지 쥬스. 파인애플 쥬스. 레몬 쥬스를 동량으로 섞어 만드는 무알콜 칵테일 신데렐라. 심플한 만큼 바텐더의 실력에 따라 맛의 편차가 큰 편이었다. 최고의 셰이킹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은선은 빠른 손놀림으로 신데렐라를 완성했다. 주문한 사람은 바로 희연의 아버지였다. 이전 새로 친구가 되었다는 서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 칵테일을 입에 머금으며 그 맛을 음미한다. "아주 좋아."은선은 기쁜 마음을 다독이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알콜을 안 드시는 군요."



"아. 딸아이가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있다가 데리러 갈 생각이야."



"따님이 고등학생 인가요?"



멋지게 모양을 내어 깎은 과일 접시를 내면서 마마가 희연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가게에는 일년 전부터 출입했는데 다른 손님들이 그렇듯 자주 오는 단골. 지갑에 끼워진 딸의 사진을 보여줄 때 어쩐지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래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성격도 좋은 아이죠. 마마의 아이들은 오늘 안 보이네요?"



"둘 다 친구들하고 시험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해주는 거 없는 엄마라서 미안하지만..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기뻐요."



고등학생 아이들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젊은 마마. 이 가게는 유흥업소와는 전혀 다른 밝고 부담없는 분위기였지만 폭력조직이 거느린 술집 중 하나란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한 가게를 책임지기에 마스터가 너무 어리지 않나 생각하는 손님들도 없진 않다. 굳이 그 사실에 신경 쓰지 않고 잘 만들어진 칵테일을 즐기던 희연의 아버지는 슬슬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일어나 볼까..'계산을 하려던 차,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이 눈에 띄었다.



"아니, 자네..?"



"엇?"



수년간 연락이 끊겼던 옛 직장 동료. 함께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어 친하게 지냈지만 이직 후 멀어졌던 이였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해서 두 사람은 잠깐 서로를 바라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악수를 하며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이 사람아. 어떻게 여기에.."



"정말 오랜만이군. 자네가 다른 직장으로 옮긴지 벌써 2년도 넘었어."



"이것 참..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는 걸."



이야기할 게 많이 있는 두 사람은 당장이라도 술을 더 시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희연을 데리러 가야 하는 눈 앞의 일이 있다. 희연의 아버지는 시간을 확인하며 옛 동료에게 부탁했다.



"내가 지금 딸아이를 집으로 데려다 줘야 해서..괜찮으면 이 가게에서 기다려 주겠나? 늦지 않게 올테니까."



"물론. 얼마든지. 서두르지 말고 다녀오게."



흔쾌히 허락하는 동료. "계산은 다녀와서 할테니 조금만 기다려 줘요. 이 친구가 돈 내면 받지 말고요." 희연의 아버지는 단단히 당부한 후에야 가게를 빠져 나왔다. 차를 몰고 딸의 학교까지 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운전을 한다. '이 정도 쯤에서 전화하면 되겠지.' 아직 불이 켜져 있는 독서실 창가를 바라보는 아버지. 본인이 학생 시절 고학생으로 힘들게 공부했던 기억이 나는지 공부에 지친 학생들의 모습이 그냥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하루 종일 공부를 한 후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는 소년 소녀들이 귀엽게 보이는 것은 어른으로서 당연한 시선일까. 곧 친구들과 함께 나오는 희연을 보자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이었다.



"아빠! 여기에요!"



희연은 활기차게 아버지의 차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처음 대면하는 친구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수지와 쌍둥이 남매. 희연의 아버지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지만 애초에 생각한 대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늦었으니 내가 집까지 태워다 주마. 피곤할 텐데 어서 타렴."



제과점까지 약간 거리가 있는 수지는 선선히 차에 탔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걸어 갈 수 있어요." 서현과 서희는 공손하게 거절했디. 술을 파는 어머니의 가게에 가야한다는 걸 드러낼 만큼 생각이 없진 않았으니까.



"정말 괜찮겠어? 밤이 깊었는데."



"걱정 안 하셔도 되요. 희연아, 수지야. 다음 주에 만나."



친구들과 인사한 남매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을 보는 데 재주가 있는 희연의 아버지는 이전에 딸이 말했던 같은 반 짝이 서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지와 희연은 뒷좌석에 함께 앉았고 아이들을 배려하듯 아주 조심해서 운전을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구나. 수지라고 했니? 희연이한테 들었는데 집에서 제과점을 한다면서?"



"예. 맞아요. 희연이하고는 다른 반이지만 같이 요리 연구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수지는 요리를 아주 잘해요."



희연이 이야기에 끼어 들었다. "아, 아니야.." 수줍게 말꼬리를 흐리는 수지.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희연이 체조를 그만 두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할 때부터 걱정했던 마음은 조금씩 풀어 지고 있었고, 오늘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불안은 안심으로 바뀌었다. 길이 막히지 않아 수지네 제과점에 도착한 건 금방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수지는 차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가 빵을 한봉투 가지고 나왔다.



"이거. 괜찮으시면 가져가 드세요."



"이러지 않아도 괜찮은데...그래, 주는 거니 고맙게 받으마."



