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칠
우리는 인간을 해석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한다. 육체적으로는 키, 몸무게, 시력, X-Ray, MRI 등의 측정 도구가 있고, 정신적으로는 심리 검사, 행동 관찰 같은 도구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여기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다.
지구를 포함하여 거시세계(巨視世界) 우주를 해석하는 도구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있다.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원자, 전자, 원자핵의 내부 구조와 같은 미시세계(微視世界)를 해석하는 도구로는 현대 물리학자들이 체계화시킨 양자 이론이 있다. 우주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모두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우주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라는 도구(이론)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두개의 이론은 현재까지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지 못하여 하나의 우주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개의 도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사람이 자연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현상은 아날로그적이고 따라서 연속적인 값이다. 예를 들어, 온도는 영하 273°C 절대 온도부터 수억°C까지 모든 범위에서 연속적인 값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이해하는 길이, 무게, 속도, 면적, 압력 등의 모든 물리량은 아날로그적으로 연속적인 값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아날로그 세계에서 살고있는 사람의 인식으로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 양자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가 양자 물리학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의 감각으로는 미시세계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양자 현상은 우주 삼라만상에 들어 있고, 우주가 탄생한 이후로 이 법칙은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지만, 거시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의식은 결코 미시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상상하는 것을 비유로 비슷하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실제 처럼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 양자와 같은 불연속적인 현상의 비유로 동전(주화)이 있다. 주화는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 짜리만 있고 중간 금액(값)을 가지는 주화는 없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현상을 양자(量子,Quantum)화 되었다고 말한다. 좀 여려운 물리적 개념이지만 물질의 최소 단위로 원자를 가정한다면, 원자의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의 궤도는 미리 정해진 특정한 위치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점으로 부터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이 출발한다.
양자가 갖고 있는 핵심 현상으로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이 있다.
양자의 중첩은 성질이 다른 두개의 상태가 동시에 겹쳐 있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이 겹쳐 있고, 행복과 불행이 겹쳐 있고, 0과 1이 겹쳐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양자 역학의 이상한 불완전함을 지적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1935년에 고안한 사고 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는 오히려 양자 역학의 중첩 현상을 설명하는 비유로 유명하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방사능 상자안에 갖혀 있는 고양이는 삶과 죽음의 상태를 동시에 갖고 있지만, 상자의 뚜껑을 여는(관측)하는 순간에 삶 또는 죽음 중의 어느 하나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원래는 두개의 상태가 겹쳐 있었는데, 관측하는 순간에 어떤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니!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으면 양자 역학의 맛을 좀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얽힘은 더 이상한 개념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존재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 있는 성춘향과 지구 반대쪽인 남아메리카로 이민간 이도령의 마음이 이심전심 실시간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좀 더 심하게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어느 별에 가 있는 이도령의 사랑과 배신을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성춘향이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220만년 거리의 안드로메다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마음이 얽혀서 즉시 알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예로 든다면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두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부모와 환경에서 자랐지만 DNA에 새겨진 형질이 같아서 어른으로 성장한 후에도 비슷한 성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다. 우주가 탄생할 때 서로 얽혀서 생성된 입자가 서로 우주의 반대쪽으로 달려가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생성되면서 마치 쌍둥이 처럼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동양 철학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음과 양의 조합이라고 정의한다. 음과 양은 서로 다르지만 결합되어 있다. 동양의 심오한 주역 사상이 서양의 양자 역학과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다.
중첩과 얽힘은 평행 우주와 아바타를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고 상상은 현실의 영화로 구현되었다. 영화는 미래 세계를 보여주는 현재의 거울이다. 중첩과 얽힘을 이해하여야 양자 이론에 접근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0과 1이 서로 중첩되고 얽혀있는 성질을 오히려 필요로 한다. 그래서 0과 1을 비트(Bit) 단위로 정확히 분리하여 연산하는 디지털 컴퓨터와는 비교도 안되게 빠른 양자 컴퓨터의 실현이 가능하다.
이 책은 미시세계를 해석하는 양자 역학이라는 과학적 이론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양자 역학이 실제로 활용되는 기술의 하나로 양자 컴퓨터를 들면서 양자 컴퓨터의 기본 원리, 그동안의 개발 역사 등을 설명한다.
저자는 KAIST의 물리학과 교수로서 양자컴퓨터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국내 최초로 병렬처리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은 공부해서 알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는 묘한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미시세계의 양자적 현상은 물리적으로 관찰되고, 증명되고, 이론으로 정립되었지만 인간의 사고 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시세계의 양자적 현상을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이 현상이 여전히 가설이거나 오류가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양자적 현상은 엄연히 우주 자연에 존재하는 과학적인 현상이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사람이 공부해도 이해 못하는 것에는 양자 물리 현상뿐만 아니라 거시세계에 있는 사람의 깊은 속마음도 그러하다. 아무리 공부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양자 이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독자에게 양자 이론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저자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 책의 곳곳에 담겨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설명하는 양자컴퓨터 개념과 이론은 결코 쉽지 않다.