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보건의료는 발전했는가

by 레퍼런스

그들은 강점기의 보건의료 분야 역시 일제의 정책 수행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그에 따라 한국인들도 건강 향상 혜택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의사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고, 각종 전염병 치사율도 감소했으며 강점 기간 동안 관립‧도립의원을 증설하고 예산도 증액하는 등 조선인들에게 의료 혜택을 확대했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조선이 배출한 의사는 어디로 갔는가

우선 그들은 강점 기간 동안 배출된 의사의 수가 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의사의 숫자는 거의 제자리였다. 총독부가 집계한 조선인 의사 수는 1910년 기준 1,344명이었지만 1911년 479명, 1912년 72명으로 급감한다. 이는 대한제국 정부가 의사 면허를 부여했던 전통의사들의 면허를 박탈하고 '의생'이라는 지위로 격하했기 때문이다.(1913년의 <의생규칙>, 의사자격 박탈은 법령 제정 이전 실시)이에 따라 1914년 이후 의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인들의 건강에 거의 무관했던 일본인 의사를 합쳐도 의사와 의생 수를 합친 수는 강점 초기와 말기가 비슷하다. 특히 의생과 의사 수를 합친 의료인 1인당 인구는 1914년 2,427명에서 1943년 3,613명으로 오히려 악화되었다.


의사 배출 양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극명한 민족 차별이다. 관공립 의학교는 철저히 일본인 위주로 운영되었다. 조선총독부의원은 1915년까지 한국인 의사를 양성했으나 1916년부터 일본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해 1920년부터 일본인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해, 1911~1945년 사이 일본인 졸업생의 비중이 57%에 이르렀다. 1920년 이후로 한정하면 65%, 1930년 이후로는 75%에 달한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1930년부터 졸업생 배출)의 1930~1945년 사이 졸업생 중 일본인이 71%, 공립(도립) 의학전문학교(1933 대구‧평양에 설립)의 1943년 누적 졸업생 중 일본인이 61%였다. 1910~1943년 사이 한국인 신규의사는 3319명, 일본인 신규의사는 3055명으로 거의 비슷한데 인구비율을 따지면 절대적으로 일본인이 집중적인 혜택을 입었다.


그들은 일본인들이 더 학업 성적이 우수했을테니 정당한 것 아니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교육 분야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한국인들은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등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들은 또 일본인 의사라도 어찌됐건 의사 수가 늘었으니 보건에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인 신규의사 다수는 조선이 아니라 일본으로 가서 활동했다. 한국인들을 착취한 재정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일본인 의사만 잔뜩 배출한 것이다.


식민지의 보건 상태는 개선되었는가

그들은 어찌됐건 의사 숫자는 늘었으니 조선 보건에도 좋은 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강점 기간 동안 각종 전염병으로 인한 치사율이 낮아졌다는 통계를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아래의 전염병 환자 통계를 보자. 출처는 총독부 통계 연보다.


- 일본 본토 : 인구 10만 명당 200명가량(환자), 40~50명가량(사망자)

- 재조선 일본인 : 인구 10만 명당 600~1,000명(환자), 50~250명(사망자)


같은 일본인들인데 환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최대 5배에 이른다. 이는 그만큼 식민지 조선이 강점기 내내 보건 의료 상태가 열악한 전염병 창궐 위험 지역이었음을 의미한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인은 100명 정도의 환자 수에 최대 20명 정도가 사망하는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인다. 그들은 이를 보건 의료 발전의 근거로 삼지만, 일본인에 비해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처지였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보다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훨씬 좋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생활수준이 높았던 일본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의 환자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일제 당국이 조선인들의 위생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외적으로 1919~1920년 조선인 환자‧사망자 수는 상당히 많은데 이는 당시 콜레라 팬데믹으로 인해 총독부 측에서 제대로 환자 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재조선 일본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조선인들이 전염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을 방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상이 이러한데 전염병 치사율이 낮아졌다는 통계는 아무런 신뢰성이 없다.


입원 환자 통계를 보아도 의료에서의 민족 차별은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은 1914~1939년 사이 인구 1만 명당 도립의원의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 수이다. 출처는 역시 총독부통계연보다.


- 일본인 환자 : 입원환자 100~300여 명, 외래환자 2000~5000여 명

- 한국인 환자 : 입원환자 수 명~20여 명, 외래환자 100~200여 명

평균적으로 훨씬 건강하고 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했을 일본인이 한국인 환자에 비해 최대 15배에 이르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 비율을 봤을 때 말이 되지 않는다. 이 통계는 한국인들은 아플 때 제대로 치료 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의사든 의료기관이든, 식민지 조선에 존재하는 보건 시스템은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운영을 위한 비용만 부담했을 뿐 혜택은 거의 누리지 못했다. 식민지 의료 역시 한국인들의 건강을 일본인들의 건강을 위해 소모한 수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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