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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21. 2022

끝이 있다는 것

산골 일기 스물두 번째

 초의선사가 말했다지 아마. ‘백만 년을 살아도 반드시 한 번은 헤어지게 된다.’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는 아무리 죽고 못 사는 관계라 할지라도 

반드시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 마음은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다 해도 다가오는 죽음의 현실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렇게 단 한 번은 모든 것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 

우리는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애써 잊고 살아가지만 마음 저변에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의 초침 소리가 들린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을 느낄 때면 그 초침 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순간도 잠시 우리는 다시 톱니바퀴처럼 얽힌 

일상의 망각 속으로 달려가 버린다.       


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은 언제나 내게 두 가지 선택지를 내민다. 

먼저는 세상 모든 것이 언젠가는 헤어질 인연이니 집착하며 살 필요 없다는 선택지다. 반면 두 번째 선택지는 이별이 필연이라면 지금 이 순간의 인연을 

더욱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늘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방황한다.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살 것인가?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 것인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어찌 다 헤아리고 구분하며 살겠는가! 

이런저런 고민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뭐. 하면 그만이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천변만화하는 요물이라서 예기치 않은 상처만을 남기고 끝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숙명이라면 

지금 함께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이다.     

며칠 전 동네 옆 작은 묘지 터에 상여가 들었다. 

이틀째 두 번이나 든 상여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한 줌 백골로 남은 단지를 끌어안은 상주가 길을 열고 나가면 

그 뒤로 검은 옷자락을 여민 사람들이 느릿느릿 길을 따라간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촌로들은 종일토록 찾아오는 이 없는 무료한 일상을 견디는데 

죽고 나면 비로소 그 삶의 언저리에 분주한 발자국이 찍힌다. 

무력하게 길었던 명줄이 호상이라는 이름하에 애써 슬플 것도 없는 장례식장은 

못다 한 오랜 추억들로 왁자해진다. 사고가 아닌 천수를 다한 장례를 통해 보는 죽음의 얼굴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별의 회한이 적어서 그런지 애써 웃는 얼굴들, 

과장된 농담들로 분위기가 소낙비 지난 뜨락 같다. 

연이틀 장례를 보며 뒤숭숭하던 차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가을에 열기로 한 가족모임을 봄으로 당기면 어떠냐는 말씀이셨다.  

     

”네 아버지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가족들 얼굴 보고 싶구나. 

이번에 얼굴 보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      


아버지의 치매가 육 년에 접어들면서 건강이 들쑥날쑥하던 참이었다. 

부모님이 미국 이민 세대라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면 머나먼 미국까지 가야 하는데 

펜데믹의 장벽에 가로막혀 오랫동안 뵙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연로해져 가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봄철의 일정을 비우는 일이 만만치 않으나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몇 주간 일상의 포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날이 갈수록 부모님과의 모든 추억을 기억 저편으로 돌려야 하는 

이별의 순간들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려온다. 

아~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생명에게 내려진 

저주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하다.          


그러니 이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다하는 것밖에! 

아껴두지 말고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대로 다 써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쏟아내서 흘려보내야 비로소 보물이 되는 가장 귀한 신의 선물이다. 

거친 세월을 함께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어줄 유일한 것도 사랑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햇살 아래 놓인 부모님께 드릴 유일한 자식의 도리도 사랑일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그렇다. 나이 들어서까지 감정적 소모를 해야만 하는 

악연이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선연(善緣)이 소중하다. 

살아온 삶의 정서가 다르다 하여도 선한 인연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오직 사랑이리라.      


살다가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마음이 상할 때면 생각한다.

 ‘백만 년을 살아도 한 번은 헤어질 텐데 아웅다웅하며 살지 말자. 

그깟 조금 떼어간들 어떠랴.’ 마음이 옹졸해지려 할 때마다 언젠가는 다 두고 떠날 

그날을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러고 나면 용서 못할 일도, 이해 못 할 일도 없다. 

그런 마음으로 먼 훗날 내가 떠나고 남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겨질까를 생각한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선배와 동료들을 

바라보며 ‘올라간 자리는 반드시 내려오는 순간이 있다.’라는 사실을 되새기곤 했었다. 떠나는 사람들 뒤편에 남겨진 기억의 편린들은 그가 얼마나 유능했는지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가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또는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이었는지 였다. 

권한의 위세 속에 산 사람들은 떠나는 즉시 그 존재가 잊혀 지거나 

오랜 험담으로 회자되곤 하였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청장년 시절을 

그런 쓰라린 평가로 마감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한없이 초라했다.  

    

나는 이곳 햇살 바람이 이는 언덕 위에서 마침내 나의 끝 날이 왔을 때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나로 인해 남겨진 추억은 아름다운 것일까? 

오직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나는 정말 사랑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가끔 성질은 지랄 맞았어도 정이 많았던 사람이야’ 

그 한마디면 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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