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권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가

by 레퍼런스

2019년 11월 29일, 한국 대법원에서는 그동안 끌어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대응했고 이에 대한 파급 효과는 '노재팬'과 '소부장' 국산화 추진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를 바꾸는 것과는 인연이 없었다. 앞으로도 청구권 문제가 완전한 해결에 이르는 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들은 식민 지배를 긍정하는 만큼 청구권에 대해서도 반발한다. 그들은 식민 지배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한국이 일본에 재산 피해를 청구할 필요도 없으며, 청구권을 둘러싼 여러가지 국내외적 상황을 보았을 때 청구권이 성립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불금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에 따른 예외적 사례이다?

강제징용 보상 문제에서 핵심 중 하나는 피해자들이 월급을 강제저축 당한 후 돌려받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 미불금이 있긴 하지만 이는 회사가 아니라 통장과 도장을 맡았던 기숙사 사감의 책임이고 회사는 딱히 지시한 바가 아니기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월급을 정당하게 지급했으며 기숙사 사감이 사적으로 착복했거나 노동자의 본가에 송금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감의 사적 착복이나 노동자의 본가 송금은 확인된 바 없으며 그들의 희망이 담긴 추정에 불과하다. 그들은 추정이나 창작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습관이 있다.


회사 직원의 횡령을 이유로 미불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괴한 논리도 황당하지만, 당시 일본 기업들이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의도적으로 지급하지 않은 정황은 명백하다.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가 찾아낸 <노동성 조사 조선인에 대한 임금 미불 채무조>에 따르면 1949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미불 임금은 2만 4,135만 엔이며, 현재 가치로 추산하면 3~4조원에 달한다. 이조차 일본 기업들이 일본 정부에 공탁한 미불 임금 합산 금액이며, 미불 임금 공탁은 종전 이후에도 계속 됐기에 실제 미불 금액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기업들의 착취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공탁금이다. 피해자들을 '고용'했던 기업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될 임금이라면서 5천만 엔 규모의 금액을 법무국에 공탁했다. 전후 재일 조선인 단체들의 투쟁으로 미불 임금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자 연합국최고사령부와 일본 정부가 기업들에게 미불 임금을 공탁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해당 금액은 1991년 화폐가치로 1조 5천억 원이다. 그나마 오사카제철소의 경우 미불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강제저금을 공탁금에서 제외했다.(미불금 공탁 보고서에는 23,671엔, 1946년 7월 본사 총무부장 앞으로 보내진 별도 보고서에는 85,728엔 기록)


일본 정부는 당사자 주소가 불분명해 소송서류를 전달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공시송달 제도를 통해 이를 처리하고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한다. 공시송달이란, 법원 마당 게시판에 봉급을 찾아가라고 공고해놓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당사자가 송달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당사자가 공시 내용을 알지 못했더라도 내용을 전해들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것은 의도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공탁된 돈의 존재에 대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한국 정부에도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공탁금을 계좌에 묶어두고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다. 해당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면, 당시 일본 기업이 한국인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착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국 국고에 흡수시켜버리면 훗날 한일 관계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미적댄다고 해서 착취의 증거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탁금의 존재는 일본 기업들의 임금 미지급 책임을 확인해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착취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되어 착취당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계약 과정을 거쳐 고용되었고, 그 처당시 일반적으로 일본 공장과 탄광에 적용된 군대식 규율로 통제했을 뿐 민족 차별적인 학대와 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위자료 청구 소송 원고인 중 여운택과 신청수의 사례를 논거로 제시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운택과 신청수는 자유 응모로 일본제철 오사카 제철소에 갔으며, 특히 여운택은 자신을 뽑아달라고 일본인 유력자를 통해 청탁하기까지 했다. 물론 해당 부분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당했던 취업 사기와 다르지 않다. 훈련소 교장이나 제철 모집 담당자들은 피해자들을 응모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으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실제와 다른 노동 조건을 명시하지 않고 지원을 유도한 것은 강제 동원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당한 폭력적인 대우는 시대 수준을 고려해도 철저한 학대와 구속, 민족 차별이었다. 숙소에는 도망방지용 창살이 있었고 심각한 저질의 식사만 제공되었다. 구타와 협박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고 기숙사는 자물쇠로 잠긴 채 관리되었다. 그나마 명목상 지급되는 임금은 강제로 저금됐다. 여운택과 신청수의 미불금이 좀 많긴 했지만 나이가 강제 저금한 예외 사례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논할 가치가 없다. 그들은 실제 피해 사례가 아무리 많아도 '예외'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일본 내무성 경보국에서 파악한 것으로만 257,907명에 달하는 탈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사실상 노예로 대우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강제동원되었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으며 학대당하고, 패전이 가까워오자 몰살당한, 일제의 전쟁범죄 피해자임이 명백하다.


국제법상으로 청구권 행사는 불가능하다? - 샌프란시스코 조약 문제

그들은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피해 여부와는 별개로 국제법 상으로 청구권은 행사될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국제법과 국제관계에 식민지배에 의한 피해에 대한 배상 사례가 없으며, 국제법적으로 식민지 피해 보상 요구가 불가능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조약(미국 정부 주도로 승전국 49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체결된 강화조약)에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조항이 없으며 한국은 식민지 피해를 입은 국가가 아니라 ‘분리된 지역’으로 분류되었기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강조한다.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배상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승전국들 역시 식민지배 당사자이기에 회피했기 때문이다. 이는 도쿄 재판과 뉘른베르크 재판이 제국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감히 미국과 영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죄를 묻는 '전범 재판'에 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식민지배가 정당했다고 말해주는 것은 아니며,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책임을 부정한 국제법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경우, 한국은 조약 당사국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조약 준수의 의무가 없다. 또한, 한일 간 협상 대상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 내용이 없으며 피해 보상 가능 여부 자체가 논의되지 않았다.


그들은 국제법에 기댄 주장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인지한 탓인지, 뜬금없이 일본 역시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의 청구권이 인정되었다. 한일은 서로 민사상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고, 일제가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재산은 52억 달러 이상으로 한반도 총 재산의 85%에 달한다. 그 가운데 22억 달러가 남한에 있었으며 일본의 청구권이 인정된다면 한국이 오히려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받아낸 것은 오히려 큰 성과라고 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사자가 아니기에 굳이 지킬 필요가 없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내용은 일본의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한일 간 특별조정의 대상임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은 또 한번 날조된 증거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오히려 식민지근대화론을 다룰 때 이야기한 것처럼,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한 경제적 잉여가치가 일본과 일본인에게 집중적으로 귀속된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조약에는 “한반도 지역 내 일본과 일본 국민의 재산과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 대한 청구권의 처리와,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의 일본 내 재산과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과 한국 간 특별 조정에 맡긴다.”라고 적혀 있다. 그들은 단지 조약문에 일본 측 청구권을 뜻하는 단어가 적혀 있는 것만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근거로 삼았다. 조약문 내용은, 양국 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으니, 한일 양측에서 경제적으로 정산할 것이 있으면 알아서 논의하라는 것이지 일본 측의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약에는 “일본은 한국에서 미군이 행한 일본과 일본 국민의 재산에 대한 처분이 유효함을 추인한다.”라는 내용이 명확히 적혀 있기에, 일본 측은 한반도에 남기고 간 재산에 대한 청구권 행사가 오히려 불가능하다는 점만 확인할 수 있다. 국제법상으로 한국에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일본은 청구권이 없음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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