"고마워. 수지야. 내일 학교에서 만나."



"응. 잘가. 희연아."



친근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는 여자 아이들. 집을 향해 차를 몰며 희연의 아버지는 딸에 말을 걸었다.



"아까 학교에서 봤던 쌍둥이 중 오빠가 서현이라는 친구니?"



"네. 같은 반 짝이에요. 정말 잘생겼죠?"



"잠깐 본 거지만..여드름이랑 기미가 없어지면 아주 미남이 될 것 같더라."



"요리도 굉장히 잘해요. 서희랑 먹을 도시락도 매일 아침 직접 만든데요. 아, 서희는 여동생 말하는 거예요."



"동생은 정말 미인이던데. 피부 말고는 아예 똑같은 얼굴이니 서현이란 아이는 성장한 모습이 기대되는 걸."



"공부도 열심히 하고, 권투부 선배를 던지기 기술로 제압할 만큼 대단한 아이에요. 서희는 권투부인데 벌써 학교에서 유명하고요,"



"그래? 둘다 조금 마른 체격이던데 의외구나. 하긴, 투기 종목을 열심히 한 아이들은 군살없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을 때 경비 아저씨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가 기분 좋게 답하는 걸 보는 사이 희연에겐 하루 종일 공부를 한 피로감이 조금씩 움터 올랐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내일 만날 걸 기다리는 그런 설레임까지. "아빠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조금 늦게 돌어올 거야. 피곤할텐데 푹 자렴." 딸이 아파트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로 의식을 두었다. 다시 아까의 바로 돌아가기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친구는 탄산수를 한 모금씩 마시며 잠깐 한가해진 은선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지금 왔어. 기다리게 했군. 난 운전을 해야하니 알콜 없이 깔끔한 걸로 하나 부탁해."



"나도 같은 걸로."



"알겠습니다!"



은선은 탄산수에 쌉쌀한 농축 과즙을 넣은 무알콜 칵테일 두 잔을 금방 만들었다. 칵테일 잔을 부딪히며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 아홉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지만 바에는 앉을 자리의 반 이상을 채우는 수의 손님들이 있었다. 냉동이 아닌 직접 재료를 손질해 만든 모둠 튀김을 낸 후, 잠깐 손이 비는 시간이 왔다. 바 끄트머리에 앉아 오늘 공부했던 내용을 복습하는 아이들에게 묻는 젊은 어머니. 



"애들아. 배고프지 않니?" 



"전 괜찮아요. 친구들이랑 뭐 먹고 와서 전혀 생각이 없네요,"



"서희는?"



"안주 만들고 남은 거 있으면 좀 주세요."



"그래. 빵이 있으니 샌드위치 해 줄게. 조금만 기다리렴."



마마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고, 잠깐 숨을 가다듬으며 내부를 바라보는 은선. 혼자 조용히 술을 즐기거나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을 확인한 후, 고등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이 가게에서 저녁을 먹지 않은 쌍둥이 남매에게로 다가갔다. 서희는 약간 공부에 지친 기색이었지만 서현은 내일 배울 부분까지 예습하는 등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 눈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바에서 숙제를 하곤 하는 남매였지만 오늘은 왠지 고등학생 답다는 생각이 든다. 은선은 레몬을 짜서 탄산수와 블루 큐라소 시럽을 넣은 블루 레몬 에이드 두 잔을 건내주며 친근히 물었다. 



"공부하기 힘들지 않았어?"



"친구들하고 같이 해서 좋았어요. 혼자 공부할 때보다 더 잘 되었고요."



웃는 얼굴로 답하는 서현. 중학교 때까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거의 웃은 적이 없어서인지 무척 신선한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아주 재미있나 보네.'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어머니가 준 샌드위치를 베어무는 서희를 본다. 딱히 친구들과 아주 친하게 지낸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빠의 친구들에겐 보통의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남매가 변화하는 점은 없는지, 은선은 마마가 그렇듯 주의깊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그만 가볼게요. 있다가 조심해서 오세요. 어머니."



"수고하세요."



남매가 가게에 머문 시간은 약 이십분. 다른 손님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느라 학생 아이들이 들어와 있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그 중 서현과 서희가 마마에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동안 그 모습을 드러나지 않게 주시한 이. 바로 희연의 아버지였다. 아까 학교로 찾아갔을 때 보았던 딸의 학교 친구들. 이전에도 몇번 이 가게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제대로 얼굴을 알아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술을 파는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라 해서 선입견을 가질 만큼, 희연의 아버지는 어리석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다만 고등학생 아이를 두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은 마마의 모습에 왠지 의구심이 생길 뿐.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라고 했나요?"



부담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말투로 질문을 해본다. 마마는 줄곧 무알콜 칵테일을 마시는 손님에게 풋콩을 서비스하며 살짝 웃음지었다.



"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아까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지만...마마는 가게 운영하는 것도 바쁘실텐데 대단하군요."



"그렇지 않아요. 두 아이 다 자기 일은 알아서 하는 걸요. 집안일도 거의 다 나눠서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너무 일찍 철이 든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제겐 자랑스러운 쌍둥이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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