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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Sep 27. 2022

두렁길 닮아가기

산골 일기 사십 두 번째

 오래전 일이다. 하던 사업이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전기세를 낼 돈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니 쫄딱 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불 꺼진 공장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때, 운명의 잔인함이 절망으로 엄습해 오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장 곳곳에 묻어 있는 내 눈물과 땀방울의 기억들이 얼마나 나를 슬프게 했던지! 

그때 나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헛헛한 웃음만 나왔었다. 

     

‘그래 공수래공수거. 적신으로 났으니 다 잃어버린 들 어쩌랴. 거지의 운명으로 난 놈이 그간 잘 먹고살았으니 그만하면 됐지 않은가!’     


나는 애써 나의 모든 좌절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절망에는 분명히 절망의 냄새가 있었다. 

모든 감정과 이성을 뛰어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절망의 냄새가 내 모든 감정과 생각의 뿌리를 흔들어 댔다.      


그때 모든 것을 잊고자 떠난 어느 개울가에서의 깨달음은 이후 내 삶에 큰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절망과 좌절 속에 또랑또랑 흐르는 개울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개울물은 크고 작은 돌멩이와 바위를 넘나들며 흐르고 있었고, 물이 여울진 곳에는 작은 풀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던 그 순간 마음속에서 조용하면서도 작은 음성이 들렸다.   

  

”네 인생의 흐름을 방해하는 돌덩이들로 인해 마음이 상했구나. 하지만 물을 가만히 보거라. 물은 흐름을 막는 돌멩이나 바위를 원망하지 않지. 그저 돌아 흐르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면서 그 잔잔한 여울에 예쁜 꽃들을 피워내고 있구나. “       


그 음성은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었다. 나는 내게 임한 예기치 않은 실패를 바라보며 그 숱한 걸림돌들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을 방해하는 저 돌멩이들 좀 치워줘!’라는 절규와 함께.  

   

”흐르는 물을 다시 보거라. 저 많은 돌들과 바위가 없었다면 물은 직선으로 쏟아져 흐르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삼켜 버렸겠지. 그 거친 직선 속에서 그 어떤 예쁜 풀꽃도 자라지 못했을 거야. “   

  

순간 마음이 밝아져 왔다. 늘 코끝에 매달려 있던 절망의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나를 실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의 거친 돌멩이들과 바위들을 보듬기로 했다. ‘그래 조금 돌아서 가지 뭐. 그래 잠시 쉬어가라고 하는가 보다’ 어려움을 만나거나 좌절을 만날 때면 오히려 그렇게 어깨의 짐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때로는 절박한 순간조차도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 운명이라면 그렇게 하라’ 그런 마음을 먹곤 했다.      


그랬다. 살아가면서 더욱 깊이 느끼는 것이지만 인생의 길은 언제나 곡선이었다. 곡선의 삶이야말로 삶의 아름다운 풀꽃들을 만들어 낸다. 비록 그 구부러진 곡선 안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좌절과 고통과 아픔이 담겨있을 지라도. 살면서 내 남은 삶의 시간들이 더욱더 부드럽고 고요한 곡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 속에는 직선이 없다. 자연에는 직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 모든 것이 유연하게 휘어져 돌아가는 곡선이다. 나뭇가지가 그렇고, 돌멩이가 그렇고, 풀잎이 그렇고, 물이 그렇고, 구름이 그렇다. 자연에 생경한 직선은 항상 위태롭고 위험하다. 수직 단애가 그렇고 떨어지는 모든 무거운 것들이 그렇다. 곡선은 넉넉한 경계를 만들지만 직선은 각박한 단계를 만든다. 곡선은 서로를 끌어안는 공유를 만들지만 곡선은 구분과 높이를 만든다. 그래서 직선에 갇힌 삶에는 따스함이 없다. 서로를 품어낼 여유 공간이 없다. 하지만 곡선은 끌어안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하며 어울려 나간다.   

    

자연의 길들은 걷다 보면 곡선의 길들은 구불구불 이어지며 다시 만나 진다. 산자락을 휘휘 돌다 보면 어느새 떠났던 원점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 지구의 땅 끝은 바로 당신 옆이다 ‘라는 말처럼 말이다. 나를 기점으로 계속 걷고 또 걸으면 둥근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나를 만나게 되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곡선의 삶은 그렇게 서로 어울리며, 포용하며 둥글게 둥글게 안아주는 삶이다. 날카롭게 찌르며 간격을 벌려나가는 삶이 아니다. 세상 끝도 어쩌면 내 바로 옆자리일 텐데 소중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찌르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인가! 마찬가지로 험난한 운명 앞에서도 돌아 흐르다 보면 이토록 아픈 일들도 아~ 그런 순간들이 있었지 하며 담담히 추억하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     


오늘도 나는 두렁길을 걷는다. 깨달음이 있었다고 해서 내 삶의 흐름을 막던 돌멩이들이 치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까지 나는 살아 있고 이렇게 길을 걷고 있다. 좌절과 아픔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아픔과 고통들을 돌아 흐르기도 하고 넘나들기도 하면서 여전히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두렁길을 걸으며 조금씩, 조금씩 두렁길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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