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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l 06. 2022

집 앞 대숲

산골 일기 두 번째

바람의 길이 궁금하다면 대숲에 오시라. 

바람의 노래가 듣고 싶다면 일렁이는 대숲에 귀를 대 보시라.   

   

대숲엔 파도가 들어있다. 

앞 물결에 누운 댓잎이 뒷 물결에 다시 일어서며 한아름 바람을 품고 출렁거린다. 

포말을 흩으며 나가는 거친 배처럼 아무리 큰 바람에도 대숲은 이내 재우쳐 일어난다. 

시골로 이주해 오고 나서 누리게 된 첫 번째 행복은 툇마루 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대숲이었다. 

이 풍경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큰 바람이 일었다. 

댓잎이 눕다시피 쓸려갈 때마다 쏴아 하는 청량한 바람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 일렁이는 바람의 길과 소리가 너무 좋아서 영상에 담아 작은 시와 함께 지인들에게 보냈다. 

혹시나 도심에 찌들어 살아가는 그네들의 염장을 지르는 짓은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하하

     

- 바람 가득한 대숲 -     

대숲에 큰 바람이 들었다.

휘였다 일어서는 

가지들로 대숲이 출렁인다.     

먼바다의 격정을 

토해내는 파도처럼

적막한 산울의 사무친 마음이 

푸르게 부서지고 있다.     

저렇듯 술렁이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다시 

적막한 산울의 정물이 될 터이다.     

풍상의 너울을 넘는

그대의 푸르른 발길처럼.     


바람 센 날의 대숲은 푸르게 출렁이는 잎새의 바다다. 

쓰러질 듯 다시 일어서는 대나무 하나하나가 지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를 그림처럼 그려낸다.      

대숲의 모습은 아침저녁으로, 계절별로 사뭇 다르다.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에 잠긴 대숲도 운치가 있고 저녁 무렵 노을에 물든 대숲도 곱디곱다. 

어느 아침인가는 대숲으로 짙은 산안개가 지나고 있었다. 

대숲은 잎새 하나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그 고요 앞에 나 또한 미동 없이 대숲과 마주하였다. 

이른 새떼가 후드득 날아갔지만 대숲에는 바람 한 점 기웃거리지 않았다.     

  

- 안개 낀 대숲 -     

대숲이 운무에 잠겼습니다.

바람도 잦아들어

댓잎마저 적막합니다.     

후드득 새떼가 지나며

깨워 보지만

대숲의 아침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나의 밤은 뒤척이는

상념으로 가득했는데

대숲은 가만히 내 손을 잡아

운무 속으로 가자합니다.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의 댓잎들은 물결 위에 떠있는 작은 나룻배 같았다. 

그런 대숲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 또한 자연의 바닷속에 떠있는 작은 댓잎이 된 듯싶었다. 

더불어 삶의 어지러운 갈피들이 제자리를 찾아 고요해진다. 

나는 그런 고요의 전이, 고요의 동화(同化)가 참 좋다.     


하지만 대숲의 천변만화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대숲에 듣는 소소한 빗소리다. 

사납게 떨어지는 빗줄기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이 댓잎에 들 때 

들릴 듯 말 듯 사그락 거리는 소리는 얼마나 좋은지! 

그 소리에 가만 귀 기울이다 보면 온 세상이 빗소리 밖으로 밀려 나가고 

오직 빗소리 하나만 내 영혼을 울리는 느낌이 든다. 

그 기분 좋은 적막감이 얼마나 행복하고 평화로운지. 

때로는 굴곡 많은 인생길에서 잠시 이런 적막한 평화를 맛보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 와보니 왜 많은 시골집들이 집 뒤 울을 대나무 숲으로 두르는지 알 것 같다. 

사시사철 푸른 옷을 입고 매일매일 다른 모습과 소리를 들려주는 대숲은

새로운 하루를 기대하게 한다. 

멀리서 보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대숲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한 대숲처럼

삶의 일상도 그렇다. 눕고 일어서는 부침이 오늘도 얼마나 치열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한 대숲을 바라보며 또 하루의 바람 앞에 선다.


그래! 또다시 넘어질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결국 다시 서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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